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③…중국 춘추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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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③…중국 춘추전국시대
  • 손봉균
  • 승인 2017.10.30 1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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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제가 앞으로 소개할 사자성어 등 역사여행의 많은 부분이 춘추전국시대에 일어난 일들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안다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에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3개의 왕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라는 아직도 당시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라는 증거가 없어서 학자들 간에 전설상의 나라라는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은과 주나라는 유적으로 증명된 실제 있었던 왕조이다.

기원전 1,100년경에 무왕이 은나라(상商나라 라고도 함)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건설했다. 주나라 건설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유명한 강태공이었으며, 주나라 왕조가 건설된 후 산동지방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제(薺)나라의 제후로 임명받았다.

주(周)나라가 약 4백 년 동안은 평화롭게 중국을 통치 하였는 데, 시간이 흐를수록 통치력이 약화되었다.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에 홀려서 정사를 태만히 한 (주)유왕이라는 무능한 왕이 나타나서 주나라의 힘이 약해졌을 때, 서쪽 오랑캐(견융)가 쳐 들어와 (주)유왕을 살해하였다. 그 다음에 즉위한 (주)선왕은 오랑캐의 침입을 피해서 도읍을 호경(지금의 서안)에서 동쪽의 낙읍(지금의 낙양)으로 옮겼다. 무왕으로부터 12대만에 주나라는 동쪽으로 옮긴 것이다(기원전 770년)

 

외적이 쳐들어와 나라의 도읍을 동쪽으로 옮긴 주나라는 힘이 매우 약해졌다. 이 때 부터 힘이 약한 주 왕실을 대신하여 힘이 센 제후들이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치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주선왕이 동쪽으로 도읍을 옮긴 때부터 진(秦)나라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무려 550년간을 동양에서 말하는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동주시대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세계역사상 보기 드문 암흑기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기 시대적 특징이 있다. 춘추시대는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주 왕실을 받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는 데, 전국시대에는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여 주 왕실을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진시황이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함으로서 춘추전국시대는 끝이 난다.

 

이 시대에 많은 학자, 사상가들이 나타나 중국의 학문과 사상의 기초를 만들었다.

자주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승자가 패자를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춘추전국시대에 각국은 부국강병을 통하여 더 강하고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다.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각국의 제후들은 국적과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하였다. 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나 부국강병책,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며 제후에게 등용되기를 원했다. 당시의 다양한 사상가와 학자들을 제가백가라고 한다.

'제자(諸子)'란 여러 학자들이라는 뜻이고, '백가(百家)'란 수많은 학파들을 의미한다. 곧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나타낸다.

제자백가의 주장은 무척 다양하며, 중국의 학문과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한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 엄격한 법의 제정과 시행을 강조한 한비자의 법가 사상, 도덕과 법률보다는 자연을 본받는 생활을 강조한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 평화 사상의 실천을 주장한 묵자의 묵가 사상 등이 있다. 유가는 훗날 유교로 발전했고, 도가는 중국의 전통 종교인 도교의 바탕이 되었다. 한대(漢代) 이후 일반적으로 제자백가를 유가‧묵가·법가·도가·명가·병가·종횡가·농가·음양가·잡가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춘추전국시대는 암흑기이면서 또한 장래의 발전의 기초를 만든 철학의 시기이기도 했다.

서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뿌리가 되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와 같이 동양의 역사, 문화, 사상을 이해하려면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춘추시대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동쪽으로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 370년간이다.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기면서, 이미 왕으로서의 지배력을 잃었고 사실상 일개의 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제후들이 서로 세력을 다투게 되었다. 이 시대에 주나라 왕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치한 제후들을 패자(覇者)라고 하였으며, 춘추시대 370년간 5명의 패자가 있었다. 따라서 춘추시대를 5패(覇)의 시대라고도 한다.

춘추시대에는 왕이 비록 소국으로 전락하여 힘이 없었으나, 명목상으로 천하의 주인인 주나라 왕의 명을 받아 다른 제후들을 거느리고 오랑캐를 무찌르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를 존왕양이(尊王攘吏) 라고 한다. 그러나 춘추시대 후반으로 가면서 왕으로 칭하는 제후들이 생겨서 5패의 명칭도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패에 관하여는 사가들 간에 여러 설이 있으나, 제나라 환공(齊桓公), 진나라 문공(晉文公), 초나라 장왕(楚莊王), 오왕 합려(吳闔閭), 월왕 구천(越句踐)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춘추시대는 진(晉)나라의 한, 조, 위 3가(家)가 주나라 왕에 의해 각각 제후로 봉해진 403년에 끝이 나고, 전국시대로 이어진다.

춘추시대에는 강대국이었던 오패이외에도 30여개의 작은 나라들이 나라를 보전하기 위하여 강대국 사이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나라들이다.

기(紀)나라, 거(筥)나라, 임(任)나라, 서(徐)나라, 설(辥)나라, 기(杞)나라, 진(陳)나라, 허(許)나라, 위(衛)나라, 정(鄭)나라, 신(申)나라, 등(鄧)나라, 당(唐)나라, 방(房)나라, 식(息)나라, 채(蔡)나라, 서(舒)나라, 동(桐)나라, 황(黃)나라, 수(隨)나라 등이 있었다.

중국의 그 후 왕조의 이름 중에는 춘추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나라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 많았다. 당(唐)나라, 수(隨)나라, 송(宋)나라, 삼국시대의 오(吳)나라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 춘추시대 지도 /위키피디아

 

(2) 전국시대

 

전국시대는 기원전 403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약 180년간을 말한다. 전국시대는 제후들이 왕으로 칭하면서, 주왕의 명령을 받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여 다른 제후국들을 정복하고자 하였다.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에 비해 훨씬 더 치열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7나라가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7나라들을 7웅(雄)이라고 하며,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조(趙), 위(魏)를 말한다. 칠웅 중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는 춘추시대의 진(晉)나라가 3개국으로 갈라진 나라들이다.

전국시대를 7웅의 시대라고도 하며, 춘추시대의 오패와 합쳐서 춘추전국시대를 오패칠웅(五覇七雄)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국시대에도 작은 나라들이 있었으나, 많은 나라가 망하고 7강대국 위주로 재편성 되었다.

 

▲ 전국시대 지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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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2-03 21:41:16
동북공정용 연나라 장성 조작 사진 갖다 쓰면 안 부끄럽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