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⑧…황금대를 만들어 인재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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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⑧…황금대를 만들어 인재를 구함
  • 손봉균
  • 승인 2017.11.2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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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북쪽에 위치한 연나라는 강한 제나라에 비하여 국력이 열세에 있어서 제나라의 보호를 받거나 불평등한 협정을 맺어서 나라를 유지하였다. 이와 같이 항상 열세에 있던 연나라가 연 소왕 시절에 훌륭한 인재를 구하여 제나라의 수도에까지 쳐들어가서 거의 멸망시키는 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그 때 인재를 구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설명하겠다>

 

▲ 손봉균씨

 

중국 전국시대, 기원전 310년경, 연 소왕(BC312〜) 시대.

연나라는 지금의 북경을 포함한 중국의 북동쪽지역을 통치하던 작은 제후국이었다. 주 무왕이 주나라를 세울 때 받은 연나라의 크기가 처음에는 500리도 되지 못하는 작은 것이었다. 그 후 제 환공의 도움을 받아 영지국 등을 통합하여 비로서 천리가 되는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되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지리적으로는 산동지방을 통치하는 제나라의 북쪽에 있었다.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는 강한 제나라에 비하여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력이 열세에 있어서 제나라의 보호를 받거나 불평등한 협정을 맺어서 나라를 유지하였으며 때로는 제나라의 침공도 받았다.

이와 같이 항상 열세에 있던 연나라가 연소왕 시절에 훌륭한 인재를 구하여 제나라의 수도에까지 쳐들어가서 거의 멸망시키는 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그 때 인재를 구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설명하겠다.

 

▲ 연 소왕 초상화 /위키피디아

전국시대 기원전 320년경에 연나라 왕은 쾌였다. 연왕 쾌는 주색을 좋아하고 나라 일에는 게을렀다. 반면 자지(子之)는 선왕인 연 역왕 때부터 정승이 되어 연나라 정권을 잡고 있었다. 무능한 연왕 쾌가 왕이 되자 자지(子之)는 마침내 연나라 왕위를 뺏어서 왕이 될 작정이었다.

정승 자지는 심복 부하들에게 연왕 쾌로부터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도록 일을 꾸미라고 지시하였다. 자지의 심복부하들은 연왕 쾌가 중국의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임금과 순임금과 같은 명성을 얻고 싶어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자지를 따르는 부하들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성군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왕위를 자식에게 전하지 않고 훌륭한 인물(요임금은 순에게, 순임금은 우에게)에게 전하였기 때문이며, 우임금도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성군의 반열에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훌륭한 인물인 정승 자지에게 왕위를 물려주면 요임금과 순임금 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어리석은 연왕 쾌는 이러한 설득에 넘어가서 왕위를 정승 자지(子之)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그 신하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별궁에 물러가서 살았다.

 

연나라 장수 시피가 세상이 바뀐 데 대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자지를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자지에게 붙들려 죽음을 당했다. 자지측에서는 반란이 일어난 이유를 태자 평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태자를 잡으러 오자, 태자는 이를 미리 알고 무종산으로 달아났다. 다른 공자인 직도 한나라로 달아났다.

한편 제나라 제민왕은 연나라에 내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는 즉시 연나라를 치도록 분부했다. 대장 광장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발해로부터 연나라로 쳐들어갔다.

자지를 미워하는 연나라 백성들은 모두 음식을 들고 나가서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다. 이에 제나라 대장 광장은 연나라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무인지경을 가듯 50일 만에 바로 연나라 서울에 도착했다. 연나라 서울에서도 백성들은 성문을 열어주고 제나라 군사를 열렬히 환영했다.

자지는 자신의 힘을 믿고 제나라 군사와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몸에 중상을 입고 제나라 군사에게 사로 잡혔다가 처형되었다. 물러난 연왕 쾌는 별궁에서 목을 매고 자살 했다.

 

연나라 백성들은 비록 왕위를 찬탈한 자지에게는 원한이 맺혀있기는 했지만 제왕(齊王)의 뜻이 연나라를 멸망시키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불복하였다.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무종산(無終山)에 숨어있던 태자 평을 찾아 데려와 연왕으로 받들었다. 그가 바로 연 소왕(燕昭王)이다.

연 소왕은 왕이 된 뒤 반드시 제나라에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였다. 원수를 갚기 위해서 우선 위대한 인물을 많이 등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승 곽외와 의논하였다.

연 소왕이 말하였다.

"나는 자나 깨나 제나라에게 원수를 갚을 일만 생각하고 있소. 만일 제나라를 쳐서 나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나는 내 몸을 아끼지 않고 그분을 섬기겠소.

정승께서는 과인을 위해서 그런 인물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해주시오."

곽외가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면서 대답한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환관으로 있는 신하에게 천금을 주고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분부했습니다. 그 신하가 천리마를 구하러 어느 시골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말 주변에 모여 서서 연신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하가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은 살았을 때 하루에 천리를 달렸소. 그래서 우리는 이 천리마의 죽음을 탄식하고 있소이다’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이에 신하는 오백금을 주고 그 죽은 말 뼈다귀를 사서 걸머지고 서울로 돌아와서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로하여 ‘이런 죽은 말 뼈따귀를 뭣에 쓸 수 있다고 그 많은 돈을 주고서 사 왔느냐!' 하고 크게 꾸짓었습니다.

