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본문⑦…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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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본문⑦…사(四)
  • 주우(宙宇)
  • 승인 2017.12.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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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四!’ 이군요.

서두에서 제가 조금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4에 대한 인식은 죽을 四(死가 아닌데도), 공포의 四, 두려운 四, 재수 없는 四등 너무 부정적이랍니다. 게다가 대체로 4동 4층 4호가 없는 병원,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F’ 표시가 내 두려움을 숨겨주니 고맙게까지 여길 정도로 피해야 할 나쁜 ‘四’라고 여기고 있네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四’는 천부경에서 특별히 중요합니다. 지금부터 천부경에서 말하는 ‘四’와 四를 완성해간다는 ‘四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각자의 존재상태에 따라 天1極·地2極·人3極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前三極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에 따라 두 갈래의 다음 상태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大三極이라는 탐진치의 태도를 보이면 六을 거쳐서 後三極의 오로(誤路)로 가게 된다는 점을 앞에서 서술했습니다. 반면에 運三極이라는 성찰의 태도를 보일 때, 즉 자신 앞에 펼쳐진 현상에 대한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人3極 중에 자신의 모습이 있음을 알아본다면, 자신의 모습을 반영해주는 그 人3極이 4極의 역할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성공한 前三極의 프로젝트팀이 4極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쪽의 서술처럼 수리(數理)로 본다고 해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자녀를 낳아 안정된 가정에 변화를 주려면 외부의 자극이 요구되므로 제4의 구성원이 들어와야 합니다. 이처럼 안정적인 ‘3’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촉매의 역할을 맡는 ‘4’가 필요합니다.

 

역학의 1·6水(수), 2·7火(화), 3·8木(목), 4·9金(금) 중에 가을을 의미하는 4·9金이 나를 열매 맺게 해주고, 나를 완성해주며, 나를 진실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四는 자신이 실제로 되고자 하는 참모습을 일깨워줍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4金이 ‘저절로’ 자신을 완성하게 해주지 않으며, 자신이 ‘四’를 알아보고 ‘四’를 완성해가야만 된다는 겁니다.

이 ‘4金’이 바로 四인데, 4金이 역학(易學)에서 도출되는 과정을 알아보면 만물이 물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1水(수)에서 출발합니다. 그다음 1水(수)에 상대성으로서 2火(화)가 제시되고, 그 과정에 3木(목)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4金(금)이 균형을 맞추려고 3木(목)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5土(토)가 중앙에 자리하고서 통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천부경과는 달리 역학(易學)이 특히 상생상극(相生相克) 부분은 우리의 실생활에 적합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木(목)과 火(화)의 관계를 목생화(木生火)라고 하나 이는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에서 큰 나무가 불을 꺼버릴 수 있는 점을 적합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다만 오행(五行)에서 에너지(氣)의 원론적 역학관계 정도만 참고하면 된다고 봅니다.

 

▲ 테트락티스(Tetractys)
피타고라스학파에서 4는 서약의 숫자이고, 신성을 상징하는 4와 10은 성수(聖數)입니다. 빛을 상징하는 5는 짝수(2)와 홀수(3)의 결혼을, 10은 완성,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다음 ‘四’를 완성해가려면 먼저 ‘四’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四를 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人3極(인3극) 중에서 맞상대를 알아본다는 말입니다. 人3極의 역할을 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나의 맞상대인지를, 특히 겉보기가 아닌 내면이 상반된 대상인지를 알아볼 때, 즉 상대가 나를 완성하게 해줄 사람임을 알아볼 때, 그 상대방을 바로 ‘四’라고 합니다.

이는 주변 사람 중에 나를 완성해줄 사람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 중에서 나하고 반대인 사람, 나 아닌 사람, 원수처럼 미워지는 사람, (자신과 비슷하다면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므로) 본받고는 싶은데 부담되는 사람, 마주칠까 봐 겁나는 사람, 회피하는데도 이상하게 엮이는 사람, 특정 행위를 내 앞에서 반복하는 사람, 내가 취약한 때에 맞춰서 나타나는 사람, 나의 단점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사람 등이 바로 ‘四’입니다.

