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블 붕괴①…두루넷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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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블 붕괴①…두루넷의 경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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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버블 타고 뉴욕증시 상장…장기호황이 가져다준 증시 거품 활용

 

‘두루넷’이라는 회사를 기억하시나요.

새로운 밀레니엄을 한달여 앞둔 1999년 11월 17일 뉴욕 맨해튼의 리먼브러더스 본사 빌딩에선 한국 기업 ‘두루넷’이 거창한 상장식을 열었다. 한국 기업으로는 첫 나스닥 직(直)상장이었다.

뉴욕 증시의 기호, 즉 티커 심벌(ticker symbol)은 ‘코리아(KOREA)’였다. 두루넷은 회사명칭을 ‘코리아 두루넷(Korea Thrunet)’이라고 늘려 ‘코리아’라는 티커심벌을 차지했다. 국호를 주식 기호로 사용하는 회사로, 홍콩 인터넷 포털서비스 회사인 ‘차이나닷컴’이 4개월전에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국명인 ‘차이나(CHINA)’를 티커 심벌로 부여받아 첫날 거래에서 공모가의 3.36배로 마감한 바 있다. 나라 이름을 주식 코드로 사용할 땐 그만큼 국위를 신장해야 한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나스닥 주식 코드 ‘코리아’의 가격은 데뷔 첫날 공모가의 두배로 폭등했다. 상장 첫날 두루넷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95%나 폭등한 채 마감했다. 당시 한국에서 내로라는 포철(포스코), 한전등이 뉴욕 증시에 서울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주식을 맡겨 주식예탁증서(DR)로 뉴욕 증시에 상장했던 것과 달리, 두루넷은 한국 증시에 상장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 미국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과감성을 보였다. 당시는 ‘닷컴(dot com)’, ‘넷(net)’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주가가 폭등하던 시절이었다. 국적 불문, 수익여부 불문이었다. 인터넷이면 무조건 사자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서 이름도 없는 두루넷이라는 회사가 한국 정보통신산업을 대표하며 뉴욕 증시 투자자들을 긁어모은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회사인 두루넷의 주식은 첫날 44달러에서 출발, 한때 51달러까지 치솟았다가, 공모가 대비 두배에 가까운 35.1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첫날 거래량은 전체 상장주식 1,010만주 가운데 940만주로, 하루 동안 93.1%의 높은 회전율을 기록했다. 공모에 참여한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이 거래 첫날에 거의다 팔아치웠다는 얘기다. 가격이 두배나 좋고, 인터넷 주가의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팔아 며칠만에 두배 장사를 했고, 사는 사람도 인터넷 거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나오는 물량을 모두 소화해 냈다.

주간사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측은 “두루넷 경영진과 한국 인터넷 산업에 대한 높은 신뢰의 표시”라며 극찬했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외국기업임에도 불구, 한국의 대형 인터넷 업체에 대한 첫 투자기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두루넷은 한달후 주당 84달러까지 치솟았다. 정점의 주가를 기준으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45억 달러에 이른 것이다.

2000년 1월 두루넷이라는 회사는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가 돼 있었다. 한국에도 코스닥 붐이 불었고, 모두들 주식투자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2000년초 필자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집에다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기 위해 두루넷에 전화를 걸었다. 대답인즉 한달내에 선을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한달을 기다려 또 전화했더니 조금더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두루넷은 필자의 집까지 인터넷망을 연결해주지 않았다. 이런 회사가 어떻게 국내 대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뉴욕 증시 직상장을 단행해 한 큐에 대박을 터트릴수 있었을까. 두루넷은 나스닥 상장으로 총주식의 18.1%를 주당 18달러에 팔아 1억8,000만 달러를 챙겨 갔다.

