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④…임원 물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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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④…임원 물갈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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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에 걸쳐 박태준 사단으로 분류되는 임원들 퇴진

 

신임경영진을 맞은 포철 임직원들은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총에서 7명의 고위임원명이 물러난데 이어 포철은 물론 자회사, 해외 현지법인등에 산재한 TJ핵심인맥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가해진다는 소식이 전해 졌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갈대와 같은 존재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박 회장에 조금이라도 가까워 지려고 노력했고, 그런 사실을 자랑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과거에 박 회장으로부터 당한 일을 꺼내 화제에 올렸다. 자신은 박태준으로부터 핍박 당한 사람이라고 과감히 주장하고 나섰다. 그래야 신정부 출범과 동시에 부상한 신경영진에 잘 보이는 것이라고 믿었다.

대대적인 인사설은 사실이었다. 조말수 사장이 총대를 메고, 새로 비서업무를 맡은 장중웅 상무가 인사의 윤곽을 그렸다.

주총에 이어 박태준 사단에 대한 제2차 메스가 가해지기 직전이었다.

모기업의 주총에 이어 3월 15~16일 일제히 열린 거양상사등 22개 포철 자회사의 정기주총이 개회식만 한채 무기한 정회에 들어갔다. 임원선임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주선(崔周善) 거양상사 사장, 장경환(莊慶煥) 사장대우회장보좌역은 물론 송기오(宋基五) 철강협회 부회장등 TJ스쿨 멤버들의 자리가 불안해졌다. 장중웅 상무도 이들 고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들은 모두 그의 대선배였기 때문에 그는 고수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신경영진은 정치성향 탈색을 주창, 음으로 양으로 TJ인맥에 대해 사의압력을 가했다. 이에 따라 최주선 거양상사 사장, 장경환 사장대우는 사의를 밝혔고, 송기오 철강협회 부화장도 사의를 결심하고 있었다. 최 사장과 장 사장은 물러난 횡경로 전회장, 박득표 전사장, 정명식 신임회장과 함께 「포철 5인방」으로 일컬어 지는 박태준 인맥.

제2차 칼날은 3월27일 이사회에서였다.

광양제철소에서 열린 이날 이사회에 앞서 자회사의 사장급등 고위층에 대한 퇴임 사실은 조 사장이, 일반임원들은 장 상무가 연락하기로 됐다. 그러나 조 사장은 매섭게 든 매를 막상 때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눈매마냥 차가움이 있는 이면에는 부드러운 웃음마냥 약함이 있었다. 그러나 조 사장은 이사회 전에 퇴임임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그 사실을 알렸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모기업인 포철에서 11명, 자회사에서 78명등 모두 89명의 임원(촉탁이사 포함)을 해임했다. 또 사장급 중 60세 이상의 고령자 및 장기 재임자를 과감히 교체하는 한편 역할이 불분명한 회장과 고문을 해촉했다. 대대적인 물갈이였다.

포철은 “인사기준으로 신정부의 개혁정책에 부응, 임원 및 고급간부 가운데 청렴도, 도덕성, 능력 등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날 해임된 표철 임원은 장경환 사장대우, 백덕현(白德鉉) 성기중(成耆重) 부사장대우 장문현(張文鉉) 전무 박인백(朴仁伯) 상무, 박명하(朴明河) 김달현(金達賢) 이상기(李相琦) 노각래(盧珏來) 이사대우와 이상수(李相秀) 홍건유(洪健裕) 고문등이다.

자회사의 해임간부는 포항강재 이경호(李鎬京) 사장, 경안실업 최정렬(崔正烈) 회장, 포항토일센터 장세훈(張世勳) 사장, 거양상사 최주선(崔周善) 사장, 제철화학 김두하(金斗河) 사장, 삼화화성 이종근(李鍾根) 사장, PEC 오일호(吳一鎬) 사장, 포스데이타 김인기(金仁基) 회장, 거양해운 곽징(郭澄) 회장, 승광 이홍철(李弘澈) 사장 등이다.

포철은 또 예광해, 김경래 촉탁이사를 신규채용했으며 포스데이타의 정태기 전무를 통신담당 부사장으로 승진발령, 이동통신사업부문을 강화했다. 또 자회사에 대한 인사에서 포항강재사장에 신경식 부사장, 포항특수석판 사장에 신성휴 전무, 경안실업 사장에 전순효 거양상사 부사장, 포항코일센터 사장에 박준민 삼성준공업 상무, 거양상사 사장에 김동섭 제철세라믹 전무등을 임명했다.

포철은 이번 인사에서 자회사의 경우도 모회사와 동일하게 내부승진의 원칙을 적용, 24명을 승진시킴으로써 자회사의 책임경영제도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포철이사회는 또 조직개편을 통해 종전의 85개부에서 75개부로, 3백49개실 과에서 3백35개 실 과로 축소했다.

이날의 대규모인사는 주총에 이어 두번째로 박태준 인맥과 포철의 원로를 제거한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의 퇴임으로 포철 외곽의 박태준 인맥은 차단됬으며 포철의 경영 축은 과거의 회장중심에서 사장 중심으로 전환하게 됐다.

이번 인사및 조직 개편은 조말수 사장 주도로 이뤄졌는데, 포철 개혁세력들은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외부의 진주군」이 들어온다”는 위기의식에서 이같은 대수술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3월 31일에는 철강협회부회장인 宋基五씨도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사퇴, 박태준사단에 대한 숙청의 큰 흐름이 일단락된다.

그러나 포철의 이같읁 경영변신 노력은 새정부의 개혁론에 부합하는 것이나 회사 분위가가 박태준씨의 경영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상당한 마찰과 불협화음을 불러일으켰다.

