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에 함부로 숟가락 얹지마라...누군가에겐 소중한 밥줄이다
상태바
[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에 함부로 숟가락 얹지마라...누군가에겐 소중한 밥줄이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0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코미디 영화를 감상한 정치인의 후기가 더 코미디 같다면 그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 덕담을 나눠도 모자랄 판에 자기의 정치적 위상을 돋보이려 했다면 말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그랬다. 

정직한(?) 김진태 강원도지사

지난 9월 26일에 올라온 한 트위터 글이 화제였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영화 <정직한 후보 2> 시사회에 다녀온 감상평이었다.

"영화 '정직한 후보2'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라미란씨가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강원도지사가 돼서 겪는 스토린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더라고요ㅋ." 

김진태 지사는 강원도와 도지사를 소재로 한 <정직한 후보 2>를 자기 관점에서 해석했다. 특히 주인공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을 자기 이야기와 같다고 주장했다. 물론 덕담이었겠고 농담이었겠지만.

<정직한 후보2>는 1편과 마찬가지로 정치권을 풍자하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속 정치인 주상숙(라미란 분)이 거짓말을 못 하는 ‘진실의 입’이라는 설정은 현실 속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장치다. 

1편이 선거판의 아수라를 그렸다면 2편은 이권 싸움으로 진창이 된 지자체를 그렸다. 영화는 강원도지사가 된 후 초심을 잃은 주상숙이 결국 도민과 정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어쩌면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에 감정 이입했을 수도 있다. 강원도와 도지사가 영화의 주요 소재였으니까. 그런데 김진태 지사의 SNS 때문에 <정직한 후보2>는 역풍을 맞은 듯하다. 영화 개봉 얼마 후 어떤 트위터 글이 또 화제가 되었다. 

"지사님... 저 이 영화 배급 담당자인데요. 일단 강원도청 올로케도 아니고요. 이 트윗 덕분에 평점 테러 당하고 있어서 죽을 맛입니다. 전임 도지사님 때 찍은 영화인데 왜 숟가락을 올리실까요. 살려주세요.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에 목숨 걸고 일했고 흥행 결과에 밥줄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ㅠ.ㅠ"

<정직한 후보2>의 배급 담당자라고 주장하는 이의 트위터였다. 이 글은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회가 리트윗됐고, 김 지사를 질타하는 글이 쏟아졌다. 다만 논란이 일자 최초 글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이 트위터 글이 사실이라면 오랜 시간 공들이고 큰돈 들여 만든 영화가 정치인의 발언 때문에 평점 테러를 받게 되었다. 그 발언의 주인공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신규 개봉영화가 언론에 주목받는 점을 이용해 영화를 사랑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원도지사로서 강원도의 국제영화제를 폐지한 최종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강원도의 영화제들

강원도에는 규모가 작지만 의미는 전혀 작지 않은 국제영화제 두 개가 있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와 강릉국제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평창동계올림픽 후속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시작되었다. 올해 6월에는 총 28개국 88편의 작품을 상영하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정상화를 선언했다. 성과도 좋아 영화제에서 발굴한 영화가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강릉국제영화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릉에 호텔과 관광단지 등 하드웨어는 구축됐지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소프트웨어는 없었던 고민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국제영화제였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2019년에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강원도는 지난 8월 23일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측에 예산 지원 중단을 통보했다. 영화제 측은 8월 25일 보도자료에서 이 사실을 밝혔고 이후 법인 청산 등 영화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앞서 강릉국제영화제도 중단되었다. 지난 7월 강릉시가 영화제 예산을 출산장려정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1월에 4회 영화제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개최 4개월을 앞두고 지원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함께 폐지된 것에 보수 정권 인사들의 전 정권 흔적 지우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특히,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임 도지사가 시작한 평창평화포럼과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콕 집어 “타당성 없는 보조금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평창평화포럼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이고,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문성근 배우가 이사장이다. 두 사람의 이력을 보면 보수 정권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정직한 후보2'
영화 '정직한 후보2'

예산 결정권자와 문화 정책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계는 강원도의 두 영화제 폐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단체장이 바뀌자마자 정책과 그 방향이 유예기간도 없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자치단체장으로 교체되면 이전 단체장이 시작한 사업이 폐지되는 선례로 남을 수도 있어서 우려를 산다. 

또한, 예산을 편성하고 결정하는 중앙 부처나 자치단체가 문화계 지원의 돈줄을 쥐고 흔들어 문화인들의 창작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어느 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을 수상한 고등학생의 작품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경고한 것을 보면 그 우려가 더 커진다. 그림 소재와 주제를 문제 삼았고 후원 명칭 철회도 언급했다. 블랙리스트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영화는 숟가락을 얹을만한 밥상이고,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밥줄이다. 그런데, 정치인에게 영화는 자기의 권력을 확인하는 수단인 듯도 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