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탄생과 몰락의 원천은 아사비야”

피터 터친의 「제국의 탄생」…“내적 연대감으로 팽창, 내적 분열로 멸망” 김인영 기자l승인2018.01.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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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Ibn Khaldoun, 1332~1406)은 이슬람 전성기에 학문의 거장이다. 튀니지 출신인 그는 그라나다에서 다마스커스에 이르기까지 당대 이슬람 지역 곳곳을 전전하며 전쟁터와 감옥을 경험하고 주요 정치인들에게 자문 역할을 했다. 1400년 그가 다마스커스에 체류할 때 그곳은 당대의 영웅 티무르의 군대에 포위당했다. 티무르는 유명한 정치사상가인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다마스커스 성채는 그를 바구니에 실어 내려보냈고, 이븐 할둔은 티무르와 7주를 보내며 독재자에게 사회의 작동원리와 역사에 관한 이론을 강의했다.

이븐 할둔이 말년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시대의 혼란과 고난에서 일정한 원리를 찾아내 책으로 엮었다. 그 책이 ‘무캇디마’(Al Muqaddimah)로, 사회학의 고전이 되고 있다. 우리말로 ‘역사서설’이라고 한다.

이븐 할둔은 그의 책에서 역사의 동력을 ‘아사비야’(Asabiyah)라고 설명한다. 사회를 통합하는 연대의식을 의미하는 아랍어다.

 

▲ ‘제국의 탄생’ /출판사 사이트

역사학자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그의 저서 「제국의 탄생」(2011년)에서 제국(Empire)의 흥망성쇠의 비밀이 ‘아사비야’에 있다고 설명했다. 책의 원명은 'War and Peace and War'.(2006년)

피터는 이븐 할둔이 제기한 아사비야를 끄집어내 집단연대의식을 만드는 아사비야가 바깥의 위기에 맞서 사회를 강하게 묶어주는 접착제이자, 한 집단을 성공적인 시스템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국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 피터는 제국을 ‘영토가 넓고 복잡한 권력 구조를 가진 다민족국가’라고 정의한다. 제국이란 민족성이나 군사력 같은 내적 요인이 아닌, 통상 민족으로 구별되는 ‘집단 간의 관계’ 속에서 태동하고 발전한다고 정리했다.

매번 전투에서 지기만 했던 로마는 어떻게 거대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야만적인 몽골족은 어떻게 유라시아 문명국들을 제패할 수 있었을까. 소수의 코사크는 어떻게 거대한 타타르족 국가를 무너뜨리고 시베리아로 진출할수 있었을까.

피터 터친의 대답은 아사비야였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성공적으로 도약하는 집단에는 이 아사비야가 있었다.

외부의 거대 세력과 충돌할 때 강력한 내적 결속을 이룬 집단은 승리했다. 그 집단의 내적 결속은 협력의 역량을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자본’이며, 그것은 아사비야였다. 이븐 할둔은 사막의 혼란 속에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킨 역량이 아사비야로 보았다.

아사비야는 계급과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더 큰 집단행동을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또 그 아사비야는 반드시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집단 이익의 관점에서 ‘옳은 것’이다. 당장의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와 그 충만감이 더 큰 집단을 만들 수 있는 신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한 민족적 집단만을 결속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출신이 서로 다른 여러 집단들도 하나로 묶어 주엇다. 이것이 ‘초민족 공동체’ 제국을 이루는 아사비야의 비밀이고, 피터 터친이 제국의 비밀로 제시한 핵심이다.

 

저자는 제국이 탄생하는 조건으로 단층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국의 변두리에 위치하며 초민족국가의 강한 압박을 받는 곳에서 새로운 제국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 변경에서 출발한 게르만민족이 프랑크 제국을 건설한 것, 러시아 변경에 살던 코사크족들이 타타르와의 전투에서 이긴 것, 영국 이민자들이 버지니아 변방에서 인디언과 싸워 미국을 건설한 것이 모두 단층선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초민족 공동체의 변경, 즉 단층선은 경쟁이 아주 치열한 곳이다. 팽창주의적 제국은 자기들의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군사적 압력을 가한다. 변경에 있는 집단은 외부의 위협을 이겨내고 무엇을 얻기 위해 아사비야의 수준을 높인다. 압력솥 같은 초민족 공동체 변경에서 강력한 협동을 토대로 한 집단은 번성해 제국이 된다는 것이다.

