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신용의 위기⑧…워싱턴 정가에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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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신용의 위기⑧…워싱턴 정가에 불똥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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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도 회계부정기업과의 관련설로 곤욕

 

에너지 그룹 엔론 파산의 파장은 워싱턴 정가를 휩쓸었다. 의회에서는 10군데 이상 청문회가 열려 엔론의 전직 간부를 불러내 회계 조작사건을 조사하고, 회계 감사회사인 아서 앤더슨의 간부들도 회계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당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케네스 레이 전회장은 헌법상 권리라는 이유로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한 여성 임원은 회계 조작이 사내에 오래전부터 알려졌던 사실이라고 증언해 충격을 주었다. 의회가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규제완화 정책과 엔론의 로비활동 사이의 연관성을 따지기 위해 에너지 위원회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딕 체니 부통령은 법정에 가더라도 공개할수 없다고 맞섰다.

 

회계 부정 사건의 불똥은 조지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으로 튀었다.

부시 대통령은 1990년 하켄 에너지의 임원으로 재직할 때 경영 실적 공개 이전에 보유주식을 매각하고도 8개월후에 뒤늦게 신고, 법을 어겼지만 당시 대통령이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체니 부통령은 석유회사 핼리버튼의 회장으로 재직하던 중 회계 조작사건을 묵인한 의혹을 휘말렸다. 유전개발회사인 핼리버튼사는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회계 방법 변경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뉴욕타임스지는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던 1988년에 이 회사가 유전개발공사비의 일부를 매출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회계법을 위반했고, 당시 CEO가 이 사실을 묵인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체니 부통령은 1995년 10월부터 부시 대통령 후보 진영에 합류한 2000년 8월까지 할리버튼의 CEO로 재직했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핼리버튼은 1998년에 건설공사 프로젝트의 비용 가운데 수요자 부담분을 계약 이전에 매출에 포함시켰으며, 회계방식 변경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이 변칙 회계 방식으로 처리한 금액은 8,900만 달러로, 1998년 매출 170억 달러에 비해 작은 부분이지만, 당시 발표된 세전 영업수익 1억7,500만 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 회계법에는 건설공사비용이 매출에 잡히려면 계약이 체결되거나 현금이 납입돼야 하는데, 할리버튼은 이를 앞당겨 매출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핼리버튼측은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데이비드 포시 현 사장이 회계방식 변경을 승인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당시 CEO는 이를 몰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변칙 회계 또는 회계 조작 사건에서 CEO가 자유로울수 없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당시 회계법상 회사 재무제표와 회계업무는 CFO가 책임질 일이었고, CEO였던 체니 부통령은 사건이 확대되기 전에 빠져나올수 있었다.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제도상의 허점을 인정, CEO가 회계에 책임을 지도록 회계관련법을 개정했다.

 

▲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오른쪽),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왼쪽). /위키피디아

 

엔론의 회계 조작 스캔들로 시작한 미국의 기업 스캔들은 워싱턴 정가와 경제계, 뉴욕증시에 큰 파문을 던졌다. 경제전문 잡지 비즈니스 위크지는 최근호에서 ‘부패한 월가’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로 규정하지만, 실제 인간의 마음은 탐욕이 지배한다. 탐욕은 사회적 규범의 틀을 넘어설 것을 유혹한다.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경제 원리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이 원리를 달성하는 지름길을 바로 부패가 열어준다. 월가 애널리스트는 말 한마디로 주가를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증권회사는 애널리스트를 앞세워 특정 종목의 주가를 띄워놓고 팔면 누워서 떡먹기다. 애널리스트도 적당히 소속회사에 충성하면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을수 있다.

그러나 부패는 선의의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혀 시장 경제의 공정성을 왜곡하고, 세금을 탈루시켜 재정을 약화시킨다. 부패는 심할 경우 한 나라의 경제를 붕괴시키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다.

예를 들어보자. 애널리스트 분석을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손해를 당했다. 엔론 경영진의 믿었던 투자자들은 주식이 휴지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거짓말을 하고 그 이득을 챙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등을 친 것이다.

지저분한 부패 스캔들에서도 굿뉴스는 있다. 회계 조작 또는 애널리스트 사기 스캔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행정부와 의회가 시장 원리를 바로잡기 위해 법안을 개정한 사실도 건실한 시장 경제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측면이다.

 

분식회계, 내부자거래, 탈세, 주가조작, 가격 담합 등…. 2002년 여름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화이트 컬러 범죄 사건을 보면 미국 기업인들이 지금까지 저렇게 사업을 해왔구나 하며 놀랄 지경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엔론 사태 이후 지금까지 이른바 ‘화이트 컬러 범죄’를 저지른 최고경영자(CEO)가 대부분 베이비 부머 세대라는 사실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란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60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포함된 이 세대는 20대이던 1960년대에 세계적인 팝송 열풍과 청바지 바람, 히피 경향을 일으켰고,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주역이었다. 이들이 직장을 갖고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미국은 장기 호황이 시작됐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장래에 은퇴할때를 대비, 봉급의 5~15%를 떼내 증권투자를 했고, 이 돈이 뮤추얼 펀드를 통해 뉴욕 증시에 유입됨으로써 80~90년대의 황소장세를 주도했다.

이제 이 베이비 부머 세대는 두번의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기업에서는 CEO를 양산했다. 사회 지도층을 차지한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늙어가면서 수십억, 수백억 달러의 대형 사기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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