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사랑⑫] 병배(幷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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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사랑⑫] 병배(幷配)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12.24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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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 모양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을 산차(散茶)라고 한다. 산차는 즉시 우려 마시기에는 좋지만 대량으로 멀리 운반할 때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운반과 보관을 용이하기 위해 산차를 압축해 단단하게 만든 긴압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 보이차의 특성을 규정짓는 많은 특징 중 하나가 병배(幷配)다. 여러 등급의 차청을 섞어 모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보이차는 잎이 작을수록 좋은 것인가. 보이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이는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의 용어에서 보듯 채엽 시기에 따른 잎의 크기가 품질 등급과 밀접하게 연관된 우리 녹차에 대한 배경지식에 기인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차도 채엽 시기에 따라 ‘명전(明前), 춘첨(春尖)...곡화(谷禾)’ 등 많은 명칭들이 있다. 이는 대개 채엽 시기에 대한 규정의 의미가 클 뿐 잎의 크기 및 품질과는 크게 상관된 개념은 아니다.

 

▲ 남곡 김중경 제공

 

보이차에 채용되는 차청은 크기에 따라 11개 등급으로 나뉜다. 즉, 궁정급(특급), 1~10급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각 등급마다 함유하고 있는 차성분의 함량과 비율의 차이로 인해 맛과 향의 차이가 있어서 그에 따른 소비자의 선호가 있을 뿐 어느 것이 더 품질이 좋고 나쁨이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각각의 등급에 따라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는 차청들을 어떻게 조화 시키느냐 하는 것이 보이차 제작의 핵심인 병배(幷配)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차는 단순하게 한 가지 등급의 차 맛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11가지 등급의 찻잎을 특별한 방법에 의해 병배 과정을 거친다. 다양한 맛들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독특한 맛을 창조해내기 때문에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은 매력을 갖게 하는 것이 보이차의 병배라 할수 있다.

 

긴압 형태에 따라 주로 채용되는 찻잎의 등급을 한 번 살펴보자.

 

① 타차(沱茶) :2~3급

타차는 작은 밥그릇 모양으로 긴압한 형태를 말한다. 보이차는 병배 과정을 거친 차이기 때문에 특정 등급의 찻잎만을 쓰는 경우는 없다. 타차는 특성상 긴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2~3급의 차청을 주로 많이 채용하고 있다.

 

▲ 남곡 김중경 제공

 

② 병차(餠茶) :3~8급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보이차가 병차다. 둥글고 넓적한 형태의 접시모양이다.

병차는 모든 등급의 찻잎을 고루 쓰지만 3~8급 사이의 차청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 가운데 특별한 맛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3~8급 사이에서 특별히 한 가지 등급의 비중을 높이기도 한다.

예컨대 맹해차창이라는 브랜드의 대표적 숫자급 보이청병의 경우

7532는 세 번째 자리 숫자인 3급

7542는 세 번째 자리 숫자인 4급

7262는 세 번째 자리 숫자인 6급의 비중을 특별히 높여 독특한 맛을 갖는 것이다.

 

▲ 남곡 김중경 제공

 

③ 전차(磚茶) :9~10급

전차는 벽돌모양의 형태로 긴압한 보이차다. 전차도 역시 모든 등급의 찻잎을 두루 채용하지만 9~10급 사이의 차청을 주로 쓴다. 때문에 타차나 병차와는 다른 전차만의 독특한 풍미를 갖게 된다.

 

보이차 찻잎의 외형은 굵고 두터워서, 홍차나 녹차처럼 가늘고 이쁘지 않다. 그러므로 병배는 운남대엽종 쇄청 모차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보이차의 굵고 투박한 외형과 내재적 품격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제품의 독창성을 갖추어, 보이차가 중국과 세계 차시장을 석권토록 하는데 있다. 즉 병배는 보이차의 외형적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숨기고, 가장 좋은 부분은 드러내고 낮은 부분은 숨기며, 같은 제품의 품질을 동일화 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병배의 기준이 꼭 정형화 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제작자나 제작 회사별로 나름의 병배 방식이 있어 독창적인 차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예컨대, 맹해차창의 대표적 숫자 보이차 중 하나인 7542청병의 경우 일반적인 병차의 병배 방식을 따르면서 특히 4등급의 비율을 높여 독특한 맛의 세계를 이루어 낸 것이다. 거기에다 최근엔 봄차에다 가을차를 병배한다거나 산지가 다른 차산 지역에서 딴 잎들을 병배하는 등의 시도도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병배를 특징으로 하는 보이차는,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협화음처럼 다양성의 조화를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맛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차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자투리 천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조각보의 세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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