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화지산유적, 의자왕이 향락에 빠진 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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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화지산유적, 의자왕이 향락에 빠진 별궁?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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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대지조성 시설, 백제시대 건물지 확인…격이 높은 건물 추정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의자왕 15년(655년)에 “태자의 궁을 수리하였는데 대단히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궁궐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가 망하기 5년 전의 일이다. 이듬해 의자왕은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좌평 성충(成忠)이 적극적으로 말리자, 임금이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어졌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의자왕은 말년에 사치스럽게 궁궐을 짓고 궁녀들과 음란과 향락에 빠졌다. 그렇다면 그 궁궐은 얼마나 사치스러웠을까.

 

충남 부여군과 (재)백제고도문화재단은 부여 화지산유적(사적 제425호)을 발굴조사했더니, 백제 사비시기의 건물지 흔적과 대규모 대지조성 시설이 확인됐다. 이곳은 예로부터 이궁지(異宮地, 임금의 별궁), 정자인 망해정(望海亭)과 어정(御井, 임금이 마시는 우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백제 사비시기의 중요 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4월부터 실시한 4차 발굴조사에서 화지산 정상부와 남서쪽 사면부 일대에 대규모 대지조성시설과 백제 시대 초석 건물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또한 통일신라 시대 화장묘와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광묘들도 확인했고, 백제 개배(蓋杯, 뚜껑이 있는 접시) 조각, 통일신라 화장묘에서 사용했던 완(질그릇)과 뼈단지(장골용기), 고려의 도자기 조각들도 나와 화지산 일대가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사용되었던 공간임이 확인되었다.

 

▲ 화지산 유적 서사면부 전경 /문화재청 제공

 

화지산유적은 2000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한 긴급발굴조사에서 초석 건물지, 벽주(壁柱) 건물지, 기단유구, 목책시설 등 다양한 백제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또한 사비백제의 상류층 주택에서 주로 발견되는 연가(煙家)와 연통(煙筒)토기가 출토되어 기와를 사용한 격이 높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화지산유적은 2001년 1월 사적 제425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과 2016년에 걸친 2‧3차 발굴조사가 있었다.

부여 화지산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소산성, 관북리유적 등과 함께 백제 사비기의 중요한 유적이다. 화지산유적 일대는 인근의 궁남지, 군수리사지, 동남리사지와 함께 백제 사비도성과 관련한 중요 시설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이지만 그 가치에 비해 아직 고고학적 조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부여군은 이번 조사에서 전반적인 유구 존재를 확인한 만큼, 2018년에는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삼국사기」의 의자왕 기록을 더 살펴보자.

옥에 갇힌 성충은 죽을 때 임금에 글을 올렸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말씀 아뢰고 죽겠습니다. 신이 항상 형세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반드시 전쟁은 일어날 것입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형을 잘 살펴 선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병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이 말을 살피지 않았다.

의자왕 20년(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사비로 밀려들었고, 임금은 성충의 계책을 따르지 않았3다. 당군은 도성 30리밖까지 다가오자 백제군이 나서 싸웠으나 패배해 전사자가 1만명이 되었다. 수도가 함락직전이었다. 그때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했다.

실패의 역사도 역사다. 의자왕이 별궁지로 만들었다는 화지산 유적지도 그런 의미에서 발굴과 보전이 필요한 우리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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