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겉돌고 있는 위험성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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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겉돌고 있는 위험성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승인 2022.11.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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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 과기대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조만간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위험성평가 강화 방안이 핵심적인 내용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위험성평가는 국제적으로 안전관리의 초석이라고 평가될 만큼 안전에 있어 기초적이고 중요한 제도다. 문제는 정부의 무지 탓에 위험성평가가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성평가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중요한 요소인 만큼, 위험성평가가 겉돌고 있다는 것은 안전보건관리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위험성평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법제화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도 왜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 왜 되레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책임은 고용부에 있다. 위험성평가에 대한 철학과 전문성이 없다 보니, 위험성평가에 어떠한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성평가에 대한 정책기능이 실종되어 있는 것이다. 2017년 1월엔 위험성평가가 실시되지 않은 것만으론 과태료를 부과하지 말라는 황당한 지침을 일선기관에 내려 보내기까지 했다. 위험성평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큰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고용부의 무지와 삽질 속에서 위험성평가는 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에 사실상 내맡겨져 있는 꼴이다. 문제는 고용부로부터 하청을 받은 공단 또한 위험성평가에 대한 전문성이 태부족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는 간이 위험성평가 기법(KRAS)을 마치 위험성평가의 표준인 양 홍보·지도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범용으로 개발된 기법이 위험성평가의 모델로 둔갑된 것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대해선 안전활동 수준평가 제도를 뒷배경으로 이 기법을 채택토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위험성평가의 발전을 앞장서서 저해하고 있는 셈이다. 

심각한 문제는 KRAS가 위험성평가 원리와 어떻게 부합하지 않고 내용상으로 얼마나 부실한지에 대한 인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해위험요인 유형을 6가지로 제한하고 각 유형별 사고유형을 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람에, 유해위험요인의 발굴을 오히려 차단하고 추락, 전도를 '기계적 요인'으로 잘못 분류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유해위험요인 유형으로 분류해야 할지 전문가조차 혼란스러운 등 문제투성이이다.  

게다가 공단은 작업분석을 내용으로 하면서 안전작업절차 작성을 목적으로 미국에서 개발된 작업안전분석(JSA)을 위험성평가 기법의 일종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JSA를 위험성평가 기법인 것으로 보는 것은 이것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위험성평가 기법으로 여러 기법이 소개돼 있지만, 거기에 JSA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귤이 태평양을 건너 탱자가 된 꼴이다.   

중대재해(PG). 자료=연합뉴스
중대재해(PG). 자료=연합뉴스

점입가경인 것은 ‘위험성평가 고시’에서 상시 근로자 2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 위험성 추정 절차를 생략해도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기준을 바꾸는 데 고용부와 공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위험성 추정을 생략할 수는 있지만, 위험성평가의 필수적인 절차인 위험성 추정을 생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상식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고용부와 공단은 더 이상 전문기관이라기보다는 얼치기 기관이라고 할 만하다.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이처럼 유명무실하게 이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중대재해처벌법에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일환으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 및 점검 실시'라는 '사이비' 위험성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위험성평가를 내실화하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공포감 조성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에 기댄 것이다. 이러한 식의 접근은 기업을 더욱 서류작업(paperwork)에 치우친 위험성평가로 내몰 뿐이다. 정부는 위험성평가가 멍들고 있는 걸 알고 있기는 할까.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이 포함되지 않으면 형해화되어 있는 위험성평가를 바로세울 수도 활성화할 수도 없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위험성평가의 형해화 문제도 그 해결을 위해선 전문성과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고용부와 공단은 덩치만 커졌지 전문성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진정성으로 무장하고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한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진우 교수는 행정고시 합격후 고용노동부에서 19년 6개월간 근무했다.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법학석사학위 취득 후 고려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에서 안전관계법, 안전관리 등 안전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론, 산업안전관리론 등 11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중 3권은 세종도서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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