 

▲ 영문판 /peterturchin.com

그러면 제국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피터 터친은 위대한 제국들이 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되는지, 불평등과 폭력적인 경쟁, 신뢰 부재의 집단 분위기가 어떻게 조직을 좀먹어 들어가는지를 수많은 역사적 사례와 자연과학의 프레임을 통해 증명했다. 이기적 가족주의가 마피아를 낳게 된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중국문명의 생태학적 기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많은 인간 집단을 데이터 삼아 공통의 법칙들을 추출해내려 했다.

제국을 이룬 모든 집단에는 성공한 후 붕괴의 징조가 있었다.

제국 탄생의 시기가 ‘통합의 시대’였다면 몰락의 시기는 ‘분열의 시대’다. 사회의 부가 늘어나면 엘리트층은 더 많은 부를 비축하면서 부패하게 된다. 또 하위 계급도 부를 쌓아 신분상승을 꾀하면서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무거워진다. 그에 따라 부패와 분배 불평등이 심해지고, 계급간의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이븐 할둔은 집단의 결속력을 해치는 것으로 사치를 들었다. 이 것은 불평등의 증가를 의미한다. 부자가 더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마태 효과가 나타난다. 평등한 사회로 시작된 제국은 상속, 결혼, 사유재산, 잉여소득, 소수의 토지소유등으로 불평등이 확대된다.

특히 인구 과잉은 경제적 불평등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저자가 흑사병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 요인이 인구감소로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한 점이 이채롭다.

부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패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문제다. 그 과정은 아사비야가 사라져 간다. 협력하지 못하는 사회는 다양한 분쟁과 재난에 맞닥뜨린다. 내전에 노동력과 재화를 빼앗기기 시작하면 당연히 전염병이나 기근 같은 재난을 관리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힘이 떨어진다.

몰락은 그저 기후나 병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부패와 그에 따른 내전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로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유지되던 귀족과 평민의 결속이 부패와 사치로 무너졌을 때 아사비야가 사라졌고, 몰락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침략과 재난 등의 위기는 멸망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위기 때문에 내적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한 집단은 문화나 사회적으로 한 단계 더 진보하게 된다. 진정한 위기는 이 아사비야가 사라질 때다. 신뢰가 무너질 때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사비아는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평화가 오면 번영, 인구증가, 임금 하락, 지대상승, 상류층의 탐욕과 사치, 내전, 민중반란 등을 거쳐 새로운 질서를 찾는다. 이 세기적 순환을 거쳐 제국은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몰락해 간다.

 

그러면 현대의 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늘날의 제국인 미국에서 제국 몰락의 신호, 즉 아사비야의 감소에 따른 다양한 문제를 읽어 낸다. 또 아랍의 극단 테러리스트에 대해 ‘이슬람교에 내재한 어떤 광신’이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강대한 변경에 대항하기 위한 이슬람사회의 대응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대의 중국이 ‘제국의 정의에 가장 들어맞는’ 나라라고 지목한다.

이어 제국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 체첸을 연방에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 제국으로 다시 발돋움 할 가능성이 있는 러시아의 사정까지를 훑는다.

끝으로, 저자는 현대 사회의 물질적 이기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보였다. 저자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6년 이전에 이 책을 집필하며 “사회 동역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장치는 휴대전화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이 새로운 매체가 개인들의 행동을 손쉽게 결합하여 집단으로 결속시켜 역사를 이끄는 새로운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저자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 피터 터친 /peterturchin.com

 

저자 피터 터친은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녹여내어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통섭형 연구의 프런티어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시선으로 인간 집단이 탄생하고 몰락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이 원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위기와 미래도 예측하고자 했다. 인구 역학과 역사적 발전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인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 그의 전문 분야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1977년 아버지가 소련에 반대하다 추방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 뉴욕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고 듀크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의 과학 잡지에 인구 역학과 협동 전략 등을 다룬 글들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역사 동역학』, 『장기 사이클』, 『복합 인구 역학』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역사 동역학의 개념에 대해선 아래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가 주도하고 있는 학술지 《클리오다이내믹스》의 정보도 접할 수 있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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