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블 붕괴④…비이성적 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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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블 붕괴④…비이성적 과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31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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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거품 꺼지면서 미국 경제, 10년만에 침체 맞아

 

1996년 12월 5일 저녁,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한 저녁 모임에 참석,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가 뉴욕증시 거품론을 제기하자, 다음날 도쿄 증시를 시작으로, 홍콩ㆍ유럽을 거쳐 뉴욕 증시가 폭락했다. 그날 유일하게 상승한 증권시장이 바로 한국 증시였다.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 증시는 국제시장에서 섬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당시 외국은행으로부터 차관 도입은 허용했지만, 증권시장의 문호는 닫아놓고 있었다. 과천의 경제관료들은 직접금융시장을 묶어놓으면 외국자본의 지배를 당하지 않을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지만, 은행의 단기차관이 얼마인지 통계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증시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고,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외국인 지분율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1996년 13%에서 2001년에 36.6%로 급상승했다.

그린스펀의 ‘비이성적 과열’ 경고가 나왔을 때 다우존스 지수는 6,400 포인트였고, S&P 500 지수의 PER(주가수익률)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10월 수준이었다. 그러나 뉴욕증시는 그린스펀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후 5년동안 상승했다. 그러나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 도래를 축하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뉴욕증시는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돌입했다. 나스닥 지수는 정점에서 4분의1 수준까지 떨어졌고, 다우존스 지수가 그린스펀의 경고시점인 6,000 포인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래픽=김인영

 

미국의 경기 사이클을 공식적으로 판단, 선언하는 기구는 동부 학술도시 보스턴 인근 케임브리지에 소재하고 있는 전미경제조사국(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산하 ‘경기사이클 주기 결정위원회’다. 민간학술단체인 이 위원회는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위원회는 2001년 가을에 첫모임을 갖고, 미국 경제가 2001년 3월부터 경기침체(recession)에 돌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선언으로 미국 경제는 1991년 3월에 시작된 경기확장기를 정확하게 10년만에 끝내고, 2차 대전이후 10번째 경기침체를 맞았다. NBER은 2001년 3월에 막을 내린 호황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다고 덧붙였다.

6명의 경제학자들은 2001년 3월부터 미국 경제가 침체에 돌입했으며, “(초기에는) 침체가 너무 완만해 판별하기 어려웠지만, 테러 사건을 계기로 경기 위축이 심화되고, 본격적인 침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NBER은 미국에서 경기 사이클에 관한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다. 2001년 미국의 경기침체를 선언할 때 NBER 멤버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로버트 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FRB 이사로 옮겨간 벤 버냉키 프린스턴대 교수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 ▲빅터 자노위츠 시카고대 교수등 미국 경제학계에서 내로라는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

미국 정부나 뉴욕 월가 이코노미스트, 미국 언론들도 NBER이 공식적으로 호황, 불황을 선언할때까지 ‘경기침체(rece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관례로 한다.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NBER이 공식 평가를 내리기 전에는 ‘경기침체의 가능성’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NBER의 경기사이클 주기결정위원회는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추정 통계나 수정 가능성이 있는 통계가 최종 통계로 굳어질때까지 몇 달이건 기다리고, 월가 이코노미스트처럼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위원회는 지난 1990년 10월~91 3월까지의 경기침체는 침체가 끝나고 막 성장세로 돌아서는 1991년 4월 25일에야 지난 6개월간이 경기침체기였다고 선언할 정도로 신중한 학술단체다.

미국에서는 통상 2개 분기(6개월) 이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나올 때를 경기침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1993년 1ㆍ4분기의 3개월동안 - 0.1%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경기침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1980년 경기침체 시에는 이 위원회는 침체가 끝나기 전에 경기침체를 선언한 적이 있다. 당시 연방정부 통계는 2ㆍ4 분기에 - 9.4%를 기록했을 뿐 1ㆍ4 분기와 3ㆍ4 분기는 플러스 성장으로 나왔다. 정부 통계가 맞다면 이 위원회는 잘못 판단한 것이 된다. 이 위원회의 분석이 옳았다는 것은 16년뒤인 1996년에야 검증됐는데, 그때에 연방정부는 1880년 3분기의 성장률을 -0.6%로 수정했다.

이 위원회 소속 6명의 학자들은 최근 이 메일을 교환, 최신 경제통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지만, 경기 침체 또는 경기 확장을 선언할 때 이외에는 만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2001년 경기침체 때에도 NBER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미국 상무부는 2002년 7월 31일에 한해전인 2001년 GDP 성장률을 수정하면서, 미국 경제가 지난해 1ㆍ4분기부터 3ㆍ4분기까지 3개 분기에 걸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상무부의 통계는 2001년 3ㆍ4 분기의 한 분기에만 마이너스 성장(-1.3%)을 했을뿐 나머지 3개 분기에는 플러스 성장을 했다고 밝혔었다. 따라서 1개 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침체라고 할수 있느냐는 반론이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미 상무부의 수정통계가 나오기 이전에 뉴욕 월가의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경기침체’라며, NBER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었다. 폴 오닐 미 재무부 장관도 한 TV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한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침체했다고 할수 없다”며 주장했고,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경기침체(rece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하강국면’, ‘경제둔화’, ‘경기사이클의 위축국면’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선택했었다. 결국 미 상무부의 수정 통계가 나오면서 MBER의 권위가 회복된 것이다.

 

경기침체에서 탈출한 2002년 미국 경제는 완만한 회복의 길을 걸었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회복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2002년 미국의 분기 성장률은 ▲1ㆍ4분기 5.0% ▲2ㆍ4분기 1.3% ▲3ㆍ4분기 4.0% ▲4ㆍ4분기 0.6%로 장난감 요요(yo-yo)처럼 들쭉날쭉하게 움직였다. 어느 경제전문가는 미국의 경제회복을 ‘요요 회복’이라고 칭했다. 이는 소비 부문에서 저금리를 활용한 무이자 할부판매, 주택금융 재융자등의 혜택으로 인위적인 수요창출이 이뤄졌으나 곧이어 소비에 피로감이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또 기업 부문에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로 재고를 늘렸다가 회복이 힘들다고 판단, 재고를 줄이는 과정을 반복했다.

메릴린치 증권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제럴드 코언은 현재의 미국 경제를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의 뒤뚱거림’으로 비유했다. 일어서려다 쓰러지고, 또 일어나는 미국 경제 회복의 걸음마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FRB가 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고, 부시 행정부가 과감하게 세금을 깎아줘 그 효과가 나타날 즈음에 높은 성장을 하지만, 그 약발이 빠지고, 소비가 피로감에 빠지면 곧 1% 대의 저성장으로 되돌아갔다. 10년 호황의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나는 후유증이 3년째 지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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