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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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생각하며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8.01.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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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둘레길 2018 구간을 쉬엄쉬엄 함께 걸어갑시다.”

 

[조병수 프리랜서]

 

서쪽하늘 두둥실

큼직한 달 덩어리

돌아서니 지평선엔

눈부신 아침 해

 

언제나 내 주변을

감싸 도는

그 달이고 그 해인데

 

오늘아침 새삼스레

보이는 그것은

오늘따라 새삼스레

마음에 닿는 것은

 

언제나 같은 하늘

넘나드는

그 해이고 그 달인데

 

오늘아침 새삼스레

내 눈에 보이고

오늘따라 새삼스레

내 맘에 닿는 것은

(『오늘아침』)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 해 1월에 적어둔 소회(所懷)를 펼쳐본다. 그 해와 그 달이 돌고 돌아 또다시 새해가 밝아오고, 새로운 시선과 소망으로 다가오는 나날을 기다리게 된다.

SNS 공간으로 수많은 덕담과 인사말들이 오간다. 앞날을 축복하는 마음들이 따뜻함을 안겨준다. 그러고 보니 카드와 우편으로 전해지던 문안인사가 사라진 지도 꽤 된 것 같다. 우리를 감싸 도는 그 달과 해는 여전한데,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이렇듯 빠르게 움직인다.

 

▲ 송도 센트럴파크의 아침 /사진=조병수

 

지난 연말, 괜스레 분주한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집어 든 책이 법정스님의 『무소유』. 그 중에서 “소음기행”이란 절(節)이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나날은 한마디로 표현해 소음이다. ···

소음에 묻혀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은 접촉의 과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과다에서 인간적인 허탈에 빠지기 쉽다. ···

자기 언어와 사고를 빼앗긴 일상의 우리들은 도도히 흐르는 소음의 물결에 편승하여 어디론지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

이런 표현의 글이 쓰여진 때가 1972년이란다. 그 두 해 전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에서 쉴새 없이 틀어대는 유행가 가락에 지친 마음을, “현대는 정말 피곤한 소음의 시대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요즘에는 아예 전국 방방곡곡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피곤한 소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는 그 “소음”이란 단어를 쏟아지는 ‘정보’라고 바꾸어도 말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그분의 혜안(慧眼)에 감탄한다.

 

언제가 인적 드문 한낮의 여의도 공원 곳곳의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 퍼지던 노랫가락,

서해바다 갯벌을 메우고 신축한 아파트단지의 한적한 지하주차장에서 차 엔진소리와 배관 기계음이 뒤섞인 멜로디,

새로 들어선 거리상가(스트리트 몰) 부근의 길거리와 통행로에다 스피커를 내다 걸고 밤낮없이 퍼 나르는 소리들,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트에서 쉼 없이 반복되는 안내방송,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중소형마트의 마이크소리들···.

음식점이나 커피숍의 어지러운 노랫가락과 소음 속에서 서로 목청을 돋우는 풍경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손님들의 큰 목소리가 먼저인지, 아니면 음악소리가 커서인지···.

그리고 많이 나아졌다지만 광역, 직행버스에서의 라디오소리 강제배급, 거기에 몇 십 분씩 전화기에 매달린 승객이라도 가세하는 날에는, 그 이동시간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자유함은 설 자리를 잃는다.

오죽하면 그 고매한 스님도 “내가 낸 돈으로 차가 달리고 있는데 거기에 내 뜻은 전혀 개입될 수 없다”고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셨을까.

탄소감축,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국제기구를 유치한 나라의 도시들이 이렇듯 온갖 조명으로 밤을 밝히고, 인적 드문 공원이나 지하주차장에까지 음악을 틀어놓을 만큼 여유를 부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던져진 화두(話頭)에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던 터에, 새해아침 배달된 한국경제 사회면에 “명동·신촌 관광명소 연말연시 소음에 ‘몸살’···귀가 괴로워”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나와있다. 모두들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좀 덜 피곤한 생활에 대한 갈망은 엇비슷한가 보다.

 

새해아침이다. 이제는 분주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피곤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그리고 좀더 남을 배려하고 제대로 질서를 지키는 사회, 모든 일에 지나침이 없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오늘아침, 대소가(大小家) 어른이 보내온 그림카드의 문구(文句)가 마음에 닿는다.

“인생둘레길 2018 구간을 쉬엄쉬엄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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