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 도미노…기업 이어 은행마저 조달 여건 나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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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경색 도미노…기업 이어 은행마저 조달 여건 나빠져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11.2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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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은행에 수신금리 인상경쟁 자제 요청
저축은행 유동성 악화·대출금리 상승 우려
24일 금통위서 유동성 지원 대책 나올지 주목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 자제에 이어 예·적금 금리 인상까지 막으면서 은행권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채권시장 불안으로 은행채 발행이 제한되면서 은행권이 자구책으로 수신금리를 끌어올리자 금융당국이 이마저 제동을 걸고 나선 탓이다. 이에 기업들의 '돈맥경화'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기업 돈 빌리기 어려운데…은행마저 자금조달 악화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신용스프레드는 165.8bp(1bp=0.01%포인트)로 집계됐다. 신용스프레드는 3년물 회사채 AA-등급 금리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차이를 뜻한다. 

신용스프레드는 지난 9월 말까지만 해도 109.5bp였으나 9월 말 김진태 강원지사로 인해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에 채권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며 급등했다. 통상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된다는 것은 기업이 자금을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시장의 자금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은행 문을 두드리면서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은 한 달 새 13조7000억원 늘었다. 

기업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대출을 내줄 자금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예금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최근 은행권에 당부했다. 예금금리가 올라가면서 대출금리가 따라 올라가는 측면이 있는데다, 시중은행이 수신금리 인상 경쟁을 벌이면서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은행들은 대출을 내주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 다른 데서 돈을 빌려오거나 예·적금을 받아 수요를 맞춘다. 그러나 금융당국에 의해 이 두 가지가 모두 막히면서 시중은행의 어려움이 커지는 추세다.

"24일 금통위, 유동성 지원대책 나와야"

이러한 가운데 오는 24일로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유동성 지원대책이 나올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성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신용스프레드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상승한 상태"라며 "10월에 발표된 정부 주도의 유동성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금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말까지 CP,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단기사채 만기가 집중돼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상보다는 실질적인 유동성 지원대책이 나올 것인지에 더 관심이 커지는 이유"라며 "유동성 지원대책이 나와야 연말까지 자금시장 불안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에서는 금통위가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금융당국이 자제를 요청해도 예·적금 금리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리가 인상되면서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은 심화되는 추세다. 지난달 말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56조2000억원 늘었다. 이와 같은 증가폭은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다. 전월에도 정기예금 잔액이 32조5000억원 늘어났다.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은행권이 유동성커버리지(LCR)비율을 맞추기 위해 예금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고, 은행채 발행을 확대하면서 채권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였다고 분석한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금시장 경색 징후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지며 나타난 현상"이라며 "급격한 금리인상이 일차적인 원인이며, 한전의 한전채 대규모 순발행과 은행의 은행채 발행 확대 등이 시중 자금을 빠르게 흡수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고금리 한전채와 부실위험이 낮을 것으로 판단하는 고금리 은행채는 매력적인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전채 발행금리는 최근 6%에 육박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금융시장 경색 징후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전채, 은행채 등 우량채권의 순발행 규모를 축소해 근본적으로 자금쏠림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금융권 유동성 악화·대출금리 상승 우려…"단기간 안정 힘들어"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악순환이 시작됐고, 은행이 이에 대응해 은행채를 발행하고 수신금리를 올리면서 각 금융권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유동성이 악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오르기 떄문이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9월(3.40%)보다 0.58%포인트 높은 3.98%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권은 은행채 발행 제한에 수신금리 인상 경쟁까지 제한되면서 건전성 규제를 추가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은행 예대율 규제(100%→105%)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LCR도 100%에서 85%로 인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조기에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크레딧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뿐만 아니라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라며 "이미 통상적인 금리 상승이나 스프레드 확대를 넘어서 '경색' 단계에 진입했던 것인 만큼 단기간에 정상적인 수준으로의 복귀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오버킬(overkill)로 불리는 공격적인 긴축을 통해 경기 위축 요인까지 부각될 경우 크레딧 안정은 국채 등 채권시장 내 안전자산이 먼저 안정 궤도에 진입하고 상당 시간이 소요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이는 자금경색 위험이 제한적이었던 미국 크레딧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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