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출항지 오화리산성③…곳곳에 성터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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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출항지 오화리산성③…곳곳에 성터 흔적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20 17: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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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구조] 동쪽은 토성, 서쪽은 석성…3곳에 성문 설치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오십천은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에서 동해와 만난다. 그곳에 마을이 있는데, 이름하여 「고성밑」이다. 엣날에 성(城)이 있던 곳의 아랫동네라는 의미로, 고성하(古城下) 마을이다.

2001년에 강원문화재연구소 조사팀이 삼척시의 요청으로 이 성터에 대해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김정삼 강원문화재연구소장을 단장으로 하는 11명의 조사팀은 성벽이 무너져 잡목이 우거지고 돌무지만 남아 있지만, 옛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추가하는 일을 남아 있지만, 당시의 조사로도 성의 윤곽이 뚜렷히 드러났다.

당시 지표조사를 토대로 오화리산성의 모습을 재현해 보자.

오화리산성은 오십천 하구 남쪽 고성산(古城山) 정상부와 서북 경사면에 위치한 삼태기 모양의 산성이다. 서쪽은 오십천, 북쪽과 동쪽은 바다, 서쪽은 태백산맥의 얕은 지맥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해안 절벽 아래에는 바위와 암초가 많고, 하천은 자연 해자를 형성하는 천혜의 요새 구조다. 지금도 그 옆을 부산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7번국도가 지나고 있다.

 

삼태기 모양의 구조

 

▲ 오화리산성 축약도 /강원문화재연구소

오화리산성의 성벽 면석(面石)은 대부분 무너지고 흙에 뭍혀 잘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동벽 일부와 서벽 기단 일부가 확인되었다. 현재 성벽을 형성하고 있는 부분은 면석이 떨어져 나간 후 뒷채움석과 잡석이 드러나 있다.

동쪽 성벽 일부는 토성으로 확인되었고, 서벽엔 토사를 제거하면 돌로 쌓은 석성이 노출된다.

성벽 전체 길이는 측량 결과 총 길이는 1km(1,000m)이고, 면적은 3만8,207㎡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둘레 1,870척(560m)라고 했는데, 차이가 크다. 아마도 해안절벽 지대에 자연지형을 활용하며 성벽을 쌓지 않은 곳이 많은 듯하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97m이고, 가장 낮은 곳은 해발 23m로 높낮이의 차이가 크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축성을 했기 때문이다.

성벽 높이는 최고 12m(곡성부분)이고, 최저 2~3m(동벽 토성)의 편차를 드러냈다. 대체로 높이 6~8m였다.

성의 위치가 동벽은 정상부에 위치하고, 북벽과 남벽은 서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위치하고, 서벽은 해발 23~40m에 축조되었다.

오화리산성은 대체로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십천 건너 편에서 성이 한 눈에 확연이 드러난다. 따라서 적에게 쉽게 노출되는 단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① 동벽

동남쪽 곡성(曲城)에서 시작해 북쪽 회절부까지 고성산의 최정상부 동쪽 방면에 위치해 있다.

최고 높이는 해발 97m이고, 최저 높이는 북쪽에 해발 74m다. 비교적 평평한 사면을 이루고 있다. 길이는 229m이며, 성벽 높이는 최고 12m에서 최저 2~3m로 높낮이 차이가 많이 난다.

동남쪽 모서리 곡성은 인위적으로 다른 성벽보다 4m 높였는데, 대부분 토성으로 축조했다. 토성으로 쌓은 이유는 성벽 아래에 수직 해안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적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축성방법은 바깥벽면에 돌을 쌓고 잡석과 흙으로 속을 채우는 방식을 채택했다.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회절부 안쪽에는 폭 20m, 길이 80m의 평탄면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동해바다와 삼척항이 한눈에 볼수 있다.

동벽 210m 지점에 석축기단 일부가 남아있는데 길이 110cm, 높이 40cm의 커다른 할석을 놓아 기단을 만들었다.

 

② 북벽

길이는 118m로 4개 성벽중 가장 짧다. 최고 높이 해발 74m에서 최저 40m로 성벽의 고저차가 심하다. 성벽 밑으로는 급경사로 동해 바다로 이어진다. 아랫부분에는 오십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성벽을 쌓았는지, 급경사를 이용했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성벽 안쪽으로 석축 계단이 남아 있다.

