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법정 드라마와 여행 예능 '봇물'...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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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법정 드라마와 여행 예능 '봇물'...이대로 좋은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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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같은 소재의 방송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때가 있다. 코로나19가 발병한 초기에 요트 여행을 다룬 프로그램이 여럿 방영되었고 <골때리는 그녀들>이 인기를 얻자 한동안 여성 운동 예능 프로그램 제작 붐이 일었다. 

이번 가을에도 같은 소재의 방송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듯싶다. 특히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과 여행을 그리는 예능 프로그램이 유독 많이 보인다.

봇물 터진 법정물 드라마 

드라마를 보려고 TV를 켜면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들은 수임료로 천원만 받거나, 카페에서 법률을 상담해주는 인간적인 모습의 변호사로 나온다. 때로는 승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9월에만 6편의 드라마에서 변호사가 주인공이었다.

지상파 드라마에는 괴짜 변호사들이 나온다.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는 배우 남궁민이 단돈 천 원만 받고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로 나온다. 불법 대부업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소매치기로 누명을 쓴 사람, 혹은 주민에게 갑질을 당한 경비원 등 주로 취약계층을 변호한다. 그가 수임료로 받는 천원은 정식으로 변호를 맡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KBS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검사 출신 건물주와 정의감이 투철한 변호사가 나온다. 변호사로 분한 배우 이세영은 카페를 열어 주민들에게 각종 법률을 상담해준다. 서민들에게는 문턱이 높을 수도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동네 카페에 연 것이다.

지상파의 두 드라마는 모두 평범하지 않은 변호사를 그린다. 하지만 두 변호사 모두 인간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법정물의 딱딱함을 따뜻한 에피소드로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 속에 담긴 법률 상식 또한 풍성하다. 그런데 지난 9월 방영을 마친 MBS의 <빅마우스>나 종편과 케이블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는 법정물 클리셰가 가득하다.

JTBC 드라마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이 특히 그렇다. 이 드라마는 대법관부터 로스쿨 교수, 검사, 변호사까지 집안사람 모두가 법조계에 발 담그고 있는 특권층이 등장해 그들의 위선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법조 카르텔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현직 변호사 여러 명이 기획에 참여했다고 한다. 

tvN 드라마 <블라인드>에는 배우 하석진이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판사로 나온다. 그는 대법관 아버지를 둔 금수저지만 괘씸죄에 걸려 좌천된다. 전임 대법원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억울한 피해자가 된 평범한 시민들과 불편한 진실에 눈감은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범죄물이며 그들을 대하는 법조인을 그리는 법정물이기도 하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도 법정물은 인기 콘텐츠다. 그중에서도 ‘디즈니+’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새롭게 편성했다. 이 드라마는 독종 변호사로 분한 정려원과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별종 변호사로 분한 이규형이 함께 일하며 사건 속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선악 구도가 명확한 법정물은 대중이 몰입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를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시에 여러 법정물이 편성된 상황은 대중에게 피로감을 줄 우려도 있다.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사진제공=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사진제공=SBS

가을이라 여행을 떠나는 걸까

TV에는 연예인들이 여행을 즐기는 갖가지 모습이 등장한다. 유명 배우들이 유럽에 가서는 호텔 대신 텐트에서 자고 레스토랑 대신 장을 봐 직접 밥을 지어서 먹는다. 혹은 청춘스타들이 MT 같은 여행을 즐긴다.

tvN의 <텐트 밖 유럽>은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 등 남자 배우 4명이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보여준 기존의 유럽 여행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배낭여행을 하며 숙식도 캠프장에서 해결했다. 

이들이 보여준 에피소드도 소소하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거나, 혹은 장을 보고 요리한다거나, 배낭 메고 길을 걷는다거나. 일상을 떠난 네 남자의 이런 모습에 힐링을 얻었다는 SNS 반응이 많았다. 지난 28일에는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그렸다.

티빙의 <청춘MT>도 인기다. 박보검, 김유정, 박서준, 안보현, 지창욱, 황인협 등 12명이 연합 MT를 떠난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특히 해외 팬덤을 이끌고 있는 청춘스타들이 출연해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이 프로그램은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 서비스되는 글로벌 OTT 뷰(Viu)에서도 공개돼 전체 콘텐츠 순위 상위권에 안착했고, 미주, 유럽 오세아니아 등에서 서비스되는 OTT인 라쿠텐 비키(Rakuten Viki)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해외에서의 이러한 인기는 출연진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모습과 일행 간의 관계가 색다른 재미 포인트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드라마의 관심으로도 연결되고 ‘K-예능’의 유행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평이 있다.

이외에도 이규형, 이상이, 이유영, 임지연, 차서원, 엑소 수호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배우들의 호주 여행 모습을 담은 SBS <딱 한번 간다면>이 10월 첫 방송을 예고했다. 그리고 주지훈, 하정우, 샤이니 민호, 여진구 등이 함께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프로그램도 OTT 등에서 편성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아무튼 한동안 유명 연예인들 여럿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기 스타들이 즐기는 해외여행은 감염병 시국의 끝을 상상하게 하는 한편 자칫하면 그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경계를 짓게 되는 우려도 있다.

여행 예능 '텐트 밖은 유럽'. 사진제공=tv N

같은 콘셉트의 방송이 많다는 것은

법정물 드라마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TV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대중의 현재 취향을 대변한다. 다른 관점에서는 인기 있는 콘셉트를 따라가는 방송가 주변의 분위기도 알려준다. 다만 복제가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이 있다고 변명하는 경향을.

예능을 예로 들면, <노는언니>를 시작으로 <골때리는 그녀들>이 촉발한 여성과 운동을 결합한 예능 방송은 유사한 후속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컬링도 있었고 농구도 있었고 최근에는 씨름도 있었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은 커녕 언론의 조롱 섞인 관심만 받았다.

이로 미루어 보면 대중의 취향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제작진의 안일한 기획과 제작이 대중의 눈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확실한 점은 대중은 식상해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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