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포철①…외부출신 첫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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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포철①…외부출신 첫회장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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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통해 빠르게 포철 장악…녹색경영 제창

 

1994년 3월 8일 열린 포철 주주총회에서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김만제씨가 포철 회장으로 선임되자 포철 사람들은 당황했다. 포철 사람들 사이에는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재무부장관등을 역임한 경제통이 온다기에 한편으로는 안심을 하면서도 그가 장관을 역임하면서 보여준 인사스타일에 관해 이야기가 오갔다.

“김만제씨는 인사에는 칼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구먼. 한미은행장으로 있다가 재무장관으로 가서 도도한 재무부관리들을 꽉 잡았다는 거야. 한미은행장으로 있을때 재무부 관리들이 그를 섭섭하게 했다는 거지. 아마 회사에도 앞으로 큰 인사바람이 불 것 같애.”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이라 포철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외부에서 회장이 왔으니, 포스코나 자회사에 이제부터 상공부 사람이나 정치인 출신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들어오는지 모르겠어.”

포철 사람들은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의 경질에 대한 아쉬움도 잠깐, 신임 회장의 인사스타일과 경영스타일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외부인사의 포철진입에 대한 우려가 강했다.

정부도 포철인들의 이러한 우려를 인식했던지,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은 주총당일 기자회견에서 “회장만 외부에서 영입할 뿐 사장을 비롯한 나머지 경영진은 내부에서 선이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주총에 이어 열린 취임식에서 김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경영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한편, 과감한 개혁을 추진, 시대변화에 부응할 것”이라며 “포철의 빛나는 전통 위에 새러운 전통을 세울 것”이라며 포철에 적지않은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

김 회장 취임직후 가장 큰 관심은 사장을 누구로 선임하느냐는 것이었다. 주총 직후 사장에 대한 선임이 없었고, 따라서 김 회장에게 사장 선임권한을 정부가 위임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김 회장의 선택은 김종진 부사장이었다.

취임 3일째인 3월 10일 김 회장은 사장 선임을 포함한 인사를 단행한다. 사장에 생산기술총괄담당부사장을 맡고 있던 김종진씨가 선임되고, 조관행, 이동춘, 홍상복전무가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돼 기획담당, 관리담당, 기술담당을 맡았다. 김종진 신임사장보다 선임인 손근석 부사장과 신창식 감사는 사장승진의 기회를 놓치고 해외연수를 떠나도록 조치됐다.

김종진 신임사장은 경남거창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68년 포철에 입사한 정통엔지니어 출신. 포철설립 원년의 멤버로 그동안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건설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로 호방한 성격에 친화력이 뛰어나 「범털」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김종진씨의 사장선임은 엔지니어 출신을 중시하는 포철의 관행을 인정한 조치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경제관료 출신의 김 회장과 전문엔지니어가 잘 어울릴 것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그러나 첫인사에서 포철 사람들이 예상했던대로 김 회장은 인사에서 칼 같은 사람임을 입증했다.

그 첫번째가 김종진 사장에게 대표이사 권한을 주지 않은 점이다. 웬만한 중견기업이라면 회장과 사장등 2~3명의 대표이사를 두는 게 관례고,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포철과 같은 큰 회사에서 단일 대표이사 체제를 갖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는 전임 회장과 사장의 갈등이 대표이사직 공유에도 원인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정부의 인식에 따른 것이고, 경제기획원의 한이헌 차관이 “포철에 대표이사를 둘씩 둘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에도 염두를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회장인사의 두번째 날카로운 점은 전임 회장과 사장이 경영갈등을 일으킬 때 이쪽 저쪽에 줄을 섰던 사람들을 두루 중용, 갈등의 흔적을 꿔매려고 했던 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갈라졌던 두 진영을 견제시킨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정 회장이 정초에 서울로 불러들인 김종진씨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면, 물러난 조말수사장, 장중웅상무와 함께 포철개혁을 이끌었던 이동춘, 조관행 전무를 부사장으로 올려 관리담당과 기획조정실장을 맡긴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됐다.

김 회장이 또 손을 댄 부분이 기획조정실과 비서부. 박태준 회장과, 정명식-조말수체제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던 비서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경영정책투자관리, 기업문화(홍보 포함), 투자관리, 신사업 추진업무등을 관장하는 기획조정실을 신설했다.

김 회장은 11일 포항제철소장에 이구택 전무를, 감사부 담당에 이형팔 전무를, 내수판매 담당에 김용운 전무를, 관리및 자금담당에 김진주 전무를 각각 맡기는 등 임원들의 업무를 조정했다.