그 때 그 신하가 대답하기를 ’오백금이나 주고서 천리마의 뼈를 샀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조만간에 이 소문은 천하 방방곡곡에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문을 들은 자들은 ‘임금께선 천리마의 뼈따귀도 오백금이나 주시고 사셨다. 그러니 살아 있는 천리마를 바치면 굉장히 많은 돈을 주실 것이다’하고 서로 말할 것입니다. 상감께선 진정합시오. 머지않아 살아 있는 천리마를 끌고 올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 신하의 말은 맞았습니다. 불과 1년도 지나기 전에 임금은 천리마를 세 필이나 구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신은 죽은 말 뼈따귀 노릇을 하겠습니다. 대왕께서 성의만 있으시다면 신보다도 위대한 인물을 구하시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 연소왕이 만들었다는 황금대 /허베이성(河北省) 保定市 홈페이지

 

이 날부터 연 소왕은 새로이 궁실을 짓고, 그 곳에다 정승 곽외를 모셨다. 그리고는 비록 왕이지만 제자의 예로서 곽외를 섬기고 친히 대청에 끊어 앉아 가르침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연 소왕은 식사 때면 정승 곽외에게 밥상을 친히 갖다 바치고 조석 문안을 궐하지 않았다. 즉 연 소왕은 훌륭한 인물을 이와 같이 극진히 모신다는 것을 실천하면서 대내외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역수강가에 높은 대를 세우고, 그 대위에다 많은 황금을 쌓아 두었다. 즉 천하의 어진 인물들을 구하기 위해선 그 황금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 대를 초현대(招賢臺)라고도 하고, 또는 황금대(黃金臺)라고도 했다.

연소왕이 어진 선비를 구한다는 소문이 천하에 두루 퍼졌다.

이리하여 조나라에선 극신이, 주나라에선 소대가, 제나라에선 추연이, 위나라에서 굴경이 연나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연소왕은 그들에게 다 객경벼슬을 주고 그들과 함께 나라 일은 의논했다.

조나라 사람 악의도 또한 이런 소식을 듣고 연나라로 들어갔다. 연 소왕은 악의가 뛰어난 인재임을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자리인 아경의 자리를 주었다.

 

이 때 제나라는 크게 강성해서 모든 나라를 침략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연 소왕은 안으론 군사를 기르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제나라에서 마침내 제 민왕이 맹상군을 내 쫒고 날로 횡포를 부렸다. 제나라 백성들은 견더 낼 도리가 없었으며 민심이 많이 이반되어 갔다. 이와 반대로 연나라는 오랫동안 실력을 양성했기 때문에,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들 사이엔 질서가 서고, 군사들은 싸우기를 원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받은 연 소왕이 악의에게 묻는다.

“과인이 선왕의 철천지원한을 이어 받은 지 이제 28년이 되었소. 그간 과인은 지난날에 제나라에 당했던 치욕을 갚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소. 이제 제나라 왕은 교만할 대로 교만하고 거칠대로 거칠어서, 국내 국외를 할 것 없이 인심을 다 잃었으니, 이는 하늘이 제나라를 망치려는 것인 줄 아오. 이때를 당하여 과인은 국운을 걸고 제나라와 사생결단을 낼 작정이요. 선생은 어떻게 과인을 도와주시려오?”

악의가 대답한다.

“제나라는 크고 군사들도 싸움에 익숙합니다. 그러니 우리 연나라가 혼자 공격해선 안 됩니다. 대왕께서 제나라를 치실 생각이라면 반드시 천하 모든 나라와 함께 이 일을 도모합시오.”

 

▲ 연 소왕 상 /허베이성(河北省) 保定市 홈페이지

 

연 소왕은 악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진나라와 교섭하여 함께 제나라를 치기로 합의하였다. 다섯 나라는 악의를 다섯 나라 연합군의 상장군으로 삼았다. 약속한 기일이 되자 악의는 다섯 나라가 일으킨 대군을 이끌고 호호탕탕히 제나라로 쳐들어갔다.

제나라는 제 민왕이 친히 중군을 거느리고 대장 한섭과 함께 출동해서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웠다. 그러나 제나라는 많은 군사를 잃고, 대패하였다.

악의는 마침내 제나라 도읍 임치성을 함몰하였다. 제나라의 모든 재물과 제기와 지난 날 빼앗겼던 연나라 보물까지 모두 찾아서 큰 수레에 싣고 연나라로 보냈다. 연 소왕은 크게 기뻐하고, 악의에게 창국 땅을 주고 창국군으로 봉하였다. 연소왕은 도읍지로 돌아가고 창국군이 된 악의는 다시 제나라에 가서 남은 성들을 공격했다. 악의가 제나라를 쳐들어 간지 6개월 만에 70여개 성을 함몰하고, 다 연나라에 편입시켰다. 이 때 제나라 땅으로서 남은 성은 거주와 즉묵 두 개 뿐이었다.

 

제 민왕은 연합군에 합세하지 않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제나라 회북 땅을 주기로 하고 초나라의 지원을 요청했다. 초나라에서 지원군을 보냈다. 초왕은 대장 뇨치에게 형세에 따라 적당히 행동하라는 지침을 주었다. 즉 형세가 유리하면 제나라를 돕고, 그렇치 않거든 알아서 하라고 한 것이다.

초나라 지원군의 대장 뇨치는 다섯 나라 연합군의 사기가 높고, 초나라와 제나라가 합심해도 다섯 나라 연합군을 이길 것 같지 않아 연합군 장수 악의와 협의하여 제 민왕을 잡아 죽였다.

악의가 제나라에서 남은 2개의 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연 소왕이 죽었다. 그 뒤를 이어 연 혜왕이 즉위하자 그 동안 악의를 시기 하던 자들이 악의를 참소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한편, 제나라에서는 지혜롭고 병법에 능한 전단이라는 장수가 나와 제나라를 다시 탈환하였다.

이와 같이 작은 연나라가 제나라의 수도인 함락하고 복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성의껏 인재를 대우하고 황금으로 많은 보상을 해 주어 좋은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이다.

 

손봉균씨는
국토교통부에서 30년간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행정고시 19회에 합격. 전 국토지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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