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시게루, 이와타 사토루 두 거장의 만남
지금의 닌텐도 만들어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1990년 밀레니엄의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는 해, 게임 프리크의 새로운 게임 기획인 ‘캡슐 몬스터’의 피칭 문서 (투자 등을 받기 위해 콘텐츠의 기본 기획, 개발 일정 등을 명시한 문서)가 완성됐다.
포켓 몬스터 3인방 중 하나인 스기모리 겐이 문서의 삽화를 그렸고 타지리 사토시가 기획을 담당한 이 문서는 수십 페이지에 달했고 스토리의 세부 정보, 컨셉 아트, 지도나 게임의 핵심 전투 기능의 일차 기획들을 담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200개에 달하는 캡슐 몬스터들의 방대한 디자인 초안들이었다.
타지리는 이 방대한 기획의 신작 게임이 전작 ‘퀸티’같은 사전 제작 방식으로는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제작비를 대줄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우연히 업계에서 안면이 있던 게임 개발사 에이브의 이시하라 츠네카즈를 찾아가 캡슐 몬스터의 피칭 문서를 보여주게 된다.
전설의 시작
캡슐 몬스터의 기획이 맘에 들었던 이시하라는 에이브를 자주 방문하던 닌텐도의 법무 담당 카와구치 타카시에게 타지리의 기획을 소개했고, 카와구치는 이를 회사의 담당부서로 연결했다.
작은 게임회사로서는 이례적인 기회였다. 전작이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학교 서클 같은 느낌의 작은 회사였던 게임 프리크가 공동 개발이 아닌 단독 개발로 게임을 릴리즈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기도 했다.
특히 당시 게임 업계에서 슈퍼 갑으로 군림했던 닌텐도로서는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의 기회를 거머쥔 타지리는 지금은 게임계의 전설로 불리는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와 역시 전설의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 (후에 닌텐도의 사장이 된다) 등이 참여한 피칭 회의에서 캡슐 몬스터에 대한 기획에 전력했다.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기획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미야모토 시게루의 설득으로 결국 게임 프리크는 닌텐도와 ‘캡슐 몬스터’에 대한 퍼블리싱 계약을 맺게 된다.
여담이긴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와는 당시만 해도 유명 게임 프로듀서와 작은 개발사 사장으로 만났지만, 이후 닌텐도를 대표하는 두 프랜차이즈의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은근히 둘을 라이벌 관계로 엮기를 좋아한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색을 하고 어디 감히 그분에게 나를 빗대냐는 식으로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포켓 몬스터가 있게 해준 가장 큰 일등 공신에 대한 예우와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한다.
쉽지만은 않았던 전설의 탄생
닌텐도의 지원이 시작되자 타지리를 필두로 한 게임 프리크 팀은 캡슐 몬스터 피칭 문서를 본격적인 실제 개발 기획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타지리가 캡슐 몬스터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플레이어가 포획한 몬스터를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트레이드 시스템’이었다.
닌텐도도 자사 게임기인 게임 보이의 하드웨어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트레이드 시스템에 큰 점수를 주어 캡슐 몬스터와 계약한 지라 이 기획은 어떻게든 구현해내야 하는 기획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 기획에 들어가자, 트레이드 시스템이라는 것이 만만치가 않은 시스템임을 다들 깨닫기 시작했다.
우선 지목된 문제는 캡슐 몬스터들이 트레이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친근감있고 매력적으로 보여야하는 점이었다. 닌텐도가 마음에 들어했던 초기 캡슐 몬스터 기획은 당시 몬스터하면 떠올렸던 괴수 영화에 나오는 이미지대로 거대하고 흉폭한 모습들이었다.
물론 이런 디자인도 좋았지만 디자인을 담당한 스기모리 겐은 거대하고 흉폭해 보이는 못생긴(?) 몬스터들 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보이는 몬스터들이 트레이드 시스템에는 큰 도움이 될 것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스기모리의 생각은 곧 포켓 몬스터 시리즈의 가장 큰 성공 요소 중 하나로 손꼽는 몬스터 진화 시스템의 기반이 됐다.
귀엽지만 힘이 약한 아기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인간처럼 플레이어들이 처음에는 귀엽고 작지만 약한 몬스터들과 만나 그들과 함께 모험을 하고 경험을 거듭해갈수록 거대하고 강력한 몬스터로 진화해가는 이러한 포켓몬 특유의 시스템은 플레이어 자신이 성장하던 기존의 롤플레잉 형 게임과는 전혀 다른 육성의 재미를 선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곧 문제점을 노출한다. 플레이어들이 너무 애착을 가지고 육성을 하다보면 오히려 다른 플레이어와 거래할 때 제대로 거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포켓 몬스터의 가장 핵심 기능인 트레이드 시스템은 이렇게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지 못하고 헛돌게 되었고 게임 프리크 팀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플레이어가 트레이드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이 아직은 캡슐 몬스터였던 포켓 몬스터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던 게임 프리크 팀을 구원하기 위해 게임계의 전설이자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등판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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