이처럼 나하고 비슷한 유유상종의 색(色)이 아니라 나하고 다른 빛을 만날 때, 그것도 완전히 상반된 빛을 만나 통합을 시작할 때에야, 자신이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런 타자(四)를 알아보고(覽) ‘그림자 통합작업’을 해내야만 바로 진짜 사람(四覽)이 된다는 거죠. 이것이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 근거가 있습니다.

 

천부경(天符經)이 옛날 환웅시대부터 전해진 거잖아요. 그리고 그때 단군의 탄생에 관련한 신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군신화(檀君神話)에 ‘四’라는 타자를 통한 그림자 통합과정이 상징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단군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부인(天符印)을 받아 이 세상에 내려온 환웅에게 곰하고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요. 그래서 쑥과 마늘(蒜)을 먹으면서 동굴 속에서 견뎌내라고 합니다. 그 과정을 견디어낸 곰이 사람이 되어서 환웅과 결혼하게 되고, 그다음 단군을 낳는다는 이야기죠.

짐승 중에서 끈기가 부족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는 데 실패하지만, 끈기로 견뎌낸 곰은 성공합니다. 짐승이 사람으로 상승한다는 것이죠.

그 쑥과 마늘은 독하므로 대다수 싫어합니다. 그리고 동굴에 들어가 보면 깜깜한 어둠이거든요. 이런 싫고 어두운 것을 심리학에서 그림자(shadow)라고 합니다. 그 깜깜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견디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외롭고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짐승이 그 힘든 과정을 견뎌낼 때 바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이 신화는 이야기해줍니다.

대부분 현실의 삶은 사실상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야생의 짐승들이 생존에 급급해하듯이 인간들도 대다수 생존에 급급해하며 현실을 살고 있잖아요. 내일을 걱정해서 안전지대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우월해지려고 하는 것이 다 살아남기라는 생존(生存)인 셈이죠. 이게 다 일신과 가족이 먹고사는 데 급급해하는 짐승의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죠.

이렇게 생존에 급급한 것을 붓다께서 오온(五蘊)의 복합체인 까야(에고, kāya)라고 했습니다. 이 짐승의 상태에서 사람의 상태가 되려면 단군신화에 나와 있듯이 백일을 각오로 시작하여 삼칠일(三七日) 동안 지독한 마늘과 쑥을 먹고 어둠을 견뎌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삼칠일(三七日) 동안 금기를 지키듯이 수행인이라면 21일간 그림자를 견뎌내야 하고, 백일이 될 때까지 몸조리하듯이 마음을 성숙시킴으로써 四를 완성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이것이 소위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입니다.

이런 식으로 四를 완성해갈 때, 즉 자신의 그림자인 四를 알아보고(覽) 사람(四覽)이 되어가다 보면, 2와3 그리고 4와1이 합쳐져서 ‘5’가 돼서 결혼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사람이 된 웅녀와 환웅이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다음에 낳는 단군이 바로 ‘10’이거든요. ‘열 十(십)’을 낳아서 거기서 홍익(弘益)하는 인간이, 이화(理化)하는 세계가 열리는 겁니다.

반면에 끈기로써 ‘四’의 존재됨됨이를 완성해나간 곰과는 달리, 욕심으로써 우월한 입지를 꿈꾸며 삼칠일(三七日) 21일간 그림자를 견뎌내지 않고 백일이 될 때까지 몸조리하듯이 마음을 성숙시키지 않는 호랑이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행세하는 짐승 같은 생활(六)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천부경의 四와 단군신화가 의미상 맞물린다는 점 대단히 놀랍지 않습니까? 솔직히 과거 단군신화의 내용을 접하고서 그 신화가 이 땅의 구성원들에게, 특히나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척 궁금했거든요.

이런 점에서 여러분이 종교단체나 수행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그 집단의 장이 이야기하는 말을 잘 듣는 것은 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행단체 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어려운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통해서 그림자 통합작업을 해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적어도 단군신화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지요.

 

‘四’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해보면 우리가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하잖아요. 보석 같은 사람이란 人3의 무리 중에서 내 마음에 안 들고 또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를 깨닫게 해주고 나를 완성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보석에 대한 다양한 비유가 있는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아서 사람이 보화를 발견하면 그대로 덮어두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버린다.’는 비유의 말씀을 합니다.

