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⑤…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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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⑤…외풍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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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강화, 인사 외압, 대규모기업집단 포함 검토, 포철 분할론 등…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체제가 출범하면서 포철에는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전례 없이 강하게 다가왔다.

국세청 세무조사반은 박태준의 정치자금의 내역을 완전히 파헤치려는듯 회사는 물론 자회사까지 샅샅히 뒤지고 다녔으며, 내부인사의 전통은 지켜졌으나 상공자원부 등 정부기관과 정치권의 인사개입이 갈수록 심해졌다. 경제기획원은 포철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겠다고 나왔고, 포항-광양제철소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93년 3월 12일 황경로 전회장, 박득표 전사장등 전현직 포철간부 17명에 대해 법무부는 국세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출국규제 대상자 가운데 물러난 임원 외에도 김용운 전무등 현직 간부가 다수 포함됐다. 게다가 시중에는 국세청이 포철 비자금의 정치자금 유용 사실을 포착했다는 설이 난무했다.

4월 26일로 예정된 세무조사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지만 강도를 더해갔다.

포철의 자금관련 담당자들은 “회사의 회계가 전산화돼 있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며 비자금 조성을 부인했으나, 국세청 조사반의 이상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국세청은 기존 조사팀이외에 특수조사반을 투입, 조사인원을 두배로 늘렸으며, 이들은 현직간부의 개인재산은 물론 거양상사, 거양해운 등 자회사, 대림산업, 동아건설, 현대중공업 등 거래회사에 대해서도 거래확인조사를 벌였다. 포철사람들에겐 그것은 회사의 비자금 조성보다는 간부개 개인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국세청이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부수적으로 얻은 소득은 민주당의 이동근(李東根) 의원에 대한 비리혐의 포착. 이 의원은 월간 「옵서버」지를 실질적으로 경영하면서 포철로부터 광고 명목으로 1억7,000여만원을 뜯어낸 사실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 결과 이 의원은 검찰로 넘어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구속됐다.

이 의원에 대한 검찰조사로 당시 홍보를 맡은 이대공 전부사장, 장중웅 상무등이 검찰에 들어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종료예정일인 4월 26일 “포철의 회사규모가 방대하고 업무량이 많아 예정기간내에 법인세 조사를 마칠 수 없어 조사기간을 불가피하게 1개월 연장할 수 밖에 없게 됐다”며 조사기간은 5월말로 연장했다.

그러나 포철맨들의 보다 큰 걱정은 국세청 세무조사와 병행해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이 예전에 비해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점. 실제 그 입김은 과거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3월 15일 이동춘, 조관행, 김진주씨등 3명의 촉탁전무를 선임했을 때 상공자원부는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불쾌해 했다.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다. 박태준이라는 거목이 물러나자 정부기관이 포철에 대해 상전노릇을 톡톡히 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포철의 현직 간부들 사이에서 물러난 박 전회장에 대한 예우문제가 거론됐으나, 서슬퍼런 정부의 시각을 의식, 무산됐다.

상공자원부는 전계묵(全啓黙) 무역조사실장을 포철에 부사장 자리를 줄 것을 요청했으나, 장중웅 상무가 이를 저지했다. 장 상무는 대신 전 실장에게 철강협회 부회장으로 가라고 권유했으나 전 실장은 마다하고 포철자회사에라도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장 상무는 이마저 들어주지 않고, 포철의 내부승진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게다가 반TJ노선을 걸었던 허화평(許和平) 의원(포항 민자)의 친동생인 허화남(許和南)씨가 자회사인 포항코일센터 상무에 선임된 일도 전계묵씨의 건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기류를 형성해 포철로 조여들어왔다.

4월 15일에는 한이헌(韓利憲) 공정거래위원장이 호텔신라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해 포철을 공정거래법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한 위원장의 발언요지.

“포철의 경우 막대한 자산규모와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주 기업이라는 이유로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제외돼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를 받고 있지 않다. 이의 시정을 위해 관계법령의 개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포철은 1989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됐으나 박태준 전회장의 로비등으로 1990년부터 제외됐었다.

한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경제계 일각에서 떠돌고 있는 「포철분할론」과 관련해 포철을 긴장시켰다.

실제 경제기획원은 당시 재계에서 풍문으로만 떠돌던 「포항제철 분할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경제기획원 상공자원부 등 실무부서당국자들은 포철 분리 검토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나 포철이 자체채널을 통해 타진한 결과 정부부처에서 이 안이 검토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포철 분리안은 포철을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로 분리하며 자회사를 독립시킨다는 것. 경제기획원의 심사평가국이 주도하고 상공자원부 기초공업국과 협의단계에 있다는 것.

포철은 당시 “회사가 분리될 경우 국가적 손실이 크다󰡕며 반대, 그 논의는 수면 아래로 들어갔지만 94년초 이 문제는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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