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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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배동희 노무사
  • 승인 2022.12.20 11: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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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 노무사] 한 해가 지나가는 연말의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어쩌다 "왜 사나?" 혹은 "사는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울증의 심리적 전조가 아니더라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여기 매어 침잠(沈潛)하지 않는 한, 사람에게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필요한 심리 양상이라고 한다. 지금과 같이 성탄절 분위기로 주위가 들뜨고 시끄러울 때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사색이 깊어지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하느님이 벌을 받고 쫓겨난 천사 미하일에게 세가지 질문 즉 첫째,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올 것을 명령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알몸으로 내려온 미하일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구두장인 시몬이 대접하는 것을 보고, 첫번째 답인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았다. 부유한 귀족이 1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했지만 미하일은 그 귀족이 곧 죽을 것을 알았기에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줬으나 시몬이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을 보고, 두번째 답인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래를 아는 지혜가 없음"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엄마 잃은 쌍둥이 고아를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하일은 하늘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질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핵심이라 제목도 그렇게 정한 것 같다.

노동법이 보호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노동'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 세번째 질문을 한다면 무슨 대답이 나올까? 추측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일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된다. 교환가치로 출발한 '돈'이 지금은 만물의 척도가 됐다. 용역에 속하는 노동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눌 수 있고, 노동법에서의 노동은 교환가치, 즉 '임금'을 목적으로 한다. 사용가치만을 가지는 노동은 시장만능주의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돈으로 교환 가능한 노동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에서 보호하는 노동과 노동자(노동하는 사람)가 아니다.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노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노동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에서 노동자를 흔히 '근로자'로 부르지만 최근 이를 벗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종사근로자' 혹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일하는 사람'으로 표현을 달리하여 노동자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다. 근로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을 보면, 이 법에서 예정하는 일반적인 근로자인 '보통' 사람은 '성년'이고 '남자'인 '정규직' 근로자를 의미한다. 여기에 '미성년자'와 '연소자'를 더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서 제64조(최저 연령과 취직인허증), 제65조(사용금지), 제66조(연소자 증명서), 제67조(근로계약), 제68조(임금의 청구), 제69조(근로시간), 제70조(야간 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 제71조(시간외근로), 제72조(갱내근로의 금지)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남성이 아닌 '여성'과 '모성'을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65조(사용금지), 제70조(야간 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 제71조(시간외근로), 제72조(갱내근로의 금지), 제73조(생리휴가), 제74조(임산부의 보호), 제74조의2(태아검진 시간의 허용 등), 제75조(육아 시간) 규정들을 추가한다. 나아가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단시간 근로자'나 "기간제 근로자' 그리고 '파견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따로 두고 있다. 

노동은 '가치' 측정의 수단이 아닌 '존중'의 대상

제주도 한라산 정상 해맞이. 사진=연합뉴스
제주도 한라산 정상 해맞이. 사진=연합뉴스

한편 돈으로 살 수 없는 노동의 영역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나눌 수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할되지 않고 자본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노동이라면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언뜻 그런 노동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다. 예컨대 책을 보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것, 만돌린이나 드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 산책을 하고 탱고를 추고 요가를 배우는 것 등등은 돈과 바꿀 수 없는 노동이다. 아이들과 놀이를 통한 심리적 교감과 추억은 부모가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구매할 수 없다.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쌓아가는 우정과 친밀감도 돈으로 바꿀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할되지 않는 노동, 즉 돈과 바꿀 수 없는 노동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가 곧 '가치가 없다'는 의미이며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귀결되는가? 노동을 가치 있는지 여부로 양분하는 순간,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노동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으로 선택지를 좁히는 순간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만 평가하게 되고,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노동은 무가치하게 여긴다. 사람의 노동은 가치로만 평가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가치' 측정의 수단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 돼야 한다. 노동 없는 자본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법에서 보호하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교환가치로만 접근한다면 인간 스스로도 교환가능한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여전히 다르지 않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한 해를 보내면서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이 충만하기를, 또 사랑이 넘치는 새해 2023년을 맞이 하시길 기원한다.

●배동희 노무사는 연세대 법대 졸업후 경북대에서 석사,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법무법인 세종 등에서 노무사로 십 수년간 중대산업재해사고 대응, 집단적 노사관계 전략 수립 및 실행, HR컨설팅 분야를 경험했다. ㈜효성에서 다년간 인사관리팀 부장으로 재직하며 인사제도 및 노사관리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현재 대유노무법인 대표노무사로 재직중이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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