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사태' 50년, 소나무엔 아직도 총탄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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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50년, 소나무엔 아직도 총탄 흔적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1.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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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서울성곽길에 북한 무장공비와 교전 자국

 

벌써 50년이나 지난 사건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요원 31명이 침투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를 ‘1·21 사태’라고 한다. 이들의 목적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 요인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북한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들은 한국군 복장을 하고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해 야간을 이용해 서울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일단 세검정을 통과해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중이던 경찰의 불심건문을 받고 정체가 드러났다.

북한 특수부대는 우리 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한편 지나가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이 살상당했다. 이날 밤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崔圭植) 총경이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했다.

경찰의 제지를 받은 북한 특수부대요원(당시 무장공비라고 불렀다)들은 1월 22일부터 31일일까지 흩어져 인왕산, 부암동, 북한산, 도봉산, 송추, 파평산 일대로 도주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우리 군경에 의해 29명이 사살되었다. 도주자 1명은 북한으로 넘어갔고, 1명을 생포했다.

생포된 김신조(金新朝)는 그동안 김일성의 허위선전에 속아 살아왔음을 깨닫고 한국으로 귀순했다. 그의 이름을 따 이 사건을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그는 나중에 종교인이 되었다.

도주한 공비는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한 박재경으로, 2000년과 2007년 수울에 와 송이버섯을 선물하기도 했다.

 

서울성곽길 가운데 청와대 뒤편 북악산(백악산)길을 걷다보면 50년전 1·21 사태의 흔적이 똑똑히 남아있다. 이름하여 ‘1·21 사태 소나무’다. 우리 군경들이 도주하는 북한 공비들과 총격전을 벌였던 흔적이다. 소나무에 총탄 흔적이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고, 등산객들에게 망각하기 쉬운 북한의 실체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의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하였을 대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수령 200년이 된 이 소나무에는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게 되었다. 이후 1·21 소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 1·21 소나무 표지판 /사진=김인영

 

이 사건은 박정희 정부가 북한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해 향토예비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 1·21 사태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소나무 /사진=김인영
▲ 1·21 사태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소나무 /사진=김인영
▲ 북악산 서울성곽길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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