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본문 4문단④…변화
상태바
[천부경] 본문 4문단④…변화
  • 주우(宙宇)
  • 승인 2018.01.28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부경에는 변화와 관련된 구절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부분을 살펴보면 無匱化三(무궤화삼)에서 化, 運三四成(운삼사성)에서 運, 그다음 萬往萬來(만왕만래)에서 往來, 用變(용변)에서 變, 끝으로 不動本(부동본)의 動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된 단어들을 종합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 중용 23장의 치곡(致曲)입니다.

 

其次致曲(기차치곡) 曲能有誠(곡능유성) 誠則形(성즉형) 形則著(형즉저) 著則明(저즉명) 明則動(명즉동) 動則變(동즉변) 變則化(변즉화) 唯天下至誠爲能化(유천하지성위능화)

- 중용(中庸) 23장 기차치곡장(其次致曲章)

 

치곡(致曲)에서 곡은 ‘굽을 曲(곡)’이며, 치는 ‘다다르다’ ‘이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치곡은 말 그대로 ‘굽은 것에 다다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치곡이 원래 의미대로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굽은 것이란 곧바른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처럼 진실이 감춰져 있어서 곧바로 알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치곡은 에둘러 있는 줄 모르고 헤매다가 바르게 아는 것을 말하며, 曲은 굽어 있는 비밀을 상징합니다.

실례로 곡진이해(曲盡理解)라는 말은 굽은 것이 다하여 없어져야 바르게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치곡(致曲)은 앞에서 말했던 ‘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자신한테 특정 의미가 있음을 알아본다.’는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과 비슷합니다.

치곡(致曲), 즉 굽어 있는 진실에 이르고자 한다면 내가 아직 진실을 모른다는 것,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지금까지 엉터리를 알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를 수 있음을 아는 ‘무지의 자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선입견과 통념 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확신하고 있을수록 틀릴 수 있다는 자세로 ‘판단중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굽어 있는 진실에 접근하려면 자신이 모르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그동안 알아왔던 엉터리 정보를 과감히 버림으로써 자신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처음의 曲能有誠(곡능유성)과 마지막의 唯天下至誠爲能化(유천하지성위능화) 사이는 변화과정을 말하고, 연관이 있는 이 두 구절 모두 誠(성) 能(능)을 강조합니다. 굽은 것에 能하려면 誠이 있어야 하는데, 오직 천하의 誠에 이르러야 변화에 능해진다는 뜻입니다. 즉, 曲에 능해지려면 결국 至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굽어서 감춰져 있는 진실에 접근하려면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至誠을 다해야 가능하지 주먹구구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과정은 먼저 태도적으로 바뀐 후 본질적으로 완전히 바뀝니다. 이 변화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誠(성) → 形(형) → 著(저) → 明(명) → 動(동) → 變(변) → 化(화)

 

굽어 있는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정성스러우면(誠 성) 나타나고(形 형), 나타나면 뚜렷해지고(著 저), 뚜렷해지면 명확해지고(明 명), 명확해지면 움직이고(動 동), 움직이면 외적 변화(變 변)가 일어나고, 외적 변화가 일어나면 내적으로 변화(化 화)된다.

 

성(誠)이란 감춰진 진실을 알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참된 앎을 위한 출발점은 ‘내가 진실을 모를 수도 있다’는 ‘무지의 자각’이 도움됩니다. 담마(dhamma)라는 진실을 알기 위해 서원(誓願)을 세우는 단계입니다. 십우도(十牛圖)로 말하면 소를 찾아 떠나는 심우(尋牛)입니다.

성(誠)하면 형(形)한다는 것은 진실을 알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외부나 내면에 ‘형’(形)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형(形)이란 뭔가 어렴풋이 형체가 잡히는 것입니다. 꿈이나 생각을 통해 내면이나 외부의 상(象)으로 나타납니다. 막막한 상태에서 뭔가 길이 보이고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실마리를 찾고 나면 가야 할 방향이 대충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선입견이 있어서 외부에서 알려줘도 긴가민가한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십우도(十牛圖)에서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견적(見跡)이 되겠습니다.

그다음 형(形)하면 저(著)한다는 것은 어렴풋한 상(象)이 점차 뚜렷해진다는 뜻입니다. 현저(顯著)해진다는 말이죠. 성심을 다해 궁구해가면 점차 뚜렷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직 이면의 진실을 보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십우도(十牛圖)에서 소를 발견한 견우(見牛)가 되겠습니다.

그다음 저(著)하면 명(明)한다는 것은 뚜렷해진 상(象)의 의미를 알아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명(明)이란 대상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대상의 이면 진실을 알아보게 된 상태입니다. 십우도(十牛圖)에서 소를 붙잡은 득우(得牛)가 되겠습니다.

그다음 명(明)하면 동(動)한다는 것은 진실이 보여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 움직임은 대상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고, 자신이 어찌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대상에 관련한 진실을 보고서 내린 마음의 결정입니다. 십우도에서 소를 길들인 목우(牧牛)가 되겠습니다.

동(動)하면 변(變)한다는 것은, 결정 후에 일어나는 외적 변화를 통해서 자신이 변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기 내면의 변화가 외부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체험으로 터득합니다. 그래서 외부가 변화하게 하려면 자신의 변(變), 즉 자신의 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십우도의 소를 길들인 상태인 목우(牧牛)가 되겠습니다.

변(變)하면 화(化)한다는 것은, 자신의 외적 변화(變)를 통해서 내적 변화(化)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화(化)는 본질적인 변화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얼음이 물로 바뀌는 것은 변(變)이지만, 줄기가 열매로 바뀌는 것은 화(化)입니다. 전자는 행동의 변화인 태도적 변화이지만, 후자는 존재의 변화인 본질적 변화입니다. 자신의 태도적 변화만으로는 어느 날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결국 본질적 변화가 도움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태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본성까지 바뀌는 것입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내 존재상태가 새로운 차원으로 탈바꿈하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결심(決心)이 아니라 존재상태가 완전히 바뀌겠다는 결단(決斷)이 필요합니다. 물론 존재상태의 변화에 따라 외부상황도 함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십우도(十牛圖)의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騎牛歸家)가 되겠습니다.

 

이처럼 치곡(致曲)은 굽어 있는 진실을 찾아가는 동안 외부현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결국 자신의 존재상태가 변화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를 크게 구분해보면 정성(誠)스런 자세로 형(形)·저(著)·명(明)의 앎의 과정을 거쳐 동(動)·변(變)의 결단을 통해 화(化)라는 지성(至誠)의 존재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