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적신호] ③고금리·성장 둔화로 경색된 자금시장…기업 부실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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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조달 적신호] ③고금리·성장 둔화로 경색된 자금시장…기업 부실 우려 커져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11.04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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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 4연속 0.75%p 인상 '자이언트스텝' 나서
한은, '빅스텝' 밟자니 유동성 경색 우려돼
5대 시중은행 기업대출 700조원 돌파
"시장 안정 조치가 우선…신용 리스크 보강 최대화"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자금시장에 '돈맥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채무보증 불이행 선언으로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에 시장이 충격에 빠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출 증가세가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는 등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상황의 원인과 금융권의 대응, 향후 전망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레고랜드 부도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시장에 닥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으로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고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피봇(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빗나간 것이다.

파월 의장은 "적절한 금리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제법 멀다"며 "최종 금리 수준은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높을 것이며, 금리 인상 중단을 생각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못을 박았다.

이에 따라서 국내 경제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1%포인트에 도달한 가운데 한은이 연 3%인 기준금리를 더 높이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가 더욱 거세지는 셈이다. 금리가 인상됨으로써 국내 자금 시장 경색 또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 이번달 금통위…'베이비스텝이냐, 빅스텝이냐' 고민 커져

당장 이번달 말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해야 하는 한은의 고민이 커졌다. 미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서 한은도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한편으로는 속도 조절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환율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자본유출이 심해지는 면을 고려하면 빅스텝을 밟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돈맥경화로 기업들이 문제를 겪는 가운데 한은이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 경색을 재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현재 연 3%까지 오른 기준금리는 대출금리 인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신규취급액 기준으로 전월 대비 0.44%포인트 오른 3.40%로 1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 상단 역시 최근 7.551%를 기록해 이자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400원을 넘어선 환율까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전일 대비 4.6원 내린 1419.2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환당국이 원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푼 결과 추가 상승은 막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외환 보유액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10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40억달러(약 588조원)로, 올 들어 491억달러(약 70조원) 줄어들었다.

여기에 무역수지 적자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10월 무역수지는 67억달러 적자로 4월 이후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 역시 356억달러 마이너스에 이른다.

기업대출 지난달 700조원 돌파…변동금리 비중 72%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기업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채권시장 경색이 이어지자 기업들이 은행 문을 두들기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중은행 기업대출은 10월에만 9조 가까이 불어나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돌파했다.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703조751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35조8878억원)과 비교해 10개월 사이 67조8634억원 늘어난 셈이다. 10월 한 달에만 은행의 기업대출은 8조8522억원 급증했는데, 이 중 67%(5조8592억원)이 대기업 대출로 나타났다. 

기업 빚 증가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금융사 제외)은 117.9%로 1년 새 6.2%포인트 늘었다. 조사 대상 35개국 가운데 베트남(7.3%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증가 속도가 빨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3년 연속 이자비용보다 영업이익이 적은 한계기업의 비중은 2021년 14.9%에서 올해 최대 18.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기업대출 부실 징후 및 대응 방안'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10년간 기업 대출은 해마다 4.1%씩 증가했으나 최근 2년 반 동안 연 평균 12.9% 늘었다고 지적했다. 또 9월 말 기준 기업 10곳 중 7곳 이상(72.7%)이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고정금리부 대출을 쓰는 곳은 27.3%에 그쳤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자금난, 신용경색 등을 겪었다"며 "유사시 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도 사전에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채안펀드 자금 지원 현황 점검

시장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안정화펀드(채안펀드) 등 자금 지원 현황 점검에 나서고 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지난달 23일 발표한 50조원+α 유동성 지원조치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한국증권금융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출 등으로 중소형 증권사에 9300억원을 공급했다. 증권금융이 목표로 하는 증권사 유동성 공급 규모는 3조원 이상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도 지난 1일부터 증권사가 발행한 CP를 매입했다.

총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이번 주부터 여신전문금융사채(여전채) 매입을 시작했다. 3조원 규모의 1차 추가 캐피털콜(펀드 자금 요청)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 부위원장은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칠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시장현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지원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신용 보강 노력이 최선이라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전반적인 기준금리 상승과 함께 한전채나 금융채들이 쏟아지면서 기본적으로 채권시장과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런 관점에서 추가적으로 신용을 보강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생기는 건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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