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연대기 II] '괴수영화'와 '드래곤볼'서 영감 얻은 '포켓몬스터'의 탄생 (4)
상태바
[콘텐츠연대기 II] '괴수영화'와 '드래곤볼'서 영감 얻은 '포켓몬스터'의 탄생 (4)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2.10.08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현 지구 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미디어 프랜차이즈 가운데 단일 프랜차이즈로는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포켓 몬스터’.

이 포켓몬을 만든 타지리 사토시는 ‘덕후’ 같은 사람이었다. 오타쿠 (일본에서 특정 분야에 몰입하고 빠져든 사람을 일컫는 말, 한국에서는 원어를 변용하여 오덕 또는 덕후라고 부른다) 들을 한 때 세간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이들 오타쿠들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인재들이다.

오타쿠들이 역사를 만든다

타지리 사토시는 누가 봐도 오타쿠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프랜차이즈를 만든 사람을 오타쿠라 칭하기는 그렇지만, 1990년 즈음의 타지리는 지금 말하는 오타쿠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어렸을 때는 ‘곤충 박사’로 단지 곤충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곤충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수집하고 본인만의 사육 방식을 통해 키우고 성장시켰다.

열정을 몰입으로 승화시키는 스타일이었다. 도시화로 인한 자연 파괴로 더 이상 곤충을 보기 힘들자 취미를 비디오 게임으로 바꾼 이후에도 그의 몰입은 여전했다. 비디오 게임에 빠지며 단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원리와 개선 방식을 고민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공략집을 만드는 것 역시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고질라 vs 콩’(2021)의 한 장면. 괴수 영화를 보고 자란 90년대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이런 이미지와도 같이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긴다는 주제는 언제나 흥하는 이야기거리였고, 이러한 아이들의 시선은 포켓 몬스터의 기획에 큰 영감을 준다. 사진=워너 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처
영화 ‘고질라 vs 콩’(2021)의 한 장면. 괴수 영화를 보고 자란 90년대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이런 이미지와도 같이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긴다는 주제는 언제나 흥하는 이야기거리였고, 이러한 아이들의 시선은 포켓 몬스터의 기획에 큰 영감을 준다. 사진=워너 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처

1989년 타지리 사토시가 ‘오타쿠적 근성’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며 첫 작품 ‘퀸티(Quinty)’를 출시한 이후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의 길에 접어든 게임 프리크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인디 게임 개발사로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퀸티의 반응이 좋긴 했지만 비디오 게임 시장이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었던 90년대 초반 상황이라 게임 프리크는 오리지널 게임보다는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나 와리오 같은 유명한 캐릭터들이 나오는 이른바 라이선스 작품들에 주력을 했다. 게임 프리크는 1996년 포켓 몬스터를 출시하기 전까지 약6년 동안 여섯 작품을 출시했는데 매년 한 작품 씩 개발한 셈이다. 

열정을 몰입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타지리가 이 시간 동안 결국 잘 만들어봐야 ‘남의 작품’인 라이선스 게임들에 만족 할리는 없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개발 난이도가 낮은 퍼즐이나 플랫포머 게임 (발판 등을 타고 횡스크롤로 움직이는 방식을 가진 게임, 슈퍼 마리오 등이 대표적)을 개발하며 개발 노하우를 쌓았고 해를 거듭해갈수록 그의 아이디어는 영글어 가기 시작한다.

1989년 게임보이의 런칭과 함께 출시된 게임 ‘테트리스’ 게임보이를 상징하는 게임이라 할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9년 게임보이의 런칭과 함께 출시된 게임 ‘테트리스’ 게임보이를 상징하는 게임이라 할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포켓몬에 영감을 준 것들

1989년 닌텐도가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출시하자 게임 산업의 흐름은 크게 바뀌었다. 오락실이라 불리던 전용 게임장에서 패미콤을 통해 가정의 거실로 옮겨 간 게임 산업은 게임 보이라는 휴대용 게임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동네 골목으로 학교 교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게임보이에는 전용 케이블로 게임보이를 연결해 통신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이 기능으로 인해 가장 인기를 끈 게임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게임인 ‘테트리스’였다. 타지리는 이 광경에서 훗날 세계 최대의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될 게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영감을 얻게 된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북미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출시된 포켓몬스터 역시 드래곤볼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사진=슈에이샤 홈페이지 캡처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북미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출시된 포켓몬스터 역시 드래곤볼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사진=슈에이샤 홈페이지 캡처

1999년 타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타지리는 아이들이 케이블을 연결해 테트리스를 즐기는 것을 보고 케이블 속을 움직이는 애벌레 같은 생명체를 연상했다고 밝혔다. 이 광경은 당시 새로운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타지리에게 커다란 영감의 불씨를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곤충 박사로 불리며 수많은 곤충을 잡으러 다녔던 경험과 기억이 연결되며 도시화로 인해 더 이상 그런 경험을 얻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통해서나마 자신이 가졌던 즐거운 경험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디어의 불씨는 점점 활활 타올랐다. 단순한 곤충이나 올챙이나 송사리 같은 작은 어류를 벗어나 그의 어린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고질라’같은 괴수 영화나 ‘울트라맨’같은 거대 히어로물 같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하나씩 자신의 아이디어에 결합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인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린 만화 ‘드래곤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만화 드래곤볼에서 등장인물들이 작은 캡슐에 집이나 자동차, 각종 생활 용품을 들고 다니는 것에 착안해 어떤 크기라도 들어가는 작은 캡슐 모양의 아이템을 생각한다.

이른바 포켓 몬스터의 기본 아이템인 ‘몬스터 볼’의 아이디어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퀸티’ 출시 다음해인 1990년에 만들어진 포켓 몬스터의 초안이라 할 수 있는 ‘캡슐 몬스터’였다. (계속)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