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네이버가 국내 최대 IT기업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동시에 네이버는 삼성전자, 카카오 등과 함께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TOP 3 안에 드는 인기 브랜드다. 그러므로 네이버의 전략적 행보에 대해 IT업계 이외 관련 전문가, 취업 준비생들은 늘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네이버의 인수합병 소식에 다수의 언론 역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기업의 인수합병(M&A)은 일반적으로 주가 상승의 호재로 작용한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투자자 및 외부기관에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하게 M&A 카드를 꺼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네이버 역시 지난 4일 창사 이래 최대인 2조 3441억원을 투입, 미국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인 포쉬마크(POSHMARK)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M&A를 위한 카드, CEO 최수연과 CFO 김남선
문제는 네이버가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인 포쉬마크를 통해 MZ세대를 공략하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선언한 이후 주가는 3일 내내 16%가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네이버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인수 이후 3일 연속 52주 신저가 행진을 보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네이버와 시장 사이엔 꽤 큰 간극이 존재했다.
네이버는 카카오와 달리 M&A에 그리 적극적인 기업은 아니었다. 사업의 변곡점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을 빠르게 인수하면서 게임, 콘텐츠, 모빌리티, 파이낸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침투한 카카오의 M&A 전략과 달리 네이버는 항상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네이버의 전임 CEO였던 한성숙 대표 역시 M&A보다는 유통과 온라인 쇼핑에 강점을 둔 전문가였다.
정중동의 행보를 보인 네이버가 쇼핑에서 M&A로 탈바꿈하겠다는 시그널은 지난해 11월 감지되었다. 이른바 81년생 CEO로 불린 최수연 신임 대표의 등장이다. 동시에 네이버의 재무전략을 총괄하는 CFO 역시 78년생 김남선(최고재무책임자)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오너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는 CEO와 CFO를 교체, 네이버의 전략 변화를 알렸다.
최수연 CEO와 김남선 CFO의 공통점은 서울대 공대 출신의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라는데 있다. IT 및 정교한 법적 전문성을 토대로 미국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축적한 두 임원의 등장이 상징하는 건 북미시장을 향한 M&A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네이버는 지난해 1월에도 당시 최대였던 6600억을 투입, 캐나다의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했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 시장은 왜 저평가할까
네이버가 인수한 포쉬마크는 북미 최대의 개인간 거래(C2C) 플랫폼이다. 미국판 당근마켓이라고 불린 포쉬마크의 사용자 80%가 MZ세대라는 점에서 네이버가 이번 인수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 편중되었던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이 북미시장에 진출하려면 패션과 콘텐츠는 필수이다. 왓패드와 포쉬마크는 네이버의 전략적 포석이다.
포쉬마크 인수를 기쁘게 전달한 네이버의 경영진과 달리 인수소식이 알려진 당일 네이버 주가는 8%나 하락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는데 너무 비싼 금액(16억 달러)인 2조 3441억원이나 투입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외부경쟁자를 따돌릴 암묵지나 특별한 노하우가 많지 않다는 점 등은 리스크로 손꼽힌다.
아쉬운 건, IT기업인 네이버가 언젠가부터 검색에서 쇼핑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싸게 사들였어도 해당 자금이 혁신기업이나 기술에 투자되었다면 비난할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2조 3441억원은 네이버의 현재 시가총액 8%에 육박한다. 시가총액 8%의 자금을 M&A에 투입한 네이버의 당일 주가가 8% 하락한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 '오너' 이해진의 의도는
이번 인수로 인해 최수연 대표는 언론과 네티즌의 뭇매를 온라인 공간에서 맞아야 했다. 최수연 대표와 김남선 재무책임자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입장일 것이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는 사실상 오너 이해진 GIO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전문경영인이 아무리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어도 창업자의 뜻과 방향성을 거스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달러가치가 폭등하는 시점에 20% 남짓한 중고거래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에 2.3조원을 투입한 이번 M&A는 현재까진 승자의 저주로 보인다. 포쉬마크 인수가 신의 한 수라는 점을 입증하려면 패션 플랫폼이라는 점 외에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그 미래전략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북미 시장에 대한 탐험을 위해 2.3조원이 넘는 거액을 쏟는 건 명분이 약하다.
물론 네이버는 보유한 검색 및 AI 기술, 라이브 커머스 노하우를 포쉬마크의 글로벌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북미시장의 MZ세대에게 C2C 쇼핑, 웹툰, K-POP 콘텐츠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플랫폼 흐름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사용자 경험(New User Experience)을 어떤 방법과 어떤 프로세스로 고객에게 제공하느냐가 네이버의 넥스트 과제이다.
네이버는 완제품 기업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다. 플랫폼 기업은 늘 고객들을 한 곳에 모아놓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 카카오가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사이 네이버는 플랫폼 기업의 정점을 위해 단계를 밟고 있는 느낌이다. 모빌리티가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쟁을 흔들 사업 분야로 지적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그래서 틀렸다.
네이버는 서치플랫폼과 이커머스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플랫폼 경쟁의 끝엔 패션과 스토리가 있다. 정용진 부회장의 신세계가 패션 플랫폼 인수를 강조하는 것도, 카카오와 네이버가 장기적인 수익과 고객 확보를 위해 패션과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M&A는 과감한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영역 확보라고 봐야 한다.
네이버에게 미래 혁신을 기대한 이들은 이번 M&A를 승자의 저주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글로벌 영역의 교두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이번 M&A를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직까지 네이버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상황이다.
네이버의 오너 이해진에게 더 급한 건 안정적인 글로벌 영역 확보에 있다. 그렇기에 네이버는 빅테크보다는 플랫폼을 선택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