김 회장은 이어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정부가 검토하고 있던 포항-광양제철소 분리에 대해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된다”며 직원들의 걱정을 씻어주며 다독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취임당시 「외부로부터 온 진주군」이라는 평을 받던 김만제 회장은 불과 한달도 안돼서 대대적인 인사와 보직변경, 조직정비를 통해 포철 경영을 완전히 장악했다. 박태준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했던 사람들,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중 어느쪽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울까로 고민했던 사람들도 이젠 김만제 회장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4월 15일 포철은 포항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그동안 촉탁임원으로 있던 이동춘 부사장, 조관행 부사장, 김진주 전무를 상법상 등기임원으로 선임하고, 3월 8일 주총에서 정명식 회장, 조말수 사장과 함께 물러났던 심장섭 상무를 다시 임원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손근석 부사장, 신창식 감사, 김병용 상무는 이날 주총에서 퇴임했다. (손근석씨는 6월1일 포스코경영연구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날 주총에서는 과거 박태준 회장 시절에 만들었던 명예회장과 부회장직제를 폐지하고 대규모의 임원승진 인사가 단행됐다.

김 회장의 스타일중 또다른 측면은 대외적으로 나타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

김 회장의 취임과 동시에 고민에 사로잡혔던 곳이 철강협회였다. 정명식 전임회장이 철강협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포철에서 물러났으니, 새로운 철강협회장을 뽑아야 했다.

당연히 조강생산능력이 가장 크고 매출액이 많은 포철의 신임회장이 철강협회장으로 선임되어야 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철강협회 임원들은 김 회장에게 철강협회장을 맡아 주십사고 부탁을 했다. 당연히 맡아줄줄 알았던 김 회장은 뜻밖에도 철강협회장을 맡지 않겠다고 나왔다.

철강협회에서는 당황했다. 재차 김 회장에게 협회장을 맡아달라고 간청을 넣었다. 그랬더니 김 회장은 그러면 자신이 철강협회장을 맡지 않는 대신 김종진 사장에게 협회장을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협회간부들이 협회의 정관을 들여다 봤더니 협회장의 자격요건은 철강업체중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런데 김사장은 포철에서 대표이사자격이 없질 않는가.

협회는 정관을 바꾸는 방안과 포철이 아닌 다른 철강업체경영진 가운데서 협회장을 선정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았으나 둘다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상공자원부로 달려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상공부에서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김 회장에게 협회장을 맡도록 압력을 넣었다. 김 회장도 더이상 협회장을 고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 회장은 3월 29일 호텔롯데에서 열린 철강협회 임시총회및 이사회에서 철강협회회장에 선임된다.

김 회장은 그러나 철강협회장에 취임한 직후 인사차 협회사무실에 들른 이후 협회 일에는 거의 참석치 않았다.

외부에 잘 나타나려 하지 않는 김 회장의 성격은 언론기관에 보태는 포철의 보도자료에서도 나타났다. 포철홍보팀은 포철에 관한 기사를 쓰되 「김만제 회장」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쓰지 않기를 희망했다.

「조용한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김만제 회장에게 적합한 것 같다.

 

포철의 스물여섯번째 생일을 맞는 4월1일 김만제회장은 「녹색경영론」을 제창했다.

“저는 조직의 유연성, 민주성, 투명성을 녹색경영(Green Management)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녹색은 새롭고 신선하며 생명력이 있으며 탁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녹색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는 진취적인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창조해야 하는 기업문화는 이러한 정신적 뿌리에 영광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임직원 여러분이 스스로 변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한 거세게 밀어닥치는 변화와 개혁의 바람에 생존하기 어려울 뿐아니라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문화가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김 회장의 「녹색경영론」은 포철의 과거를 상징하는 황색(포철의 社服색깔)과 미래를 상징하는 청색을 배합할 때 나타나는 청색을 경영이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스스로 녹색경영의 철학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회사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전임경영진이 추진했던 신포스코운동을 보다 승화시킨다는 취지였다.

양적성장의 역사를 마감한 포철로서는 이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고, 기존 철강분야 발전을 위한 노력은 당연히 기울이면서도, 이동통신과 같은 성장성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의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또 포철이 과거 중시한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라는 명제 뿐만아니라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도 이젠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만제회장은 그가 「녹색경영」을 주창하면서 설명했듯 전임경영진이 추진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계열사분리, 로컬가격및 내수가격 인하, 질 성장위주의 경영, 계열사 사명 개정등이 그것이다. 김 회장의 포철은 독점적으로 누릴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공기업으로서, 국민기업으로서 고압적인 경영스타일을 버리고 동반자적인 회사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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