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돈맥경화' 찬바람 분다…SK·LG·현대차도 투자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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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돈맥경화' 찬바람 분다…SK·LG·현대차도 투자 줄여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28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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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량 회사채 미매각 속출…투자심리 급랭
SK-LG-현대차 등 내년도 투자규모 대폭 축소
벤처기업 투자 곤두박질…전년比 40% 급감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초(超) 인플레이션과 고환율, 고금리 영향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 450조원, SK 247조원, LG 106조원 등 10개 그룹이 향후 5년 동안 1000조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신사업 발굴과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공언했지만 대규모 투자 계획은 말라가는 '돈맥경화' 속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급속한 투자심리 위축 속에 우량 회사채의 미매각 사례가 속출하는 등 찬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대 금리도 어렵워…AA급 회사채도 미달 속출

신용등급 AA의 우량 회사채도 이례적으로 미매각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LG유플러스는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단행했고, 1000억원 규모의 유효 주문을 받았다. 500억원은 팔리지 않으면서 주관사가 떠안게 됐다. 신용등급 AA(우량)인 LG유플러스의 회사채가 미매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수요예측을 진행한 한온시스템도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매수주문은 500억원에 그쳤다. 애초 3년물 2500억원, 5년물 500억원을 예상했지만 실제 수요는 3년물 300억원, 5년물 200억원 뿐이었다. 

이들 보다 앞서 수요예측을 진행했던 신용등급 AA-급 한화솔루션의 회사채와 AA0급 코리안리재보험도 흥행에 실패했다. 1500억원 규모의 한화솔루션 회사채에는 모두 130억원이, 1000억원 규모의 코리안리재보험 신종자본증권에는 250억원만 주문이 들어왔다. 한화솔루션과 코리안리재보험은 모두 6%대 금리를 제시했지만 흥행실패를 떠안았다. 

신용등급 AA급 이상인 우량 회사의 채권이 미매각되는 사례는 이례적으로 레고랜드발 돈맥경화의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2000억원 규모의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가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상당한 것도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8조원대 초반인 반면 내년 만기가 찾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약 70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돈맥경화' 완화를 위해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50조원 규모 채안펀드 조치로 시장이 근본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채안펀드의 주된 주체인 은행들의 은행채 대규모 발행 등 자금부족 사태가 해결될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 한은 담보증권에 은행채 포함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근본적 환경도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물가와 미국의 근원 물가는 아직 고점을 확인하지 못했고, 미 연준의 피봇(입장 선회)이 11월 FOMC에서 나올 가능성도 높지 않아 여전히 시장 불안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주요기업들이 급속이 얼어붙은 투자 심리 속에 자금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 줄이는 SK·LG·현대차

자금경색 우려 속에 주요 기업의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6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10조원 후반대였던 투자규모를 내년에는 올해의 절반 이상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2008~2009년 금융위기 수준에 버금가는 투자 축소가 될 것"이라면서 "올해 말 업계 재고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예상되는 만큼 생산 증가를 위한 웨이퍼 케파(생산능력)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 사장은 투자 감축 이유로 수요 위축을 꼽았다. 그는 "메모리반도체는 생산과 판매의 빗그로스(저장공간 기준 출하량 증가율)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일르 통해 판매단가(ASP)를 낮춰가는 사업인데 사업자 입장에서 생산을 축소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4조3000억원 규모의 청주 신규 반도체 공장(M17) 증설 투자를 보류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PC와 노트북 판매가 급감하고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시설 투자를 미루면서 서버용 수요 역시 감소세로 돌아선 게 이유다. 

LG디스플레이도 이날 실적 발표에서 투자규모를 연초 계획했던 2조3431억원보다 1조원 가량 줄일 예정이라고 했다. TV와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면서 패널 수요도 급감하고 있어서다. 특히 주력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수요처가 몰린 유럽에서 러이사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가 OLED 감산을 언급한 건 사업을 본격화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4일 "올해 투자 계획을 연초 9조2000억원에서 대외 변동성 확대에 따른 유동성 관리 차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레고랜드 사태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중소벤처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분기 벤처투자 곤두박질…전년비 40.1% 급감

벤처기업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3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이 전년 동기대비 40%나 감소했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올해 1~3분기 벤처투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벤처투자액은 1조2525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0.1%(8388억원) 줄었다. 코로나19 상황이던 2020년 3분기(1조2371억원)보다 많지만 금리인상 기조 장기화와 실물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특히 100억원 이상 대형투자가 크게 줄었다. 3분기 1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기업은 22개사로 전년동기 43개사, 2020년 3분기 27개사보다 적다. 시리즈B 이상의 중후기 투자가 위축되고 대부분 시리즈A 단계 초기투자에 집중된 영향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게임 분야다. 게임업은 지난해 3분기 837억원을 투자 받았지만 올해 3분기 284억원을 유치하는데 그쳤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6.1%(553억원)나 투자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이어 바이오·의료(-48.8%), 유통·서비스(-44.1%), 전자·기계·장비(-42.3%) 순이었다. 반면 영상·공연·음반이나 화학·소재는 각각 20.4%,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규모로는 ICT서비스 업종이 가장 컸다. ICT서비스 업종 투자액은 4645억원으로 전년 동기(6879억원)보다 2234억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율은 32.5%로 평균(40.1%)보다는 낮았지만 전체 벤처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이상으로 커 감소폭은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최근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복합적인 경제 리스크로 벤처투자 심리가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벤처투자 촉진 및 국내외 모험자본 유입 확대 방안을 담은 벤처투자 생태계 역동성 강화 대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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