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이태원 참사를 마주한 대중문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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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이태원 참사를 마주한 대중문화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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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주 토요일 저녁 케이블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을 방영했다. 영화 속에서 중국의 근현대사의 질곡을 겪는 주인공 부부의 인생은 너무나 기구하다. 부부는 아들과 딸을 잃기까지 한다. 초등학생 아들은 과로한 공산당 간부가 낸 졸음운전 사고로, 임신한 딸은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병원에서 출산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부부의 아들과 딸의 죽음은 하필 그때 그곳에 있었던 잘못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자녀의 죽음을 마주한 부모는 억울한 마음을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다. 국가 시스템의 난맥이 쌓이고 쌓여서 생긴, 결국은 국가가 낸 사고였기 때문이다. 힘없는 시민은 그저 감내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할 뿐이었다.

차라리 영화였으면...

영화의 먹먹함을 달래기도 전에 쏟아진 속보에 필자는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속보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었다. 밤을 지나 새벽이 오며 속보가 알려주는 숫자는 올라가기만 했다. 잠결에 얼핏 속보를 본 어느 지인은 어디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현실이라기엔 너무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다.

지상파와 종편은 종일 뉴스를 속보로 내보냈다. 방송가는 추모의 의미를 담아 일요일에 내보내던 예능과 쇼의 방영을 취소했다. 정부는 국가적 추모 기간을 설정했고 전국의 지자체는 각종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대중문화계도 여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특히 콘서트를 준비하던 가수들이 추모의 뜻을 담아 공연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11월 초 콘서트를 계획했던 코요태는 내년 1월로 공연 일정을 미뤘다. 에일리도 콘서트를 연기했고 백지영은 취소했다. 마이클 볼튼의 내한 공연도 취소됐다.

큰 참사인 만큼 대중문화계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신 배우 이지한이 사망했다. 연예인들의 여러 지인도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임수향, 옥주현, 홍석천 등이 이번 참사로 지인들을 잃었다며 그들을 추모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대중문화계도 추모의 뜻을 담아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늘었다. 사진=연합뉴스

불똥이 대중문화계로 튀기도

그런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연예계에 여러 논란이 일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이태원을 찾은 유명인이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는 루머가 그 시작이었다. 소문은 배우 유아인을 지목했다. 참사 현장 인근에 유아인이 등장해 인파가 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는 참사 당시 유아인이 해외에 체류하는 중이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유아인은 지난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로 심경을 밝혔다. 특히 "통곡의 주인보다 더 시끄러운 개소리들, 입닥쳐, 쪽팔린 줄 알아야지"라고 강도 높은 표현으로 누군가를, 아마도 소문의 진원지를 비난했다. 

애도 강요 논란도 있었다. 노현희는 지난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애도 기간만큼이라도 놀러 다니고 예쁜 척 사진 찍고 자랑질하는 사진들 올리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젊은 생명들, 아까운 청춘들이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라고 썼다.

어쩌면 입바른 소리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는 이 글을 대중들은 애도를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마음이 앞서 자기표현에 자신한 나머지 권유와 강요의 차이를 간과한 결과였다. 반면 배우 김기천과 방송인 허지웅의 추모 글은 많은 대중의 공감을 샀다. 

가수 이찬원은 봉변을 당한 경우다. 행사장에서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며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가 일부 관객의 야유를 받았다. 한 남성은 이찬원에게 폭언하고 매니저의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찬원처럼 애도 기간에 노래하지 않겠다는 가수가 있고 콘서트를 연기하거나 취소한 가수도 있지만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다. 

가수 정원영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모든 공연을 다 취소해야 하나요. 음악만 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라고 올렸다. 추모의 방식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생각의 여름’으로 알려진 가수 박종현은 예정된 공연을 “고민 끝에 진행하겠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공연도 “애도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음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고도 했다. 공연이 추모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가수 장재인도 ‘생각의 여름’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글을 올렸다. 음악평론가 배순탁도 같은 취지의 글을 올렸다. “애도의 방식은 우리 각자 모두 다르”니 “방식마저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밝혔다. 

배순탁은 특히 우리나라가 “언제나 대중음악이 먼저 금기시되는 나라”라며 “슬플 때 음악으로 위로받는다고 말하지만 말”라고 어딘가를 비판했다. 생각과 행동의 방식까지 정하는 그 어딘가를 향해서.

아픔을 함께 나누며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 혹은 그들의 지인들만 희생된 것이 아니다. 참사를 목격하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희생된 것이다. 그러니 아픔을 모두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런데, 포털의 추모 게시판을 보면 “너희는 잘못이 없다”는 취지의 글이 유독 많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까? 

영화 <인생> 속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과 이태원 참사가 겹쳐 보이는 한 주였다. 영화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죽음은 무척 아팠는데 현실에서 목격한 참사는 너무나 무섭기만 하다. 

이태원 참사로 생명을 잃은 모든 분의 죽음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부상자들의 쾌유도 기원합니다. 이들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참사에 가슴 아파하는 모든 이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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