보화를 발견한다면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보석을 사버리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보석(4金) 같은 사람, 즉 자신을 완전하게 해줄 상대한테 온 마음을 바쳐 대접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안한 방식을 신뢰로 결단해서 실행해보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영적 투기를 결행하라는 거죠.

사실 ‘다걸기’(all-in)를 하라는 것이죠. 보석이 있다고 가진 걸 팔아 밭을 사는 것은 다걸기 아니겠습니까? 재산을 거기다 전부 투자하는 게 오히려 삶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부자에게 가진 재산을 몽땅 팔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고 오라”고 말씀했어요. 이 말의 전제를 확인해보면 예수님은 ‘완전해지고 싶다면’이라고 했습니다.

둘 다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방식을 결행했을 때에야 보석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이야기하는 보석을 구하는 이러한 길을 걸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위 미쳤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여기서 미쳤다고 하는 것은 내가 어려운 길을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길을 가기 때문에 미쳤다고 하는 것이지, 특정 책에 빠져버리거나 도리를 다하지 않아서 미쳤다고 하는 것과 다릅니다. 어쨌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므로 저항이 만만치 않고, 이것은 외로운 길이고 고독한 길이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길이고 동굴 속의 길입니다.

이 점을 볼 때 수행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서원(誓願)을 세워야 합니다. 바로 사람이 되겠다는 서원입니다. 단군신화에서도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청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야! 너희 사람이 되어볼래?’ 이런 게 아닙니다.

서원을 세운 다음에는 사실상 자신 때문에 나타난 人3의 사람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특히 나를 헐뜯는 사람을 통해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고독한 길이고 동굴 속에서 어둠을 견뎌내는 길입니다. 방법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단해서 실제로 시작하면 우주가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本(본)(담마)을 통해서 친절히 일러줍니다. 그래서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四가 그림자이며 자기와의 통합으로, 동굴 속 웅녀가 四(사)람(覽)이 되며 환웅과 낳은 단군의 홍익인간 재세이화 신화로, 어렵고 기나 긴 두 이야기의 진면목을 쌍칼로 파헤쳐 단번에 엮어내는 주우님의 四에 대한 통찰에 저는 끼어들 새도 잊고 숨죽인 채 들었습니다. 자신의 간절한 바람으로 쓴맛과 매운맛을 견뎌내며 그림자 통합을 이루어 사람(四覽)이 되기 전에는 짐승이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그동안 저는 무섭고 두렵다고 맹신해서 ‘4’를 어쨌든 피하려고만 했는데, 오히려 성장을 돕는 ‘四’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군요. 이 땅의 정신적 유산인 천부경을 통해 성장을 방해한 뿌리 깊은 四의 오류를, ‘四와 함께한다’는 의미인 ‘四(사)랑’으로 바로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장을 바란다면서도 四를 피했던 저는 이제 성장하겠다는 의지로 四를 반기며 ‘四(사)랑하게’ 되었군요. 반전의 ‘四’입니다.

 

자신과 상반된 사람을 만나서 그림자 작업하는 데 도움되는 책이 있습니다. 데비 포드의 󰡔그림자 그리고󰡕라는 책이 있는데, 실증적인 예를 아주 자세히 잘 설명해놓았습니다. 그림자 통합 작업에 관련된 책 중에서 이 책보다 더 괜찮은 책은 제가 지금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검색해보시면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1은 광물, 2는 식물, 3은 동물, 4는 사람, 5는 현자(賢者), 6은 천사라고 합니다. 그중 4란 숫자에는 시련과 선택의 갈림길을 뜻하는 교차점이 있고, 이에 도달한 사람은 3과 5의 교차로에 있으므로 높은 현자의 단계로 나아갈 수도, 동물의 단계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5란 숫자는 하늘에 매여 있으나 땅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이에 도달한 현자는 보통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동물성에서 벗어나 있고, 세상사에 대해서 거리를 두며 본능이나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지는 않으며, 두려움과 욕망을 이겨낸 존재이므로 다른 인간과 거리를 두면서도 인간과 지구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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