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빨치산의 딸이 되돌아보는 아버지의 삶, ‘아버지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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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빨치산의 딸이 되돌아보는 아버지의 삶, ‘아버지의 해방일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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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개인적 경험은 많은 이가 경험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소설은 장례를 치르는 딸의 시각으로 되돌아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한다. 생전의 아버지는 신념 따라 살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안타까운 시절을 살다 간 많은 이를 상징하고 있다.

빨치산의 딸로 산다는 건

정지아 작가에게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1990년에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실제로 빨치산의 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부터 지리산에 입산한 빨치산이었고, 어머니 또한 남부군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정 작가의 작품 중에는 빨치산의 딸로 산 경험과 평생 사회주의자로 산 부모의 모습이 담겨 있는 대목이 많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빨치산의 딸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을 마감”했다. 딸은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장례식장의 유일한 상주가 된다. 

대학 강사인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남들에게는 빼도 박도 못하는 빨치산의 딸'일 뿐이어서 아버지에게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았다. 빨갱이 가족은 자기 죄와 상관없이 사회의 죄인으로 살게 하는 나라였으니 주인공으로서는 그게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주인공은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았고, 몰랐던 게 많았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기보다 오히려 문상객들에게 더 풍성하다는 경험을 장례 기간 내내 하게 된다. 다양한 조문객들의 기억과 입을 통해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그 장면들은 사실적이고 시각적이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공간이 된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딸은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하듯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순간들이 담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을 읽다 보면 우리 현대사의 여러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신념과 신념이 첨예하게 맞부닥치며 차라리 부러지기를 선택한 그런 순간들, 과거의 일로 그냥 묻어버리기엔 안타까운 그런 순간들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거의 연좌제를 경험했다. 연좌제는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말한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어 지금은 연좌제가 위헌이고 위법이지만 우리나라 현대사를 지탱한 관습이었다. 

특히 사상범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둔 시민에게 연좌제는 피할 수 없는 굴레였다. 우선 주인공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빨치산으로 지리산에 입산해 그의 가족들은 풍비박산을 겪었다. 토벌대에 의해 처형당한 이도 있었고 남은 이들은 빨치산 가족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 했다. 

주인공 또한 빨갱이의 딸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결혼식 전날에 파혼한 것. 시부모 측에서 사돈 될 사람이 빨치산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들은 혹여 빨갱이의 사위가 될 아들의 미래에 불이익이 있을까 미리 단속했을 뿐이었다.

연좌제가 굴레인 것은 친인척에게도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만약 친인척 중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빨치산, 간첩 등이 있다면, 혹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등 빨갱이로 몰린 민주화운동을 한 인물이 있다면 포기해야 할 사회생활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부를 잘한 주인공의 사촌오빠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빨치산의 조카라는 이유에서였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평생 척지고 살았다. 주인공의 작은아버지는 빨치산의 동생이라는 낙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평생 가난에 짓눌려 살아왔다. 그래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빨치산 형 때문으로 돌리곤 원망하며 살았다. 주인공은 그런 그를 보고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와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표지. 

갈라진 한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례식장

한국 현대사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좌와 우로, 진보와 보수로, 혹은 지역으로 첨예하게 갈린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다만 소설 속 장면들은 현실과는 좀 다르다. 뭔가 이상적 세상처럼 그려진다.

소설에서 장례식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조문온다. 청춘을 함께한 “빨치산 어른들”은 물론 “감옥에서 출소한 아버지가 이 세상과 어우러지며 만든 인연들”, 그러니까 지역의 각종 사회단체 소속 인물들이 문상을 오고, 진보 진영 정치인들은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때론 “뽈갱이가 죽었응게 박수를 쳐야 마땅”하다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고향은 전장”이기도 했다. 빨치산이 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 선 이들도 있었다. 전쟁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소설은 양 끝단에 선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다만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와는 달리 언성을 높여 성토하는 대신”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빨치산의 장례식장은 소설 속에서 “묘하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난해 가을 무렵 출간돼 많은 독자에게 선택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해학적인 문체로 어긋난 시대와 이념에서 이해와 화해를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럽다며 SNS를 통해 추천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본문 중)

소설 속 주인공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화해하기로 한다. 화해는 용서를 동반한다. '현실주의자'인 딸이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은 어쩌면 정지아 작가가 실제로 아버지에게 하고픈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신념이라고 믿는,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 ‘이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자’고 제언하고픈 건지도.

사진=까요가요
사진=까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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