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주사 전환 바람…뿔난 소액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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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지주사 전환 바람…뿔난 소액주주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9.23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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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투명성·공정성 강화…지주사 전환 가속
대의명분 속 피해는 소액주주에게…반발 거세
정치권·당국 중심 주주권 보호 움직임 격화
재계에 지주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재계에 지주회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인상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주회사는 그룹 차원의 대응 전략을 짜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선제적 투자 및 지배구조 강화 등 다양한 이유로 각광 받고 있다. 반면 일부 소액주주들은 이른바 '회사 쪼개기'(분할)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하는 까닭

지주회사는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지주사와 지주사의 계열사로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주사 체제 아래에선 일감 몰아주기 문제도 사라진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주사로 전환하면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공정성 시비는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전환에 따른 혜택이다. 지주사로 전환하려면 핵심 계열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거나 비슷한 속성의 자회사를 합병해야 한다. 분할이나 합병을 통해 지주사로 바꾸는 과정에서 모든 자산에 양도차익이 발생하는 데 정부는 이런 양도차익 부담을 유예하는 '과세이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로 종료 예정이었지만 극적으로 연장에 합의하면서 2023년 12월31일까지 유예기간이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입법 지주사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이 줄줄이 입법대기 중인 점도 지주사 전환을 부추긴다. 국회는 지주사 요건을 현행 상장 20%, 비상장 40%에서 상장 30%, 비상장 50%로 강화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지분율 1%를 확보하기 위해 수백·수천억원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분 요건 10% 강화는 기업 편에서 보면 부담스러운 조치다. 

실제로 지주사로 전환하는 기업은 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2022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대기업 집단 76개 중 지주회사가 있는 곳은 34곳이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 71개 중 32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2곳이 늘었다. 

유가증권 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과 사업 시너지 효과라는 명분 속에 주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수 배만 불린다"…뿔난 소액주주

기업의 지배구조개편과 사업 시너지 효과라는 대의명분 아래 일부 투자자들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총수만 배불린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동시에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곳은 풍산이다. 풍산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실적 증가가 예상되는 방위산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풍산디펜스(가칭)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지난 7일 공시했다. 공시 이후 주가는 급락해 3만원대에서 2만원대로 주저앉았다. 풍산은 향후 신설법인 상장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제3자 배정 등 다른 방식으로 신규 자본을 들여오면 상장 때와 마찬가지로 모회사 지분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소액주주들은 연대 모임을 구성하고 물적분할에 반대하고 있다. 

내년도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 중인 DB그룹도 비슷한 상황이다. DB그룹은 지난 7월 주력 자회사 DB하이텍 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사업부문 분사를 검토한다고 공시했다. 공시 직후 DB하이텍의 주가는 급락했고 공교롭게 지주회사 행위제한 요건을 충족해야하는 DB그룹(㈜DB Inc.)의 부담은 다소 경감했다. 하지만 주가하락의 여파는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이 됐다. 이에 DB하이텍 주주들은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하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인적분할을 통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키운 사례도 있다.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16일 각각 현대백화점홀딩스(신설법인)와 현대백화점(존속법인), 현대지에프홀딩스(존속)와 현대그린푸드(신설)로 인적분할한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기존 두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6.6%와 10.6%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설립 때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최대주주(17.1%)인 현대백화점홀딩스, 동생 정교선 부회장이 최대주주(23.8%)인 현대지에프홀딩스는 보유 자회사 지분율이 주식 교환 과정에서 자사주 지분만큼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정 회장 형제가 소유한 자사주가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기존 주식처럼 자사주에도 신설법인 주식이 배정되고 향후 주식 교환 과정에서 대주주에 유리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거세지는 주주권 보호 움직임

정부가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의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한걸음 더 나아가 주식매수청구 가격을 구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주권 보호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은 지난 20일 주주가 주식매수청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주식 매수가격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의 가중산술평균한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을 담안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제165조의5 제3항)에 따르면 주식매수가격은 주주와 법인의 협의로 정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매수가격은 증권시장에 거래된 주식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번 개정안은 주식시장에서 거래가격이 주식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와 법인이 주식매수청구가겨을 낮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억누르는 사례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보다 앞서 이달 초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은 주주권익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추후 자회사가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경우 상장심사 요건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주들의 반대 운동이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최근 추진 중인 주주권 보호 움직임이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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