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전 프랑스군과 전투 흔적 남아있는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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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전 프랑스군과 전투 흔적 남아있는 강화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1.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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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우리가 9명 죽었으니, 조선인 9천명 죽이겠다”…문화재 약탈

 

강화도로 건너가기 전에 강화대교 입구에서 북쪽을 보면 산이 하나 우뚝 서 있는데, 그 산이 문수산(文殊山)이다. 해발 376m.

그 산의 능선을 따라 1866년 프랑스군의 침략에 맞서 조선군이 싸우던 산성이 있다. 문수산성이다.

지금은 복원공사를 마무리해 번듯한 산성으로서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만,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일부 구간만 성벽 모습이 드러나 있었을 뿐, 대부분의 성벽은 잡초로 뒤얽혀 있었다.

150년전 이 문수산성은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침략당한 곳이다. 그땐 서양인이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고, 그들을 배척하고 그들이 전파하는 천주교를 탄압하던 시절이었다.

 

▲ 문수산성 (2007년) /사진=김인영

 

1866년초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천주교 탄압령을 내려 이른바 병인박해를 일으켰다. 국내 신도 8,000명이 학살된 가운데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사형되었다. 3명의 프랑스 신부는 피신했고, 이중 리델(Ridel)이란 신부만 간신히 베이징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해 주중 프랑스 공사관에 소식을 알렸다.

프랑스는 조선인 천주교도들이 얼마나 죽었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프랑스 공사 벨로네(Bellonett, H.D.)는 자국인 신부 9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사령관 로즈(Roze, P.G.) 제독에게 조선 원정을 명령했다.

로즈 제독은 일단 군함 3척을 이끌고 9월 18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양화진(楊花津), 서강(西江)까지 올라와서 지형 정찰과 수로 탐사를 하고, 지도 3장을 만들어 돌아갔다.

이어 10월 11일에 군함 7척에 10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1,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조선 원정길에 나섰다. 리델 신부를 앞세우고 조선인 천주교도 3명을 앞잡이로 세웠다.

로즈는 곧바로 10월 16일에 강화부를 점령했다. 최신식 함대에서의 포격에 강화부는 저항도 못하고 점령당한 것이다. 로즈는 “우리는 우리 동포형제를 학살한 자를 처벌하러 조선에 왔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하고,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 9명을 학살했으니, 조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고 밝혔다.

 

▲ 문수산성 (2007년) /사진=김인영

 

이어 10월 26일 프랑스 해군은 강화도 갑곶 건너편 문수산성을 공격했다.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奉常寺事) 한성근(韓聖根)이 대원군의 명을 받고 성을 수비해 프랑스군과 싸웠으나 결국 무기와 병력의 열세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때 프랑스군은 성내 민가를 불태우며 유린했다. 이 결전으로 성의 해안선 성벽이 파괴되고 문루가 모두 불타 없어졌다.

 

▲ 정족산성의 포탄 흔적.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의 격전장으로 노송과 성벽에 각종 포탄의 흔적이 남아 당시 전투가 격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김인영

 

정족산성에는 노송과 성벽에 각종 포탄의 흔적이 남아 당시 전투가 격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군의 침공은 정족산성에서 패하면서 끝났다. 양헌수의 조선군은 지금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에 배수진을 치고 매복에 들어갔는데, 로즈 제독은 정족산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조선군은 정족산성 동문과 남문으로 쳐들어오는 프랑스 군에 포격을 가하면서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사망자 6명으로 포함해 60~50명의 사상자를 냈다.

 

▲ 강화도 정족산성의 성문 /사진=김인영

 

정족산성에서의 패전으로 프랑스군은 퇴각을 단행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강화도 철수 시 고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 문수산성 북쪽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다. /사진=김인영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포내리의 문수산성은 사적 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성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보인다.

 

▲ 복원되기 이전의 문수산성 올라가는 길 (2007년) /사진=김인영
▲ 복원 전의 문수산성 터(2007년) /사진=김인영
▲ 문수산성 정상 표지판 (2007년)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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