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후①…개혁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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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후①…개혁의 소용돌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2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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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출범후 정명식-조말수 체제 등장…박태준 없는 포철 개혁 돌입

 

1993년 3월 12일로 예정된 포철의 정기 주총을 열흘쯤 남겨둔 어느날 조말수 수석부사장은 정부의 고위층으로부터 긴급지시를 받는다. 박태준이후의 포철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새정부로서는 박태준씨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철강경기가 어려운 터에 그의 능력을 활용하고 싶지만 더이상 개혁정치에 불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조 부사장은 장중웅 상무와 함께 새 정부에 호응하는 포철 개혁안을 서둘러 마련,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 개혁안은 박태준 시대의 단절, 부정부패 척결등을 포함, 신정부의 개혁에의 동참을 골자로 했다. 이는 청와대가 박태준 없는 포철 경영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막 출범한 신정부는 박태준 없는 포철을 구상했고, 포철을 맡을 사람을 다각도로 물색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선택은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의 체제였고 조 사장이 청와대에 건의한 포철 개혁론은 박태준 이후 포철을 걱정하던 고위층을 안심시켰다. 서서히 진행되던 세포 분열은 3월 12일의 주총을 통해 새로운 핵을 형성하게 됐고 구각이 떨어져 나가는 탈바꿈이 이뤄진 것이다.

조 부사장은 당시 박태준 회장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싱가포르에서 포철의 동남아 지역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포철 동남아사업본부는 빠른 시일내에 현지 독립법인으로 분리해, 조 부사장은 포철에서 옷을 벗고, 자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조 부사장은 정치권과 관계에 인맥이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곤경에 빠져 포철을 떠나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박 회장을 구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

조 부사장은 주총을 며칠 앞두고 또다시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는 12인 열리는 주총에서 사장 자리를 맡아서 포철 개혁을 주도하십시오. 회장 자리가 꼭 필요한지 아닌지를 검토하고 필요성이 인정되면 적임자를 골라 오전 10시까지 통보하십시오. 그리고 오후 3시에 (회장 적임자와) 함께 이곳에 들어오십시오.”

그는 장중웅 상무와 이 문제를 숙의했다. 조 부사장은 장중웅 상무와 숙의끝에 그래도 회장이 있어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대상자는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합리적 사고론자로 정평이 나 있던 정명식 당시 부회장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그런데 정작 정부회장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그는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떠나 버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난리가 벌어졌다. 그가 잘 다니던 하산 길을 알아내야 했고 인근 호텔방에다 정 회장 자택으로부터 정장을 준비해두었다.

수배 작업은 가까스로 성공했다. 두 사람은 청와대로 직행했다. 그 길로 바로 정-조 체제의 포철 경영진에 구축됐다.

당시 정 회장은 박태준의 측근으로 지목돼 자신은 이번 주총에서 퇴진 대상에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조 부사장으로부터 포철 잔류는 물론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말에 크게 감격했다. 조말수 부사장에 의해 차기 포철 회장에 추천된 정명식씨는 1970년 입사, 23년간 근무한 포철맨으로 포항, 광양의 제철소건설 책임을 맡아온 엔지니어출신. 영어와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국제통으로 소문날 정도로 그는 나중에 대외적인 일을 자임하고 나섰다.

정 회장, 조 사장, 장 상무를 주축으로 하는 포철 개혁세력의 근간이 형성됐다. 이들은 TJ사단을 중심으로 퇴임할 임원들의 명단을 짰다. 그리고 3월12일의 주총을 기다렸다.

산 2,100만톤의 조강능력, 매출액 6조1,000억원으로 세계 2위의 철강회사, 제조업부문국내1위의 포철주총은 그야말로 「박태준사단」에 대한 대학살이었다.

 

12일 상오 주총이 시작되기 직전 임원들이 주총이 열리는 국제회의장에 들어가기 직전, 임원회의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누군가가 “임기가 만료된 임원들은 사표를 내십시오”라고 말해 임기만료 임원들(박태준 포함 9명)이 사표를 쓰고 있는데, 또다시 누군가가 들어와서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임원들도 사표를 쓰십시오”라고 했다. 일순간 혼동이 일어났다. 임기만료 전인 임원도 사퇴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황경로 회장, 정명식 부회장, 박득표 사장(이순간까지 이들은 공식적으로 회장, 부회장, 사장이었다)이 국제회의장에 입장하면서 포철 주총은 시작됐다.

황 회장이 주총 개회를 선언했다

황 전회장은 업무보고 영업실적을 보고한뒤 “본인의 임기가 만료돼 사퇴했으며 여러가지 사정으로 물러난다”면서 시회를 정 신임회장에게 넘기고 회의장을 나갔다. 이때 박득표 전사장 이대공전 부사장 차동해 전상임감사(이순간 그들은 전직임원의 범주에 포함됐다)등이 함께 자리를 떴다. 여상환 전부사장, 구자경 전상무등은 아예 참석치 않는등 물러난 임원들의 불편한 심기가 노출됐다.

포철 주총의 숨막히는 진행은 40여분만에 끝나고 정명식 회장, 조말수 사장체제가 정식 출범했다.

그러면 포철 신화를 창조, 성장한국의 심벌로 여겨졌던 「박태준왕국」의 대폭 물갈이의 실체는 무엇인가. 자본금의 50%를 쥐고 있는 정부가 칼자루를 흔든 것인가. 아니면 박태준 사단의 내부 궁정반란인가. 1993년 주총을 계기로 포철을 떠난 임원들과 개혁세력에 가담, 잔류한 간부들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후자에 가깝다.

즉, 박태준과 그의 사단이 새정부의 눈에 거슬려 약화된 틈을 타고 조말수 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개혁세력이 정부의 원격지원을 받아 25년간 장기집권의 구세력을 뒤엎은 쿠데타의 성격이라는 것. 대외이미지는 정명식 회장이, 총책임은 조말수 사장이, 이론은 장중웅 상무가 각각 분담했다. 5.16당시로 치면 장도영, 박정희, 김종필의 역할 그대로였고 20여년간 박태준을 「모신」 측근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개혁론은 로마제국 초기의 「부르터스의 칼」에 해당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가시를 품고 화사하게 피어난 「배반의 장미」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TJ사단의 시각일 뿐 포철인들 가운데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퇴임 간부의 주장이다.

“조 사장이 주총에 앞서 귀국한 것은 포철로서는 사규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황경로 회장, 정명식 부회장, 박득표 사장중 어느 누구의 귀국지시를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해외근무자는 본사의 지시 또는 허가없이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는 규정은 포철로서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개혁세력에 가담한 간부의 말이다.

“조말수 사장, 장중웅 상무가 청와대로부터 고위층의 뜻을 전달받은 것은 주총 열흘 전쯤이었습니다. 장 상무는 조 부사장을 만나 포철개혁안을 짰습니다. 이 개혁안이 청와대에 올려 졌고 그 안에는 주총때 퇴임할 임원, 그후 인사에서 포철을 떠나야 할 임원들의 개략적인 내용과 박태준 이후의 포철 경영구상이 들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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