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엇갈린 '금융정책'...한은은 긴축 VS 정부는 '50조+α'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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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발 엇갈린 '금융정책'...한은은 긴축 VS 정부는 '50조+α' 공급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10.24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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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發 채권시장 불안 급등
24일부터 1.6조로 회사채·기업(CP) 어음 매입
한은, 대출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공공기관채·은행채 포함 검토
11월 금통위에 영향… "금리인상 기조는 유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 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결정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긴축을 실시해야 하는 시점에서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돼 '정책 엇박자'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결정된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대책이 이날부터 일부 시행된다. 금융사들은 정부의 유동성 공급 조처에 대해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시장에서는 자금시장 경색의 근본적 원인이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냉각이니만큼 이번 조처는 단기적인 해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앞서 지난달 말 강원도는 레고랜드가 사업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보증을 섰다가 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혀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강원도는 8년 전 최문순 전 강원지사 시절인 2014년 강원중도개발공사를 통해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올해 당선된 김진태 강원지사가 지난달 28일 "공사가 빌린 돈을 (강원도가)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밝혀 유동성 경색을 불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50조 규모 유동성 공급…이날부터 1.6조 투입

정부는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당장 이날부터 1조6000억원을 투입해 회사채·기업(CP) 어음 매입을 곧바로 재개하기로 했다. 추가 자금조성 작업(캐피털 콜)도 개시할 예정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의 매입 한도는 기존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확대한다. 또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어려움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에도 10억을 투입한다. 

한은도 오는 27일 열리는 금통위 회의에서 대출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현재 은행들은 한은에서 대출을 받을 때 국채·통화안정화증권·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만을 담보로 제공하는데, 적격담보 대상 증권이 확대되면 은행은 이미 보유한 은행채를 대출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 자금 조달 압박을 덜 수 있다.

한은·정부 유동성 '엇박자' 

정부의 이러한 유동성 공급 조치는 긴축을 시행해오던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와 상충된다. 한은이 금리를 올려 시장의 유동성을 옥죄는 동안 정부가 반대로 유동성을 푸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23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 방안은 미시적인 조치라서 거시적인 통화정책 운영에 관한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은이 물가를 잡기 위해 자금시장 경색을 두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초 전문가들은 한은이 현 기준금리 연 3.0%를 다음달 3.5%로 0.5%포인트 올려 시장에서 돈을 더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위기에 빠지면서 물가안정에서 금융안정으로 정책 중심이 옮겨갈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이나 금융안정특별대출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중금리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과정에서 자금경색이 발생한 만큼 정책 당국의 대응 역시 기조 상으로 상충되는 문제는 향후에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금융권에서는 이번 지원책에 SPV 등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통화긴축을 진행 중인 한은의 입장에서는 이를 즉각적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 금융안정특별대출을 재가동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 한은이 회사채를 담보로 받고 대출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다만 시장에서는 한은이 정부와의 엇박자를 고려해 SPV나 금융안정특별대출을 검토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한은 11월 금통위 금리 결정에도 영향

한은은 지난해 8월 이후 약 1년 2개월간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0%까지 2.5%포인트 인상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각국 금리인상 기조에 맞춰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초 0~0.25% 수준이던 금리를 3.0~3.25%로 3%포인트 가량 끌어올린 상태다. 하지만 물가가 여전히 잡히지 않아 11월과 12월에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씩 올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금시장 경색이 지속되면 한은도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만일 정부의 이번 50조원 규모 유동성 조치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한은에서 돈을 풀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금통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은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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