[모빌리티 세상읽기] IRA 시대, 테슬라가 시작한 '치킨게임'
상태바
[모빌리티 세상읽기] IRA 시대, 테슬라가 시작한 '치킨게임'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2.19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델3 가격은 낮추고, 모델Y는 높이고…이중정책
높은 대당 판매수익, 가격 인하 압박 동력으로
현대차그룹 등 경쟁 업체 대응 전략 주목해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엄지를 추켜세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과 40년전 노트북은 공상과학 영화의 소품 정도였다. 20년전 스마트폰은 먼 미래의 상징일 뿐이었다. 이제 인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버금가는 이동 수단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10년 후 늦어도 20년후 세상을 또 한번 바꿔 놓을 ‘모빌리티’. 아직도 모빌리티에 대한 개념은 모호하다. 모빌리티는 인류가 육·해·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 자동차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모빌리티를 준비하는 글로벌 자동차·IT업계 동향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가 미국 전기차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그 선봉에 테슬라가 섰다. 테슬라는 IRA에 맞춰 이중적인 가격 정책을 펼치며 '치킨게임'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했다. 

테슬라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올 들어 미국에서 네 번째 가격 조정을 단행했다. 주목할 건 일률적 인상·인하를 단행했던 과거와 달리 비싼 모델인 모델Y 가격은 올리고, 보급형인 모델3 가격은 내렸다. 모델3와 주로 경쟁하는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경우 테슬라와 가격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략 변화 및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테슬라가 테슬라 모델Y(사진) 가격은 올리고 모델3 가격은 낮추는 이중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테슬라

'횟집 싯가' 테슬라 가격 정책

테슬라는 지난달 미국에서 주요 모델의 가격을 최대 20% 내렸다. 세액공제 조건을 맞추기 위한 꼼수로 읽힌다. 모델Y의 경우 올해 기준이 바뀌면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형 전기차에서 세단형 전기차로 재분류됐다. 미국은 가격 조건을 맞추는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세단형 전기차는 5만5000달러, SUV형 전기차는 8만 달러 미만이어야 세액공제 혜택을 볼 수 있다. 모델Y의 기존 가격은 6만5990달러로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다. 테슬라는 모델Y 가격을 최대 20% 인하하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세액공제 기준을 맞췄다. 테슬라가 가격을 내리자 미국 내 전기차 판매 2위 포드도 8.8% 판매가를 낮춰 주력 모델인 마하-E를 시장에 내놨다. 또 다른 전기차 업체 루시드도 세액공제 상한선 아래로 가격을 내렸다. 

출혈 경쟁에 가까운 가격 인하에 미국 정부가 나섰다. 지난 3일(현지시각) IRA의 차량 분류와 관련해 SUV 기준을 수정했다. 기준 수정에 따라 기존 SUV로 취급받지 못했던 테슬라 모델Y와 포드 마하-E, GM 캐딜락 리릭 등 주요 전기차 모델이 SUV로 분류됐다. 이로써 보조금 상한 기준이 종전 5만5000달러에서 8만 달러로 높아졌다. 테슬라는 모델Y의 가격을 올렸다. 반면 보급형인 모델3의 경우 가격을 낮추는 이중전략을 채택했다. 모델Y를 통해 이윤을 높이고 모델3로 경쟁사를 압박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가격 인하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사실상 테슬라 뿐이다. 테슬라의 차량 1대당 이익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만5653달러에 달한다. 이는 폴크스바겐의 2배, 현대차의 3배, 도요타의 4배에 달한다. 테슬라의 지난해 영업이익률(매출에서 영업이익의 비중)은 17%에 달한다. 테슬라가 '치킨게임'으로 시장을 주도권을 쥐려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점유율은 2021년 72%에서 지난해 65%로 떨어졌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면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 결국 테슬라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가격 인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테슬라의 상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 중인 모델3. 사진=연합뉴스

'치킨게임'의 비결, 비용절감

테슬라가 '치킨게임'을 이어갈 수 있는 건 '규모의 경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로 풀이된다. 테슬라는 일찍부터 미국 외 중국과 독일에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고 비용절감을 위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룰 구축했다. 테슬라의 판매 차종은 모델3, 모델Y, 모델S, 모델X 등이지만 대부분 모델3와 모델Y 판매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테슬라는 전기차 원가에 있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부문에 있어서도 가격 절감을 시도하고 있다. 테슬라는 더 큰 배터리 효율을 내기 위해 배터리 셀 디자인 자체를 변경했다. 4680 원통형 배터리(지름 46mm, 높이 80mm) 양산을 본격화했다. 배터리 셀 디자인 변경을 통해 테슬라는 제조 공정을 단순화했고, 필요 부품 감소를 통해 종전 2170 배터리에 비해 5배 많은 에너지 효율과 6배 높은 출력을 낼 수 있고 주행거리도 최대 16% 늘어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단적으로 모델Y 롱 레인지 기준 511km였던 주행거리는 약 600km까지 늘어났다. 

테슬라는 이와 같은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됐다. 앞서 중국과 독일에서도 각국 보조금 정책에 맞게 가격을 인하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17일 모델Y만 최대 230만원 가격을 낮췄다. 그 결과 테슬라 전체 판매량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지난달 판매량이 지난해 12월 대비 18% 증가했다. 독일에선 전년 대비 판매량이 무려 10배나 늘어났다. 테슬라는 베를린 인근 공장에서 모델Y를 생산 중이다. 지난해 테슬라의 연간 전기차 판매량은 131만3851대로 2021년(93만6172대) 대비 40.3%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전기차 가격 인하 효과가 반영되면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 등 참석자들이 지난해 10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격 압박 더 커진 현대차

IRA에 따른 보조금을 적용할 경우 모델3의 판매가는 3만 달러대까지 떨어진다. 모델3의 주요 경쟁 모델은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 EV6와 폴크스바겐의 ID.4 정도다. 미국 현지에서 아이오닉5의 판매가는 4만1450달러, EV6는 4만8700달러로 모두 모델3보다 비싸다. 현대차그룹은 테슬라를 좇아 가격을 내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테슬라의 가격 인하 압박이 지속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공장 조기 생산과 미국 리스 판매 비중 30% 이상 확대 등 나름의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올해 미국 전체 판매 목표는 86만대로 전년 대비 100% 높은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중 전기차는 약 9%인 7만3000대로 전년 대비 큰 폭의 증가를 목표로 한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본격적으로 미국 현지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2024년 전까지 판매와 손익에 큰 영향이 없도록 대외 상황을 고려해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IRA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 리스 차량에 주목한다. 올해 리스 프로그램을 활용한 차량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5% 미만인 전기차 리스 판매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구독 서비스 등 판매 채널을 다변화해 판매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가격 전쟁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올리버 블룸 CEO는 독일 매체와 인터뷰에서 "글로벌 전기차 리더가 되기를 원하지만 가격 전쟁이 아닌 수익성 있는 성장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ID.4의 경우 할인 없이도 현재 가장 저렴한 전기차 중 하나다. 기본형이 3만8995달러부터 시작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