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유의 시티라이프] 이태원 참사, 재발 막을 계획적 접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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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의 시티라이프] 이태원 참사, 재발 막을 계획적 접근이 절실하다
  •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 승인 2022.1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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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핼러윈을 즐기던 시민들이 좁은 골목에서 압사사고를 당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황망하게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참사에 많은 국민들도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이제 막 피어나려던 꽃다운 젊은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은 더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는 이 참사를 막을 수 없었을까. 그날 저녁 신고가 들어왔을 때 경찰이나 소방당국이 조금 더 빠르게 대응했더라면 이런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휘책임자가 즉각 인지하고 보행자의 소통을 위해 적극 나섰더라면 그냥 꽤 많이 복잡한 핼러윈 저녁으로 끝났을 것이다. 분명 그 시각 국가의 대응은 문제가 있었다. 막을 수 없었던 불가항력은 아니다. 

보행자에 대한 교통·도시계획 부족

그러나 이번 참사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체계적인 계획과 사전준비가 없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보행자에 대한 교통계획이 부재했고 도시계획도 부족했다. 

교통계획에서 차량 소통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동차 중심의 교통계획이 주를 이룬다. 불법주차를 단속하고 신호를 조정해 차량이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계획역량을 집중하곤 한다. 

참사 당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따르면 용산경찰서에서는 참사 사흘 전 방문객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행사 주최가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아마도 보행교통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안이한 생각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시위도 아니고 축제이니 사람들은 알아서 잘 다닐 것이라는 생각, 경찰이 굳이 동선을 짜고 한 곳에 몰리는 것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크나큰 실수이자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실 이날 이태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교통계획이 수립됐어야 했다. 평상시에는 골목길이 방문객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만, 이런 특별한 날에는 기존의 보도만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하므로 차도를 막아 보행공간을 추가로 확보했어야 했다. 또한 '임시 보행동선계획'을 세워 지하철에서 나오는 인파와 지하철을 탑승하려는 사람들의 동선을 일방향통행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1번출입구는 역에서 나오는 길로, 2번 출입구는 역에 들어가는 길로 전환했다면 자연스러운 보행흐름이 이어졌을 것이다.  

사람 몰리는데 보행공간은 수 십년째 제자리 걸음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시계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도 화를 키웠다. 이태원의 지역성격이 변해가고 있었음에도 도시관리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많은 주택이 식당이나 카페로 바뀌어 방문객이 계속 늘었지만, 이들의 보행공간은 수 십년째 제자리 걸음을 했다. 오히려 무단으로 증축하거나 신축한 건축물에 의해 골목길은 더 좁아졌다. 그러니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으레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고 떠밀려 다니는 일들이 일상이 됐다. 자연스럽게 이태원은 원래 붐비는 곳으로 인지해 둔감해진 것이다.

입소문을 타고 핫플레이스가 되면 위험한 보행은 종종 일어난다. 강남이나 홍대도 주말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지하철 출입구나 일부 골목에서 사람들이 떠밀려다니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러니 이런 지역들을 자주 다니는 젊은이들은 상황이 아주 심각해질 때까지는 압사사고의 위험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참사는 도시계획의 실패와도 연결돼 있다. 도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개발은 적절히 제어하거나, 변화에 맞도록 도로의 구조를 바꿔야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관리가 적절히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차도 줄이고 보도 넓히는 '도로다이어트' 적극 시행해야

우리는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물론 행정적인 재난대응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기존의 물리적 도시구조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개선방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도시 및 교통계획 차원에서 물리적 공간개선이 필요하다.

도시교통계획 차원에서 보행의 중요성을 재평가하고 그에 맞게 교통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토지이용이 변하면 그에 따라 도로의 구조도 조정하고 동선도 새로 짜야한다. 서울 이태원이나 연남동처럼 보행자가 급증한 곳에서는 보행공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도로다이어트(Road Diet)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로 가는 연세로의 대중교통전용지구가 좋은 예이다. 버스와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다이어트를 실행하여 안전하면서도 상권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니 말이다. 

이태원로와 강남대로는 간선도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통과교통 비중이 많으므로 일부 구간만이라도 차로를 줄이고 보도를 확대하는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동서 500미터 구간의 차로를 줄여 보도를 확대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통과교통이 대부분인 강남대로에서는 강남역에서 신논현역에 이르는 약 700미터 구간에서 도로다이어트를 고려해볼 만하다. 

임시교통계획의 수립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경찰에만 맡기지 말고 도시계획 및 교통계획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행사 이전에 동선계획을 짜고 그에 맞추어 행사 당일 통제를 실행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홍대입구역의 경우 방문객이 몰릴 때는 9번은 출구로, 8번은 입구로 일방통행을 시키면 보행밀도를 낮추고 흐름을 좋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강남역도 10번은 출구로 11번은 입구로 운영할 수 있다. 지하철 중 환승 보행밀도가 높은 신도림역이나 교대역 같은 경우도 보행동선체계 개선을 고려해볼 만하다.

우리의 안전보다 우선적인 가치는 있을 수 없다. 이번 이태원참사를 계기로 경찰, 소방 뿐 아니라 행정, 도시계획, 교통계획 등 모든 분야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한양대 도시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소, LH(옛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에서 연구했다. 현재 한국주택학회 수석부회장이며,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학술위원장이다. 저서로는 '전세'(2017), '포스트 코로나, 도시가 바뀐다'(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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