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천원짜리 변호사’를 제목처럼 저렴하게 만든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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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천원짜리 변호사’를 제목처럼 저렴하게 만든 PPL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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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드라마를 보다가 멈칫하는 구간이 있다. 전개가 어색해서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르는 때도 있지만 대개는 PPL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야기와 영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면야 상관없지만, 노골적으로 광고임을 드러낸다면 그 드라마의 품격까지 떨어뜨릴 수도 있다. 지난 주말 SBS <천원짜리 변호사>가 그랬다.

PPL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난 주말 방영된 <천원짜리 변호사>는 말 그대로 멈칫, 하게 만든 순간이 많았다. PPL이 여러 번, 그것도 노골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 천지훈 변호사(남궁민 분)와 그의 시보 백마리(김지은 분)가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유명 커피 브랜드가 노출됐다. 심지어 천지훈이 시선을 카메라에 맞추고는 커피 봉지를 카메라에 비추며 브랜드와 제품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PPL은 주인공과 여러 단역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도 나왔다. 천지훈이 브랜드 로고가 분명히 보이는 찜닭을 동료들에게 선사하고는 함께 먹는 장면이었다. 물론 맛있다는 출연진들의 반응이 이어지며 찜닭 먹방을 연출했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씬스틸러들인 건물주와 친구들도 PPL과 함께 등장했다. 그녀들은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를 함께 나눠 먹는다. 이 장면에서는 광고에나 나올 법한 문구가 대사로 흘러나와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 씬이 지난주에 펼쳐진 에피소드와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천지훈과 일행은 회식 메뉴로 양대창을 선택한다. 물론 식당은 지금 실제로 뜨고 있는 어느 양대창 프랜차이즈였다. 웬만한 먹자골목에는 다 들어선 그 양대창집의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가 노골적으로 등장했다. 식사할 타이밍이기는 했지만 그 장면을 PPL을 위해 찍었나 싶을 정도로 양대창을 찬양했다.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사진제공=SBS

PPL은 필요악?

PPL은 Product Placement의 약자다. 방송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는 간접 광고를 의미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각종 게임이나 에니메이션, 혹은 웹툰에도 등장한다. 광고는 제작비를 조달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작사는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PPL 전략을 수립해 타겟 기업들을 공략한다.

물론 이런 PPL이 자연스럽게 영상에 노출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한다거나 그 횟수가 잦아진다면 시청하는 대중의 눈에 거슬릴 게 분명하다. 만약 TV로 시청하고 있다면 채널을 돌릴 확률이 높다.

영화 <트루먼 쇼>에 그런 맥락 없는 간접 광고를 풍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트루먼의 부인이 뜬금없이 코코아를 언급한다든지, 트루먼의 친구가 어색한 상황에서 맥주를 찬양하는 식이다. 

2019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PPL이 소재로 나온다. 등장인물은 드라마 감독과 제작사 직원. 둘은 간접 광고하기로 계약한 안마의자를 드라마에 어떻게 녹여낼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둘의 상상 속에서 영상으로 흘러나온다. 

이 장면은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의 PPL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그렸다. 거기에 등장한 안마의자는 <멜로가 체질> 측과 간접 광고를 계약한 제품인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도 PPL을 이토록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장면이었다. 드라마 맥락에 들어맞았고 상황에도 잘 스며든 연출이었다.

지난주 <천원짜리 변호사>에 다소 많은 PPL을, 그것도 노골적으로 배치한 것은 아마도 계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도 등장했다. 천지훈이 직접 커피를 타겠다고 하고는 “그런 게 있다”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러고는 말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계약 내용 중에 주인공인 남궁민이 커피를 직접 강조하는 장면이 들어가야 한다고 명시된 건 아니었을까.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광고 계약 관행으로 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광고액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제목처럼 값싼 드라마가 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엇이든 적당할 때가 아름답다. 드라마 전개와 상관없이 간접 광고가 노골적으로 노출되면 시청자들이 따라가던 맥락을 놓칠 수 있다. PPL이 몰입을 방해하는 지경까지 이르면 대중에게 배신감까지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천원짜리 변호사>처럼 인기가 올라가는 드라마라면.

원래 금요일과 토요일 두 편이 편성된 이 드라마는 지난주 금요일에는 특집을 내보냈다. 하지만 특집에 걸맞지 않은 지난 이야기 요약이었다.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도 높았던 드라마 흐름이 일순 멈칫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토요일에 방영된 본편 드라마는 과도하게 노출한 PPL 때문에 더욱 멈칫, 하게 만들었다. 이를 반영하듯 <천원짜리 변호사>의 노골적 PPL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여럿 나왔다. 공교롭게도 시청률도 다소 떨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드라마의 제작진들이 그토록 유치하게 PPL 장면을 연출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깊은 의도를 품고 있었을 것이라는.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혹시 제작진들이 제작사나 투자사에 ‘빅엿’을 먹인 건 아닐까 하는. 그래서 다시는 무리한 PPL을 요구하지 않도록 골탕을 먹인 거라고.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논란을 노린 ‘노이즈 마케팅’이었을까? 아무튼 언론에 많이 오르내린 건 분명하다. 드라마도 노출된 제품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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