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안의 부동산 전망] '정비사업'을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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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안의 부동산 전망] '정비사업'을 정비해야 한다
  • 권주안 한국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3.01.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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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안 한국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우리는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과실은 대단했지만 그 과정에 나름 비용도 지불했다. 일자리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고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단시간에 공간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시장은 가격 상승을 통해 균형을 잡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택가격은 끝없이 올랐지만, 주거공간의 대량공급으로 절대 부족은 조금씩 해소됐다.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로 요약되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기술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와 많이 밀접해졌다. 기존 공간에 새로운 장치들이 연결되면서 공간과 공간 사용주체인 사람들도 다양하게 묶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편익과 부가가치가 만들어지고 공간은 변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성장 과정에서 감가된 공간의 가치 창출력은 기술혁명이 줄 부가가치를 담기 위해 복원돼야 한다. 이것이 공간 정비사업의 미션이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에도 결과는 그렇게 만족할만하지 않았다.

전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시민 참여 등 참신한 접근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추진 방식과 수단도 미흡했지만 주택시장 상황 변화로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지자체들의 예산 따먹기 식 접근과 전문성 부족은 예산 낭비와 부족한 효과로 이어졌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비사업의 공익에 과도한 무게중심 

최근 대두되는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보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1기 신도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보고서에서 평촌과 분당의 표본 단지를 대상으로 재건축 사업성을 검토했다. 기본 조건에서 분당은 25% 정도 단지만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고, 평촌은 착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용적률 차이로 재건축 가능 여부가 단지별로 다를 뿐 아니라 동일한 경과연수를 가진 1기 신도시 외 지역의 공동주택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조합의 제안에 공공은 공익을 얹는다. 공익은 당연한 가치지만 어렵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조합의 생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면 사익과 함께 공익도 사라진다. 그렇지만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등 정비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공익에 무게를 더 주었고, 사익은 없어졌고 공익은 기회를 잃었다. 대립되는 이분법적 생각이 정비사업의 긍정적 편익을 없애버렸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대안으로 부상했던 리모델링은 어떨까? 사업 추진이 가능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가 극명하게 갈린다. 경우에 따라 리모델링이 재건축 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결과도 나온다.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비용이 너무 들면 추진은 어려워진다. 무턱대고 사익을 진작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억제하는 것만도 능사가 아니다. 

정비사업이 어려워지면 공간의 생산력 복원은 멀어진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현실이 그랬다. 이분법적 생각을 넘어서면 어떨까? 사익을 통해 공익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비사업의 미래가치와 성장 궤적을 공유한다면 융합된 시각에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지자체 참여 확대해야

가능하면 모든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지자체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동일 목적에도 분리 관리됐던 개별 사업들을 하나의 법 체제로 묶으면 지금보다 유연한 여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가 참여해 주민들이 최선안을 선택하도록 법 프레임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자체 참여는 조합원의 사익과 지역의 공익 모두를 융합시켜야 한다. 어떤 정비사업을 적용하는 것이 지역 상황에 적절하며 개별 사업장에도 최선의 선택인지 주민인 조합원과 공유해야 한다. 이는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상기 보고서의 제안인 '공공 컨설팅'과 결이 같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지자체는 '용도용적제'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비사업의 범위가 넓어져 행정 경계를 넘으면 인접 지자체간의 협업도 가능해야 한다. 선언적 협업이 아니라 실질적이며 실천적 협업이어야 한다. 최근 서울 인구가 감소하면서 서울 외곽으로 인구가 넓게 집중되고 있어 행정구역 보다는 생활구역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에서는 사익과 공익을 나눌 이유가 없다. 조합 제안에 공공이 딱딱한 공식에 맞춘 공익을 끼워 넣는 접근은 시간만 허비할 뿐, 실익이 없다. 시장 균형이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제적 잉여를 극대화하듯, 사회적 필요로 파생되는 정비사업의 효능은 사익과 공익이 잘 융합되어야 한다. 공간의 적응이라는 목적에 집중한다면 유연하고 탄력적 접근이 가능하다. 

정비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어느 특정 집단에 종속되는 사익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편익으로 확대돼야 한다. 투자가 가치를 만들면 기술 혁명은 이를 검증할 것이다. 정비사업의 가치가 공유되었다면 합목적의 실천적 의지만 남아야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 셈이다. 틀을 바꾸면 가능할 것이다.

권주안 교수는 한국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주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지내고 2015년 주택산업연구원장에 취임했다. 현재 한국주택학회 이사,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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