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중대재해처벌법 부작용,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상태바
[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중대재해처벌법 부작용,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승인 2023.01.05 11: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무지보다는 잘못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

극작가이자 비평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의 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에 대해 '잘못된 지식'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산업현장 등 곳곳에서 많은 부작용과 모순이 속출하는 건 예상된 일이었다.  

종전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부족하나마 사업장의 실정에 맞는 자율안전관리의 움직임이 종종 엿보이곤 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대기업들조차도 법에 정해진 것만을 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엄벌로 중무장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다 보니 서류작업 중심의 형식적 법 준수에 급급하게 된 것이다. 안전역량을 높이는 실질적인 안전관리는 한가한 일이 돼버렸다. 기업의 자율안전관리는 자취를 감춘 듯하다.

발주자로서의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도 큰 문제다. 발주자가 수급인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해 수급인을 대상으로 지도와 관여를 하게 되면 책임주체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급인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해 발주자가 선의로 지도·관여를 해온 것이 형사처벌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해, 하청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치에서 발을 빼고 있는 발주자가 많아지고 있다. 모든 안전조치에 대해 도급, 용역, 위탁 등을 준 자를 책임 대상으로 삼으려는 무리한 접근이 초래한 진풍경이다. 발주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판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들의 소극적 대응을 유발하고 역할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중소 건설사가 안전인력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부작용이다. 대기업, 공공기관이 안전부서 조직과 인원을 외형적으로 확대하다 보니, 안전관리역량이 가장 취약한 곳의 자율적 안전관리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해 줘도 모자랄 중소 건설사의 안전관리에 재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법 CG. 자료제공=연합뉴스
중대재해법 CG. 자료=연합뉴스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태부족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들에게 안전관리를 스스로 하기보다는 외부기관에 의존하는 것을 조장하고 있는 것도 안전역량을 뒷걸음치게 하는 역기능을 낳고 있다. 안전관리의 과도한 외부 의존은 자체 안전관리역량을 훼손하고 안전관리의 형식화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기관이 전문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컨설팅 의뢰 기업의 당초 의도가 안전역량 강화보다는 책임 회피에 있다 보니 컨설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맹목적 컨설팅을 부추기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근본원인이 있지만, 다분히 책임 회피성의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하나의 부작용은 수사기관에서 법규정과는 다르게 최고경영자만을 처벌하려고 하다 보니 최고경영자가 아예 안전문제로부터 손을 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경영자가 조금이라도 안전문제에 관여하면 처벌될 것을 우려해 안전관리를 안전최고책임자(CSO)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탓할 게 아니다. 최고경영자를 안전문제에서 뒤로 물러서게 하는 이런 '웃픈' 현상을 조장하고 있는 정부가 비판받아 마땅하다.

수사기관의 최고경영자 처벌 집착은 CSO가 경영책임자 자격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최고경영자와 CSO 누구도 처벌하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수사기관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이고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헛발질을 자초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전을 강화한답시고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히려 안전관리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잘못된 지식'의 당연한 폐해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기규율'를 강화하는 것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손보지 않고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수사준칙도 준수하지 않고 먼지털이 수사를 하면서 예방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막무가내식의 자료요구와 자의적인 법집행을 일삼고 있다. 노동부 스스로 실력이 없다 보니 자신들이 입증할 생각은 하지 않고 피의자 측에 입증하라는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고 있다. 법과 원칙은 이들에게는 딴 나라의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막대한 비용이 안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곳에 허투루 쓰이고 있다. 안전 취약계층의 보호에 요긴하게 쓰여야 할 재원이 중대재해처벌법에 기생하는 자들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정의에도 반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안전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을 방치할 것인지 정치권에 묻고 싶다.

정진우 교수는 행정고시 합격후 고용노동부에서 19년 6개월간 근무했다.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법학석사학위 취득 후 고려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에서 안전관계법, 안전관리 등 안전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론, 산업안전관리론 등 11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중 3권은 세종도서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안전 2023-01-06 16:33:22
중대법 뿐만이겠습니까... 기재부 노동부 안전보건공단에서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제, 공공기관 안전활동 수준평가로 안전관리 서류 지옥을 만들어 놨습니다. 안전은 현장이 아닌 서류로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