3년후인 2002년말 두루넷의 주가는 0.5 달러대로 떨어져 나스닥에서 퇴출 위기에 직면했고, 회사를 파는 문제가 대두됐다. 뉴욕 증시 주가를 체크하기 위해 ‘korea’를 칠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왜 이런 회사가 나라 이름을 티커 심벌로 사용했는가 하며 창피할때가 있다. 해외, 그것도 국제금융시장의 심장부에서 한국의 국위를 실추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 두루넷은 후에 법정관리를 받다가 하나로통신에 합병되었다. 하나로통신은 다시 SKT에 인수합병되면서, 현재 SK브로드밴드에 녹아 있다.)

 

▲ 두루넷 로고

 

두루넷의 흥망은 바로 뉴욕 증시의 거품이 최고조로 달했다가 꺼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정보통신주가 집결한 나스닥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고, 1998년에 2,000 포인트를 넘어 99년에는 3,000과 4,000 포인트를 훌쩍 뛰어넘어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3월10일 5.048.62까지 치솟았다. 한해 사이에 지수상으로 두배나 치솟은 것이다. 그러던 나스닥 주가는 2000년 3월을 고비로 내리막길에 들어서 3년후인 2002년말에 1,200 포인트 이하로 떨어져 무려 80%나 가라앉았다.

뉴욕 증시의 거품은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붕괴했고, 이어 3년간 블루칩 지수인 다우지수와 S&P 500 지수가 느린 속도로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러면 여기서 나스닥 지수가 무너질 것을 미리 알고, 먼저 빠져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때 5,000 포인트를 넘었던 나스닥 지수가 1년 만에 60% 이상 하락, 전체 시가총액이 한해만에 무려 3조~4조 달러나 공중에 날아갔다. 잘나가던 시장에 흙탕물을 튀키며 먼저 도망친 사람들은 벤처 창업자와 증권브로커였고, 뒤늦게 빠져나간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보아야 했다. 거품처럼 부풀었던 주가가 무너지면서 월가의 내부자 거래(insider trading)와 기업 회계 부정의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나스닥이 붕괴된지 1년후인 2001년 기업경영분석 기관 톰슨 파이낸셜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나스닥 상장 기업 가운데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 1억 달러 이상을 번 거부가 50명 정도 된다. 이들 대부분은 나스닥 지수가 피크였을때인 1999년 10월에서 2000년 사이에 보유주식을 내다 팔았다.

인터넷 컨설팅업체 사이언트의 최고 경영자(CEO)였던 36살의 에릭 그린버그는 주가가 최고치에 달했을 때 주식을 매각, 2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챙겼다. 그후 이회사의 주가가 폭락, 지난 3월 시가총액이 1억 달러를 갓 넘었다.

정보통신(IT) 업체 창업자 모두가 떼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나스닥 상장업체의 내부자 대부분은 주가가 좋을 때 지분을 매각,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시가 이하로 주식을 확보, 소액투자자들에게 거액으로 팔아 목돈을 챙기면서 ‘자본주의란 원래 그런게 아니냐’며 죄의식은 커녕, 자신의 성공을 당연시했다.

물론 월가의 브로커 회사들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들은 일단 상장 수수료를 받고 나면 주가가 폭락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1998년 이후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플릿보스턴 파이낸셜이 5억 달러 이상을, 베어스턴스, 도이체방크가 각각 4억 달러이상을, 골드만 삭스가 3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애널리스트들도 인터넷이야말로 21세기의 주력 산업이라며 소액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일조했고, 인기는 있는 애널리스트의 연봉이 1,00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모두들 자본주의 시스템을 활용해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결국 거품을 팽창시키고, 이를 꺼트리는데 일조한 셈이다. 일종의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도덕적 해이는 월가 사람들과 젊은 벤처사업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도 나스닥 지수가 달아오는 것을 립 서비스(구두경고)만 했지 적극적인 행동(금리인상)을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FRB가 방관하는 사이에 풍부한 유동성이 기술주로 몰렸고, 돈 한푼 없이도 떼돈을 버는 미국판 졸부를 형성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덕적 해이가 있는 곳에 반드시 경제의 거품이 발생하고, 그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불황이 닥쳐왔다. 10년 장기호황을 구가한 미국 경제는 증권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2001년 초부터 경기침체를 겪었고, 그 와중에 9·11 테러를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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