 

③ 남벽

길이 244m로, 성벽 중 유일하게 육지와 면한 곳이다. 앞쪽에는 소하천이 흐른다. 고저차는 동남쪽 곡성이 해발 97m이고, 남문지가 23m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 바깥쪽 면석은 소실되어 보이지 않고 뒷채움석들만 보인다. 높이는 6m이고, 폭 2m, 내벽 2~3m로, 동서남북 중에서 유일하게 성벽 안쪽이 남아 있다. 남벽은 유일하게 육지와 연결되어 적의 공격이 다른 곳보다 쉽기 때문에 높게 쌓은 것으로 보인다.

 

④ 서벽

길이 409m로 가장 길다. 수로 3곳, 망대(望臺) 1곳, 건물지 3곳, 출입구 1곳등 대부분의 시설들이 서벽 안쪽에 모여 있다. 우물터도 1곳이 있다. 서벽 아래에는 현재 고성밑이라는 어촌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해발 39m에서 23m의 낮은 표고이며, 성벽의 높이는 6~7m다. 성벽 안쪽에는 길(內環道)이 나 있다.

서벽 중간에 일부 성벽이 남아있는데, 길이 120cm, 높이 40cm의 할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할석을 쌓아 가며 쌓았다. 면석 안쪽에는 할석과 흙으로 뒷채움을 했다. 성벽 1/2이 경작지에서 흘러내린 흙으로 뭍혀 있고, 상단부 면석은 유실된 상태다. 하지만 하단부에 쌓인 흙을 제거하면 석성(石城)의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 오화리산성 평면도 /강원문화재연구소

 

3곳의 성문

 

성으로 들어가는 문(門)은 크게 3곳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성내외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전투시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에 적당한 곳에 설치하게 된다. 따라서 성 가운데 가장 튼튼하게 만든다. 또 성내에 필요한 물자를 운송하기 편리한 위치에 설치하기 때문에 때론 주 공격대상이 되기도 한다.

 

① 남문

지표조사에서 남문의 흔적이 나타났다. 남벽과 서벽이 만나 꺾이는 남벽 쪽에 흙을 파내어 호구(虎口) 형태로 만들었다. 해발 23m로 성벽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며 그 앞에는 근산(해발 504m)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흘러 오십천과 만난다.

남문은 오화리산성의 출입구로 삼척시내에서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문이다.

남문은 능선 하단의 회절부 남쪽 지점에 위치하며, ㄷ자 모양으로 길이 11m, 폭 5m를 파내어 옹성과 같이 수비에 용이하도록 만들어졌다. 남문을 들어서면 건물지①에서 나오는 수구(水口)가 있고, 우측으로는 남벽이 위쪽으로 급격한 경사를 이루며 뻗어있다.

 

② 서문

서벽 중앙의 활과 같이 굽이치는(회절) 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훼손되어 없어졌지만 바로 위쪽에서 신라시대 기와와 토기 조각이 많이 채집되는 건물지② 터가 위치하며, 그 우측으로 망대가 있다. 이 문은 성 아래 오십천 항구에 선박이 정박해 사람과 물자가 출입하던 곳으로 보인다. 근처에 우물 터가 있다.

 

③ 동남문

동벽과 남벽이 꺾어지는 곳에 만들어놓은 문으로, 이 곳은 태백산맥에서 흘러내린 야트마한 구릉들과 연결된다. 이 곳에는 둥근 곡성을 형성해 다른 곳보다 4m 높이까지 높여 성벽 돌출부인 치((雉)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능선을 따라 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성벽에 붙은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다. 전체 성벽에서 가장 높은 해발 97m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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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민 2017-12-20 22:24:16
건너편 정라 축항에서 고성하를 바라보던 시절이 생각나는 지점이네요. 오분리에 건너에서 등대와 더불어 시멘트 공장 굴뚝을 바라보던 현대의 눈으로 문화재연구소의 지도로 오화리산성을 접하니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이사부의 출항에 나도 같이 타올라서는 동해 파도를 헤쳐 나갈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