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를 거부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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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를 거부하는 사회
  • 김이나 에디터
  • 승인 2018.01.1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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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노 땡큐”보다 “예스 플리즈”라 말하라

[김이나 칼럼니스트]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딸을 위해 미디어와 국민에게 호소하여 모금한 돈 대부분을 자신의 비정상적인 취미를 위해 써버렸던 아버지가 급기야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건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여긴다는 영화 속 명 대사가 생각났다.

전국에서 답지 되는 성금을, 당연히 받아서 흥청망청 써도 되는 용돈 쯤으로 여긴 아버지.

호의(好意)의 사전적 의미는 친절한 마음씨 혹은 좋게 생각해 주는 마음이다. 우리가 호의를 베풀 땐 그 수혜자의 거창한 감사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잖이 도움이 되길 바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그 아버지는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호의가 필요한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독거노인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고 가족이 와해되어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사회의 도움이 없다면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

국가가 돌봐야 할 사람은 갈수록 늘어가는데 예산은 제한되어 있어 혜택을 받는 사람들 조차도 불만이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 국가가 아닌 이웃의 도움을 받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마을의 구성원끼리 서로 도와주고 아픈 사람이나 사정이 딱한 사람을 돌봐주던 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미풍양속 이라고들 하지만 호의가 넘쳐 흐르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처지가 딱한 이들을 향해 돈과 시간을 베풀고, 최소한 마음이라도 할애한다.

그런데 예의 그 사건처럼 호의를 권리인양 행사한 아주 소수의 나쁜 사람들 때문에 호외를 베풀고자 하는 선한 이들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

정말 안타깝다.

그런데 한편으로 호의든 악의든 어떤 의도로든 타인의 접근 자체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상대방이 호의를 베풀겠다고 접근해도 그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상대방이 마치 “호의를 베풀 테니 어디 한 번 말해봐.” 라고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시선에 나의 삶은 석류 갈라지듯 단번에 그 속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호의는 언감생심, 나에게 해나 입히지나 말기를 바라는 천산갑, 코쿤의 삶을 사는 사람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로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오지랖을 주체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타인의 불행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 며 감사 기도를 올리며 베푸는 것이 호의라고 치부하는 것도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이런 지나친 경계심, 거부감은 결국 관계에 대한 피로도가 갈수록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피로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 unsplash

 

가족, 친구, 직장, 학교, 군대, 종교단체 기타 자의반 타의반 소속되어 있는 각종 커뮤니티. 태어나면서 소속된 가족, 혼인에 의해 소속된 시댁 식구, 처갓집 식구라는 커뮤니티는 그렇다 치고 자발적으로 가입한 커뮤니티 내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현실이다. 커뮤니티의 성격과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결국 그 구성원들과의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눈치껏 잘 행동해야 하고 이미지 관리도 잘 해야 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포상도 받는 것이 현실 아닌가.

지금 당장 SNS의 친구들을 정리하자. 휴대폰 주소록에서 지난 1년간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의 전화번호도 삭제하자.

관계에 지쳐, 사람에 지쳐 호의 마저도 호의라 여기지 못하고 사는 것 보다는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적당한 관계들을 잘 유지하면서 적절한 관심을 유지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노 땡큐”보다는 “예스 플리즈” 를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김이나씨 ▲몽고식품 마케팅 총괄 고문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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