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을 그리워하는 은자들의 도피처, 연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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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그리워하는 은자들의 도피처, 연주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1.10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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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을 올라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이 곳을 가지 않으면 관악산을 등산했다고 하지 못한다. 다리가 뻐근해지도록 오르다보면 깎아지는 듯 한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가 나타난다.

연주대(戀主臺)다.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주인을 그리워 하는 암자’라는 뜻이다. 그 주인은 임금을 의미한다.

해발 고도 629m. 암자를 떠받치고 있는 가파른 절벽 봉우리가 연주봉이다. 소유자는 보광사다.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연주암의 시초는 신라시대다. 의상(義湘)대사가 문무왕 17년(677년)에 창건했는데, 처음에 의상대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아래 골짜기에 관악사(冠岳寺)를 지었다. 그후 이 높은 곳까지 찾아오는 이가 드믈어 폐사되다시피 되었다가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와 관악사를 다시 지었다.

 

▲ /사진=김인영

 

연주대에 관해 알아두어야 할 몇가지.

첫째, 행정구역상 경기도라는 사실이다. 관악산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데, 연주암은 정상에서 남쪽에 지우쳐 경기도 영역에 있다. 그곳 스님에게 물건을 보낼 경우, 경기도 과천시 금령로 90번길 7(중앙동 85-1)라고 주소를 서야 한다. 경기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둘째,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을 반대한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 세종대왕의 형님인 양녕과 효령대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태종 11년(1411년), 양녕과 효령대군은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다가 이 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들은 이 곳에 올라 멀리 궁궐을 바라보며 임금이 되지 못한 한을 되새겼다고 한다.

 

▲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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