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김민경은 기억 잃은 비밀 요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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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김민경은 기억 잃은 비밀 요원이었을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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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김민경이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이 소식은 연예 뉴스일까 아니면 스포츠 뉴스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어난 운동신경과 운동능력을 보여주었어도 그녀가 국가대표가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제작진들과 대중들이 김민경을 두고 ‘태릉이 놓친 인재’라며 우스개 소리하기는 했다.

그런데 농담 삼아 했던 말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졌다. 속보에 뜬 김민경이 그 김민경이 맞는지 확인했을 정도니까. 사실 김민경의 성장을 지켜보며 대중들은 그녀에게 다양한 별명을 붙이며 응원했다. 별명은 캐릭터로 승화했고 국가대표 발탁과 함께 세계관으로 확대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만큼 신선한 뉴스이기도 했지만 뭔가 감동이 오는 소식이기도 했다. 

근수저 민경 장군의 탄생

김민경의 운동 재능 발견은 사실 벌칙으로 시작했다. 2020년 초 IHQ <맛있는 녀석들> 제작진은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운동뚱)>을 기획했다. 많이 먹는 데다 뚱뚱하기까지 한 출연진들의 건강을 위해 각종 운동을 배우는 콘셉트였다. 하지만 뚱뚱한 이들에게는 벌칙일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아령 중 테이블과 고정된 아령을 선택하는 이가 <운동뚱>의 단독 출연자, 즉 벌칙자로 결정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를 선택한 김민경은 커다란 테이블에 달라붙은 아령을 아예 테이블째로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운동하기 싫다며 저항한 거였지만 이 장면은 김민경에게 ‘근수저(근육계의 금수저)’라는 별명이 붙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녀가 보여주는 운동능력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 2년여 동안 김민경은 <운동뚱>을 통해 코미디언에서 체육인으로 거듭났다. 제작진은 운동과 거리가 먼 김민경의 골탕 먹는 모습을 기대했겠지만, 어느덧 운동신경과 운동능력이 출중한 그녀의 모습을 담게 되었다. 필라테스와 주짓수, 킥복싱 같은 맨몸운동부터 사격, 펜싱, 야구 등 도구를 쓰는 종목까지 그녀의 도장 깨기는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김민경을 가르친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그녀의 재능에 놀라워했다. 처음에 대중들은 이를 방송용 설정이나 말치레로 받아들였지만, 아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김민경의 모습과 지치지 않는 도전에 열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중들은 그녀에게 ‘민경 장군’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김민경은 주로 뚱뚱한 캐릭터로 소비되고 있었지만, 사실 단단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대중들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김민경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서사를 지닌 캐릭터였다.

블랙위도우 못지않은 영웅 불백위도우 

연예인 인기의 척도는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티에서 그려지는 모습으로 엿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커뮤니티에 김민경의 전사(前史)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김민경이 걸출한 코미디언이지만 출중한 운동능력을 가진 것을 봐서 뭔가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들은 김민경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불백위도우’가 대표적이다. 마블의 여성 캐릭터 ‘블랙위도우’를 패러디했는데 불백은 불고기 백반을 의미한다. 블랙과 운이 맞으면서도 음식을 좋아하는 김민경의 특성을 담은 캐릭터 작명이었다. 

<운동뚱>에 소개된 각종 격투 종목에서 김민경은 놀라운 힘과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그녀와 대련하는 남성 출연자들은 나가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김민경의 모습에서 마블의 히어로를 떠올리는 대중이 많았을 것이다.

사격 계열 종목의 특성을 부여한 캐릭터도 탄생했다. ‘포크아이’와 ‘빅맥크리’. 포크아이는 식사 도구인 포크와 마블의 궁술 저격수 캐릭터인 ‘호크아이’를 합성했다. 빅맥크리는 게임 ‘오버워치’의 총잡이 캐릭터인 ‘맥크리’와 햄버거를 합성한 것이다. 

이렇듯 대중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김민경과 영화나 게임의 캐릭터를 합성한 패러디를 즐겼다. 이런 현상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민경의 영상이나 이미지, 그리고 거기에 달린 댓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제 누구인가가 김민경의 영상이나 이미지에 민경 장군 혹은 불백위도우 같은 별명을 댓글로 붙였을 것이고, 대중들은 여기에 서사를 부여한 캐릭터로 발전시키고는 다른 대중들과 공유했을 것이다. 

사격 국가대표에 발탁된 개그맨 김민경. 사진제공=IHQ

기억을 잃은 비밀 요원 국가대표가 되다

대중들이 서사를 부여한 캐릭터는 사회적 배경이 추가되며 세계관으로 확대됐다. 처음에는 체육계 대신 제육계를 선택한, 즉 김민경은 체육계가 먹방계에 빼앗긴 인재라는 설정이 대중의 공감을 샀다. 

그러다 김민경이 원래는 기억을 잃은 비밀 요원인데 웃음을 주는 재능이 있어서 코미디언으로 살고 있다는 설정이 대중들에게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이렇듯 서사와 배경이 담긴 세계관은 대중들의 공감과 공유를 거치며 점차 확장되어 갔다.

그런데 이 농담 같은 세계관이 현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지난주에 터진 김민경의 국가대표 발탁 소식이 이를 촉발했다. 종목도 무려 사격이니 전직(?) 비밀 요원답다. 

김민경은 19일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2022 IPSC 핸드건 월드 슛' 대회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한다. <운동뚱>을 통해 사격에 입문한 김민경이 1년 정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방송 관계자는 김민경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해 좋은 성적으로 대표로 발탁됐다고 전했다.

몸의 가치를 보여주는 진정한 인플루언서

김민경의 국가대표 발탁 소식에 대중들은 ‘체육계가 김민경을 탈환했다’고 환호했다. 또한 위로와 위안을 얻은 이도 많은 듯했다. 

김민경은 그동안 웃음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해주었다. 몸매도 중요하지만, 몸이 중요하다고. 이렇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는 유명인이 있었던가? 진정한 의미의 인플루언서라 할 수 있다.

18일 오전 김민경은 대회가 열리는 태국으로 출국했다. 100여 나라에서 1600여명 선수들이 출전하는 국제경기에 김민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나섰다. 방송에서처럼, 아니 평소처럼 그녀는 최선을 다할 게 분명하다. 

그런 김민경을 대중들은 응원할 것이다. 진정한 몸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국가대표 김민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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