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의 통신보국⑨…이동통신 재선정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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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의 통신보국⑨…이동통신 재선정 작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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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출범후 재개…선경은 1통 인수, 포철과 코오롱의 경쟁

 

1994년 정초의 시무식 사건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은 본연의 업무활동에 들어갔다. 정 회장은 하와이에서 개최되는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럭키금성상사의 구자경 회장과 함께 출국했다.

조 사장은 포항에서 직원대표 30명이 모인 가운데 전사직장협의회를 열로 직원임금을 2.9%인상하기로 노사합의를 이룬다. 공기업으로 정부가 제시한 임금가이드라인에 충실한 인상률이었다.

물론 며칠간 있은 갈등으로 손에 잡히지 않았던 업무가 정상화되긴 했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예컨데 직원들의 외국어학원수강비 부담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도 두 사람은 견해를 달리했다. 정 회장은 수강점수가 어느 정도 되면 회사에서 수강비를 지원하라고 결재를 하면, 조 사장은 점수가 안되는 직원에게는 수강료를 자비로 부담하라는 지시를 내려 해당부서에서는 애를 먹기도 했다.

1월 18일 포항에 머물던 조 사장은 그리고는 수행하는 박 비서에게 코오롱그룹의 이웅렬 부회장, 쌍용그룹의 김석준 부회장,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에 관한 인적사항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들을 만나 포철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면 상대방에 관해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조 사장은 회의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때 언제나 사전에 준비를 하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조 사장은 서울로 올라와 포철 서울사무소와 길 하나 사이로 있는 코오롱그룹 빌딩의 이웅렬 부회장실을 찾아갔다. 이틀전인 1월 17일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1通)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젠 제2이동통신(이하 2通)을 차지할 대상자는 포철과 코오롱그룹으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통의 지배주주 선정은 전경련에 위임됐고, 전경련은 당사자들의 자율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나왔다. 코오롱은 전경련의 회원사인데 비해 포철은 비회원사인만큼 어느모로 보나 불리한 여건인데, 비회원사가 전경련을 상대로 사업권을 따려면 포철의 최고경영진이 몸소 나서야 하질 않는가.

조 사장이 선제공격에 나섰다. 조 사장은 이웅렬 부회장을 만나 “포철이 지배주주로 될 수 있도록 하도록 도와줄 것”을 제시하면서 코오롱이 2통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배려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코오롱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코오롱측으로서도 사양화 산업으로 몰리고 있는 섬유산업에만 매달릴 수 없고, 21세기 첨단산업인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그룹차원의 절박감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조 사장은 이어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과 쌍용그룹의 김석준 회장을 만났다. 동양그룹은 데이콤의 주식을 매입했기 때문에 제2이동통신에는 참여치 않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조 사장의 이같은 움직임은 “포철이 재계를 상대로 세몰이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전경련의 조규하(曺圭河) 부회장으로부터 일종의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쨋건 한미재계회의에서 돌아온 정 회장과 조 사장은 2통사업자 선정에서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포철을 위해 열심히 뛴다. 그들은 2통사업자선정에서 포철에 낙점이 될 경우 3월 주총에「서 정부로부터 재신임을 받을 것으로 믿었다.

조사장의 세몰이는 일단 효과를 나타냈다.

2월 1일 건영그룹과 영풍그룹은 1일 포철이 주도하는 제2이동통신사업의 신세기이동통신컨소시엄에 지분참여키로 결정,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날 동부그룹은 2일 제2이동통신의 지배주주경쟁을 포기하고 포철이 주도하는 신세기이동통신컨소시엄에 참여키로 했다고 공식선언했다.

 

그러면 김영삼 정부 출범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 경과를 일단 짚어보자.

대통령 선거로 인한 돌풍과 같은 정치의 계절이 가고 93년 2월 새정부가 출범했다. 대선기간에 맞물려 노태우 대통령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사돈이라는 사실이 정치 문제화하면서 선경그룹은 다 따놓은 2통사업권을 반납, 2통사업자 선정은 김영삼 정부로 이관됐다.

3월 31일 신임 김영삼 대통령은 체신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윤동윤(尹東潤) 장관에게 이동통신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

“제2이동전화 사업자선정에 있어 유리로 들여다 보는 것처럼 한치의 의혹도 없이 하시오.”