 

3월 12일의 주총과 27일의 이사회를 통해 포철과 자회사의 임원들이 대거 물러나면서 한때 정 회장은 물러난 임원들을 위해 사무실을 차려줄 것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일의 발단은 황경로 전회장 박득표 전사장 등 주총에서 사퇴한 임원들이 3월말 서울의 모 커피숖에서 가진 모임에서였다. 이들은 모임에서 재결속을 다짐했고, 시대조류 속에서 자의반타의반 격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포철을 아끼는 충정을 거듭 확인했으며 정명식-조말수의 현집행부를 외곽에서 지원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들은 새 집행부에 대한 섭섭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포철을 엄호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퇴직임원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 회장은 무척이나 반가원했다. 그래서 정 회장은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51의8 거양빌딩에 사무실을 마련, 원로들이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포철 자회사인 제철학원소유의 이 빌딩에는 「쇳물회」등 기존 OB팀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또 그무렵 포철 사장을 역임한 안병화 한전 사장도 최근 물러나 「TJ사단」이 대거 장외에 포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정 회장의 이같은 지시는 지시로 그쳤다. 박태준사단이 다시 모인다는 데 당시 정세가 그냥 놓아둘리 만무했다. 정 회장은 서슬 퍼렇게 지켜보는 정부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박태준사단」의 사무실 건은 유야무야됐다.

 

박태준사단에 대한 2차수술이 진행된후 얼마 지난 4월의 어느날. 조용경 보좌역은 장중웅 상무가 불러 포철 서울사무소의 임원실을 찾아갔다. 그는 박태준의 정계 일선후퇴로 정치담당 비서 일을 끝내고 1월 7일 신사업본부 보좌역으로 발령을 받아 포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박태준이 포철에서 물러나고 신경영진이 등장하자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물론 포철에서 돈을 대는 유학이었다.

장 상무가 입을 열었다.

“조형, 박 회장과의 관계를 끊으시오.”

“끊을 수 없습니다.”

조 보좌역은 당시 박태준을 만나러 일본을 왕래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시각이 안좋습니다.”

“그래도 의리를 저버릴수 없습니다.”

“그러면 포철에서 떠나시오.”

“떠나라면 떠나겠습니다.”

조용경씨는 장 상무방을 나와 사장실을 향했다. 조말수 사장을 만나 담판을 벌였다.

“사장님, 모시던 박 회장을 그렇게 저버릴수 있습니까. 이는 배신입니다.”

“배신이라도 하는 수 없소.”

“그동안 쌓은 정의라도 있지 않습니까.”

“박 회장은 나를 버렸지 않소.”

“싱가포르로 보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렇소.”

“사장님도 비서업무를 맡아본 일이 있을텐데, 임원인사에서 불만이 생겨도 불만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박 회장을 얼마나 모셨는데, 그럴수가 있단 말이오.”

조 사장은 박 회장을 수행하던 도중 어린 아들이 포항제철소에 있는 연못에 익사해도 달려가지 않았을 정도로 비서업무에, 아니 박태준에 충실했다.

“인간이면 의리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리는 일본의 야쿠자들이나 지키는 것이오. 세상이 바뀌었지 않소. 개혁의 시대에는 개혁에 맞는 의리가 필요하오.”

조용경씨는 그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포철 서울사무소를 나왔다.

 

포철 임원들에 대한 3차 물갈이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끝난후인 7월 10일 단행된다.

3차 인사는 표면적으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종결에 따른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부 고의층에 대한 자숙의 의미, 즉 그동안 박태준의 정치자금을 모집하고 탈세를 한데 대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3차 인사도 조 사장이 주도했으며, 정 회장은 조 사장이 올린 인사안을 받아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정 회장의 생각은 그동안에도 너무나 많은 임원을 퇴임시켰는데, 또 많은 사람을 내보낼수 없다는 것이었다.

3차 물갈이에서는 고학봉 부사장등 7명의 임원을 퇴진시켰다. 퇴진임원은 고 부사장 이외에 한영수 감사(부사장급), 김윤현, 박문수 상무, 김광남, 김문규, 최상준 촉탁이사등 7명이다.

포철은 또 김권식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고 엄하용, 이승관, 이선종씨등 3명을 촉탁이사로 신규선임했다.

또 김종진 광양제철소장(부사장)에게 기술을 담당하는 총괄업무를 부여하는 한편 손근석 부사장과 함께 부사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아울러 홍상복 전무를 포항제철소장에, 김권식 전무를 광양제철소장에 각각 임명하고, 이춘호 포항제철소장을 생산기술본부장에 임명했다.

포철은 3차인사의 명분으로 ①감량경영에 따른 임원의 슬림화 ②고령간부 용퇴를 통한 신진대사의 활성화 ③부사장의 스태프화등을 들었다. 특히 퇴진임원들의 세무조사관련 비리혐의는 없지만 후진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물러난 것임을 강조했다.

3차례에 걸친 대수술로 박태준 회장 시절 7~8명이던 부사장의 수가 손근석 김종진 신창식등 3명으로 대폭 줄게 됐다.

고학봉씨는 모기업인 포항제철부사장과 미국현지법인인 UPI부사장을 겸임했으나 당시 인사로 두 직책 모두 잃게 됐다. 그러나 미국정부가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상계관세무혐의 판정으로 내리자 무혐의판정을 위해 노력했던 공로를 인정, UPI부사장직은 다시 맡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 부사장은 94년초 정 회장과 조 사장의 경영갈등이 생겼을때 정 회장의 편에 섰다)

조 사장은 7월 인사후 󰡔더 이상 대폭적인 간부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세차례에 걸친 숙청작업의 종료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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