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⑥…무너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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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⑥…무너진 신화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09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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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박태준에 대한 세무조사 후 검찰에 고발 조치

 

1993년 5월 3일 국세청은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포항본사를 관할하는 최병윤(崔炳潤)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맡았다.

발표내용인즉, 포철과 제철학원, 계열사및 협력사에 대해 총 730억원의 법인세를 추징하는 한편 박태준 전회장이 계열사등으로부터 56억원을 부당하게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또 박 전회장이 타인 명의로 해놓은 부동산이나 자녀 명의로 된 주식 등에 대해 63억원의 증여세를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박 전회장이 56억원의 자금을 부당하게 수뢰한 사실에 대해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했다는 점이었다.

국세청은 3개월여에 걸친 집요한 추적끝에 결국 박태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협의로 검찰에 고발토록 만들었다. 세무조사반이 찾아낸 수뢰금액 56억원은 박태준에게 중형을 언도받게 할 수 있는 규모. 특가법은 공직자가 직무를 이용해 받은 수뢰액이 2,000만원 이상일 때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이 이처럼 개인을 조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을 유례없는 조치였다. 그동안 국세청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포철 세무조사의 성격이 범상치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국세청은 특히 조사과정에서 박태준 전회장의 명의로 된 부동산은 당시 거주하고 있던 주택(서울 북아현동 소재) 이외에는 거의 없으나 재산관리인등을 통해 서울 요지의 빌딩이나 주택, 서울근교의 임야등과 가족 명의분을 합하면 모두 282억원(공시지가기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여기에 친인척 명의의 주식등을 합하면 개인재산이 총 360억원이라고 밝혀냈다.

그날 발표현장에서 최병윤 대구청장이 기자들에게 말한 내용을 들어보자.

 

- 포철본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없었는가.

“계열사로부터 박전회장에게 자금을 수수한 사실만 확인됐고 본사의 비자금 조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 박씨가 수뢰한 자금을 어디에 썼나.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돈세탁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자금규모가 엄청나 자금 추적에 애로가 많았다. 박씨의 재산을 역추적한 결과 56억원을 발견했을 뿐이다.”

- 탈세등 조세범처벌법이 아니고 수뢰등 특가법으로 고발한 이유는.

“단순히 세금을 포탈한 혐의보다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포철은 정부출자기업이어서 준공무원 신분이므로 특가법을 적용한 것이다.”

- 박씨의 재산내역은.

“공시지가기준으로 360억원 규모에 이르며 1980년도부터 취득한 것이다. 또 많은 재산을 운전사등 타인명의로 분산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 박씨를 겨냥해 포철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데.

“그렇지 않다. 포철에 대한 정기법인세조사과정에서 박씨의 수뢰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

- 다른 법인에 대한 조사의 경우 이번처럼 개인재산추적까지 병행한 일이 있었나.

“포철은 공기업이므로 다른 기업과 같이 취급할 수 없다. 또 다른 기업도 기업주의 횡령사실이 발견되면 기업주에 대한 조사를 병행한다.”

- 황경로 전회장에 대해서도 조사했나.

“확인은 했으나 비리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정명식 회장은 다음날인 임원회의에서 “이번 국세청 조사를 계기로 과거와는 완전히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국세청의 조사결과를 보고 포철 임직원들은 큰 충격과 함께 실망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창사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포철을 건설해 다시 국민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과거 회사가 사리사욕이나 사재의 축적에 악용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정된 소수인원의 일이고 회사전체의 임직원과는 관계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사후소명과 검토 절차를 거쳐 사실이 정확하게 가려 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후속 조사를 통해서도 잘잘못이 더욱 명확하게 가려져서 의당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고 겸손하게 잘못을 시정하도록 합시다.“

정 회장은 잘못을 인정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박태준에 대한 신뢰를 잊지 못하는 장기근속자들은 “정치인 박태준은 실패했지만 기업인 박태준이 창조한 신화는 쉽게 무너질 수 없다”며 당국의 조치를 정치보복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젊은 층들은 “국민기업을 사기업화해 일부 회사 조직을 정치에 동원하고 자회사나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축재하고 정치자금으로 쓴 행위는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가 끝나고 박태준의 수뢰혐의는 검찰로 넘어갔다 .박종철(朴鍾喆) 검찰총장은 6월 3일 국세청이 고발한 박태준 전회장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사건 수사를 대검중수부에서 맡도록 지시했다. 사건수사를 맡은 대검중수부는 7일 박 전회장에게 5억원을 건네준 혐의를 받고 있던 삼정강업 이종렬 회장등 관련업체와 포철비서실 직원등 12명을 소환, 조사했다.

수사착수 엿새째인 9일 검찰은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한 끝에 박씨가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관련기업대표들로부터 26억9,000만원을 뇌물로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6월 16일 검찰은 박태준가 20개 업체로부터 모두 39억700만원의 뇌물을 받고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에따라 박태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등 혐의로 기소 중지하고 지명수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은 포철 거래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황경로 전회장과 유상부 부사장등 2명에 대해 특가법위반(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황경로씨는 3월주총에서 퇴임했으며 유 부사장은 현직임원으로 사건에 연루돼 당일 사표를 냈다.

그후 황경로 전회장과 유상부 전부사장은 각각 집행유예와 보석으로 풀려났다. 뇌물수수에 의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던 유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6월 24일 대검중수부는 박태준을 특가법위반등 혐의로 기소중지하고 황 전회장과 유 전부사장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박태준에게 15억8,000만원을 건네준 조선내화대표 이일화씨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뇌물공여액이 경미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로써 검찰은 박태준 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9월 14일 국세청은 포철세무조사에서 적발한 탈루세액 730억원을 가감없이 확정, 이를 납부토록 고지했다. 이어 국세청은 63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박 전회장이 추징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북아현동 자택과 오피스텔에 대해 압류처분 절차를 밟았다. 박태준은 귀국을 해도 집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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