6월15일 체신부는 제2이동전화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기본원칙을 발표한다. 1994년 6월까지 사업자 선정을 마치고 사업자 선정방식은 6공화국 때의 방식과 같은 사업계획서 평가방식과 단일컨소시엄 방식 중 하나를 연말까지 선택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12월 10일 윤 장관은 약속한대로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방식에 관한 정부의 원칙을 밝혔다.

“신규이동전화 사업자는 민간자율에 의해 단일컨소시엄 구성으로 하며 이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일임합니다. 또 신규허가와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KTM)주식매각을 연계 추진하겠습니다.”

윤장관의 이날 발표는 새 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전경련 회장을 맡은 선경의 최종현 회장과는 사전협의가 일체 없었던 일이었다. 마침 지방출장 중에 이 발표내용을 전해들은 최 회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쨋든 전경련은 12월 14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정부안을 수용키로 결정했고 이어 16일에는 조규하 전경련부회장은 경상현(景商鉉) 체신부 차관을 만나 컨소시엄 구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동안 말고 많고 탈고 많았던 이동전화사업의 선정방식이 결정됨에 따라 이를 준비해온 업체들은 또한번 치열한 접전을 치르게 됐다.

특히 최종현 회장은 15개월전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됐다 .지난번에는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에서 특혜시비에 휘말렸지만 이번에는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제2이통에 참여할 경우 특혜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했다.

선경으로선 6공화국에서 반납한 2통사업권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체신부도 그때의 선정이 공정했다고 분명히 하는 만큼 다시 뛰어들어도 실력이나 재력에서 사업권을 다시 따낼 자신이 있었다. 그룹의 전문경영인들은 1통 주식매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은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면서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며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의 주식매입을 지시한다. 지난 1월 17일 선경은 1통 주식매입 참여를 공식 발표한다.

선경은 2통을 2번이나 포기해야 했고 이에 따른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체신부가 한국이동통신 주식매각을 발표할 93년 12월 1주당 15만원대이던 1통의 주식시세가 매입시점에는 32만5천원까지 상승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3%를 매입하면서 4천3백억원의 자금을 납입, 후에 포철이 1통의 지배주주로 선정되면서 첫해에 납입한 1백50억원에 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선경의 1통참여로 남은 것은 포철과 코오롱이었다.

선경이 1통으로 돌아서자 증시에는 코오롱이 지배주주로 선정될 것이며, 포철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탈락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아 코오롱 주가가 치솟고, 포철 주가는 하락하는 현상이 생겼다.

코오롱 그룹의 이웅렬 회장이 권력상층부와 친하기 때문에 2통지배주주로 선정될 것이고, 이미 그런 사전내락이 있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1통과 2통을 놓고 저울질을 하던 포철측에서는 여론을 선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선경이 1통 선택을 발표한 다음날인 18일하오 포철 신세기이동통신의 권혁조(權赫祚) 사장은 종로2가 영풍빌딩 19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통사업 참여를 공식선언했다.

“포철은 이동통신사업참여를 위해 한국이동통신주식매입과 제2이동통신 참여등 두가지 방안을 신중히 검토한 끝에 제2이통사업에 참여키로 결정했습니다.

선경그룹의 제1이통 참여에 따라 국가경쟁력 강화와 경제계의 결집 및 화합을 위해 제2이통 참여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제2이통의 지배주주가 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 선경이 특혜시비를 불식하고 2통의 단일컨소시엄구성이 공평하게 되도록 나름대로 고육지책으로 1통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경의 이같은 결정을 선의로 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그동안 검토해왔던 1통참여를 포기했습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코오롱의 2통지배주주설이 무성하나 근거가 없습니다. 포철이 비록 전경련에 가입돼 있지 않으나 전경련이 특정기업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단일컨소시엄을 구성하리라고 믿습니다.“

포철과 코오롱중 제2이동통신사업의 최후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가 재계의 큰 관심사였다. 전경련의 원칙과 입장이 정리되면서 두 회사의 움직임이 부산해 졌다.

전경련의 최종현 회장은 1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해당사자간 자율협의가 가장 바람직하며 회장단의 결정권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두 회사의 자율협상이 어렵고도 지난한 일이었다. 정명식 회장과 코오롱의 이동찬 회장, 조말수 사장과 이웅렬 부회장이 담판을 거듭했으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결국 회장단이 중재에 나서 결정해야 할 판이었다.

전경련이 내부적으로 정리한 입장은 “자금력과 기술력은 포철이 월등하지만,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 기업성격면에서 코오롱이, 규모면에서 포철이 각각 점수를 따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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