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⑧…신포스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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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⑧…신포스코운동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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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정책에 발맞춰 권위주의적 틀 깨고 국민기업상 정립

 

1993년 9월 광양제철소 만남의 광장에서 생긴 일이다. 광양제철소는 개펄을 메워 그 위에 제철소를 지었기 때문에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뭍과 떨어져 섬처럼 고립돼 있다.

이 만남의 장소는 포철측이 직원들의 휴식을 위해 술과 과자류를 판매하는 곳이다. 제철소와 사원주택이 모두 뭍과 떨어져 있는 탓으로 만남의 광장은 늘상 제철소 직원들로 붐비는 곳이다.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정담을 나누는 사람,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사람, 그 노래에 젓가락을 두두리는 사람을 왁자지껄했다.

그때 포철의 조말수 사장이 나타났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말술」이었다. 직원들이 돌리는 잔을 모두 받아 마신 뒤 조 사장은 “이자리에서 마신 술값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내겠다”고 자청했다.

직원들이 「와」하고 좋아했다. 한잔만 하겠다고 온 사람은 한잔 더 마시겠다고 주문했고 사장님이 사는데 비싼 안주를 더 시키는 사람도 나왔다. 이날 만남의 광장을 운영하는 측에선 조 사장 앞으로 달아 놓은 돈 계산에 홍역을 치렀다.

포철의 사장이 근로자들의 숲에서 술잔을 돌리는 모습은 박태준 전임 회장시절에는 없던 일이다. 이날의 모습은 박태준 이후의 포철을 맡은 정명식 회장, 조말수 사장의 신임경영진이 신포스코 운동을 내걸고 단행한 포철 개혁이 일단면이었다. 포철개혁은 처음에는 직원들로부터 나름대로 호응을 얻고 출발했다.

신임경영진의 경영권 인수기간은 25년간 박태준의 1인 체제가 유지됐던 것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신임경영진들은 박태준 전임 회장의 정치참여, 이에 따른 세무조사와 황경로 전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포철 사태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습하려고 했다.

 

정 회장 조 사장은 살을 깎는 아픔으로 대수술을 단행했다고 강조으며, 이 수술은 처음에는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93년 8월말 포철 비서부는 정 회장의 간단한 이력과 신포스코 운동의 개요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청와대로부터 받았다. 김 대통령이 정 회장을 초청하겠다는 취지였다.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 하는 기업들의 순서에 기업인들의 순위에 재계의 관심이 쏠려있는 가운데 포철의 정 회장은 삼성의 이건희, 기아의 김선홍, 럭키금성의 구자경 회장에 이어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9월 2일 김영삼 대통령은 정명식 회장과 오찬을 가졌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금융실명제의 조기정착을 위해 포철 등 대기업이 협력업체들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 포철의 상반기 수출신장에 대해 “열심히 해줘 고맙다”고 하면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기술개발과 신규시설투자가 중요하며 포철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포철은 기술개발을 위해 매년 950억원씩 투자하는 등 첨단기술을 개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철강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좋은 조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중웅 상무는 김 대통령과 정 회장의 이날 오찬에 대해 “김 대통령이 꾸준히 포철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게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포철의 신임경영진들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취임후 6개월 동안 여러가지로 개혁적인 일을 단행했다. 신경영진의 개혁은 신한국창조, 신경제에의 동참, 거래업체와의 관계개선, 직장분위기 쇄신등으로 요약된다.

우선 신임 경영진은 취임 일성으로 신한국창조, 신경제에의 동참을 내걸었다. 공기업으로서의 속성상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박태준 전임 회장의 정치참여로 얼룩진 포철에 대한 외부의 시각을 교정할 필요도 있었다.

신임 경영진은 취임 직후인 3월23일 정부의 신경제정책에 호응, 연말까지 철강재의 내수가격을 동결했다. 어음결제한도 기일을 71일에서 55일로, 어음 평균결재일을 43일에서 33일로 각각 단축했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발생하는 자금추가 부담 및 이익감소 예상액은 원가절감 및 생산성향상을 통해 차질 없이 경영목표를 달성한다고 밝혔다.

 

4월1일 정 회장 조 사장등 포철의 신임 경영진은 포항본사에서 임직원, 자회사, 협력회사 대표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갖고 이날을 「신포스코의 날」로 선포했다.

신포스코운동의 취지는 “새정부의 신경제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국민기업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고 3대과업으로 부조리추방, 권위주의 타파, 경영구조혁신을 설정했다. 「신포스코운동」의 기조는 문민정부의 신한국건설에 앞장서 대기업병을 없애고 신바람나는 일터, 노력을 통해 보람을 공유하는 일터를 만드는 것. 이의 10대실천방안으로 조직통폐합, 인사쇄신, 고객중심의 판매, 구매제도혁신등을 들었다.

정 회장은 기념식에서 “지난 4반세기동안 국가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온 국민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이날을 신포스코의 날로 선언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어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고와 관습의 틀을 과감히 깨고 국민기업상을 정립하기 위해 직원스스로가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는 자율관리가 충만한 기업을 만들자”고 변신의 방향을 제시했다.

창업4반세기를 맞아 선포된 포철의 경영혁신 작업은 창업자인 박태준 전 명예회장을 비롯, 많은 창업공신이 물러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포스코 운동의 또다른 측면은 조직의 비대함에서 발생하는 군살을 빼는 것. 새 경영진은 「작은 본사」를 지향하는 조직의 간소화, 유사기능의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을 단행, 종전의 85부에서 76개부로, 실과 단위는 349개에서 335개로 줄였다.

또 경영쇄신과 후진양성을 위해 사장급 임원중에서 60세이사의 고령자및 장기 재임자를 교체하는 한편 실적과 역할이 불분명한 자회사의 회장과 고문을 전원 해임하고 다른 회사나 기관에 나가있는 파견자도 일제히 정리했다.

결재권에 대해서도 조 사장은 “회사의 정책결정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결재를 거부한다”며 결재권을 위양했다.

이 무렵 조사장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인사관행의 수립을 위해 단임을 지키겠으며 과거 경영진처럼 장기간 재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과 조 사장은 모두 1년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당시 조사장이 한 말의 뜻은 “박태준 전회장처럼 장기집권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결국 조 사장은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셈이다.

신경영진은 또 포항 광양제철소장 중심의 책임경영제를 확립하며 본사는 순수전략기능중심으로 그 기능을 축소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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