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반도체·바이오까지 바이든의 뒤통수…"尹 정부 큰 그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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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반도체·바이오까지 바이든의 뒤통수…"尹 정부 큰 그림 필요"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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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 자국 우선주의 무역 기조 강화
반도체·바이오 등 中 견제 명분 속 자국 생산 가속
국내 반도체·바이오 기업 등 불안감 커져
업계 "정부 차원의 큰 그림 필요하다" 지적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자국 중심주의가 심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에 이어 반도체와 바이오 등 한국의 주요 산업과 관련해 표리부동한 행보를 이어가며 '뒤통수'라는 뒷말이 새어 나오고 있다. 동시 우리 정부의 대응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국내 생산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를 제외한데 이어 같은 달 반도체 과학법과 최첨단 반도체 수출금지령을 발효하며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어 지난달에는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으로 자국 내  바이오 제조 역량 강화에 나섰고 같은 달 외국인의 대미 투자 행정명령을 통해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M&A) 투자 심의를 강화했다. 일련의 행보를 놓고 보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욱 강화되는 형국이어서 한국 기업의 피해가 우려 된다. 

미국 정부의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조치에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년 유예했지만…커지는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 제품은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현지시각) 로이터 등 외신은 최근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런 방침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 견제를 이유로 미국 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중국 내 생산시설이 중국 기업 소유인 경우 이른바 '거부 추정 원칙'을 적용해 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 건별로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은 1년 동안 건별 허가를 받지 않고도 장비를 수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 아닌 미래 사업과 관련해서 장비 수입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아직 구체적인 협의 내용이 없어 혼선이 예상된다. 

국내 반도체 업체의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첨단 장비도 들여 올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데다 향후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이 한국 기업의 중국 내 공정 기술을 사실상 결정하는 수준의 조치"라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자국 내 생산시설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 4일 향후 20년 동안 뉴욕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첨단 메모리반도체 공급을 위한 메가팹(fab)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보다 앞서 마이크론은 150억 달러를 들여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을 증축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인텔 역시 2025년까지 2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아이다호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지난달 착공식을 가졌다. 이런 행보들 때문에 일각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조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8년 3월 중국 시안공장의 새 메모리 제2라인 기공식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칩4 동맹 본격화…中 압박에 삼성전자·SK 속앓이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의 첫 본회의가 연내 열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 중국이 보복 조치를 단행한다면 우리 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 대만이 밀착 행보를 갖는 만큼 한국의 '칩4' 불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이 구상한 칩4는 미국이 원천기술,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일본은 소재와 장비 분야를 맡아 전략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기차와 AI(인공지능) 같은 미래 산업은 물론 첨단무기와 우주항공 등 안보와 직결된 방산 부문 등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깔려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 편에서 보면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절반을 중국이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전체 메모리 반도체 수출(690억 달러)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에 달한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4월 중국 우시공장 생산라인 확장 준공식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SK하이닉스 

중국은 중요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장쑤성 우시에 D램 공장을 두고 있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 전체 낸드 생산의 40%를 차지하며 우시 공장은 SK하이닉스의 D램 전체 생산량을 절반 가량을 책임진다. 

중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지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즈는 연이어 한국의 칩4 참여를 견제하는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대변인 브리핑 등을 통해 한국 참여를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주한 중국대사는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인 무소속 양항자 의원을 찾아 한국의 칩4 참여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논의 중인 (칩4 동맹 참여) 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추의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28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모더나사(社)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실은 트럭이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빨간불 켜진 바이오산업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와 전기차에 이어 바이오산업까지 자국 내 생산을 앞세우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각)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골자로 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미국에서 발명된 모든 것을 미국에서 만들 수 있게 한다는 게 골자다. 중국 견제가 표면적 이유지만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지난해 5월 '미국=기술, 한국=생산'이라는 분업 체계에 합의하며 한미 정상이 '백신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은 지 1년여 만에 기술과 생산 모두 미국이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어서 국내 위탁생산(CMO) 사업 등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 제약사와 CMO 계약을 체결해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느 모더나 백신을 위탁 생산 중이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매출에서 위탁생산 비중이 높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걱정이 깊다. 지난해 매출 1조5680억원 중 위탁생산으로 거둔 매출은 1조4420억원으로 무려 92%를 차지한다.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난해 매출 9290억 원 중 위탁생산 매출은 28% 정도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 내 생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모든 물량을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해 미국에서 진행되는 논의에서 우리의 활동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대응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각각 정부 대처 "큰 그림 필요해"

대(對) 중국 견제라는 명분 아래 일사분란하게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펼친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제각각이다. 반도체 육성 방안으로 인력 양성 카드를 꺼냈고, 현대차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인센티브를 못 받을 상황에 처하자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날아갔다. 또 미국의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와 관련해선 "한미 간 채널을 통해 협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국내 제조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정부의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컨트롤 타워 부재도 문제다. 용산 대통령실, 총리실과 국무조정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안보와 관련된 정부 부처의 합치된 목소리와 대응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퍼스트 기조는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중간선거 체제로 돌입한 미 의회는 중간선거(11월8일) 이후에나 의회 표결 등 제기능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 의회가 구성되는 내년 1월 전까지 의회 마지막 세션(11월 중순부터 12월 크리스마스 휴가 시작 전까지)은 이른바 '레임덕 세션'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은 선택의 연속이 될 전망이다. 당장 반도체 과학법의 '가드레인 조항'이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 조항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때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10년 간 중국 공장에 첨단 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은 내년 2월전까지 기업들로부터 보조금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공장 증설에 나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국 투자 금지 조항에 서명할지 아니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포기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감정적 대응 보다 정부의 차원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 현지서 가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시각에 대해 "도움이 안 되는 감정적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할 일은 이들이 이럴 수 밖에 없다는 사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법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보호무역으로 간다는 말에 100% 찬성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중요한 건 안보 문제"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배터리나 바이오, 반도체 등 부분에서 다른 곳보다 디커플링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보다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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