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오징어게임과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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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오징어게임과 움베르토 에코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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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이 미국 에미상에서 6관왕에 올랐다. 감독상과 남자주연상 등 주요 부문은 물론 게스트상, 시각효과상, 스턴트퍼포먼스상, 프로덕션디자인상 등 단역과 기술 부문에서도 수상했다. 이외에도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모두 2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오징어게임>의 이런 성과는 콘텐츠와 플랫폼, 즉 제작과 유통 부문이 큰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이고 이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제작 시스템과 글로벌 유통 시스템이 만나서 쌓인 노하우 덕분이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야기가 가진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적 콘텐츠와 제작 시스템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드라마와 영화 제작 수준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드라마는 2000년대 들어 일본의 대중문화를 흔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 흐름은 동남아를 거쳐 중동까지 흘러갔고 전 세계로도 퍼졌다. 한국에서 영화는 일부 세계적 흥행 영화를 빼고는 국내 영화가 더 관객에게 선택받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한국 영상물 인기 배경으로 한국 특유의 감성이 가득하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꼽는다. 다른 나라에서도 매력을 느낄만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달달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펼치고, 때로는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도 감동으로 승화한다. 물론 영상 속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인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리고 관객들 취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에미상 수상 후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의 질책이 창의력에 도움이 됐다고 할 만큼 우리나라 대중은 취향이 까다롭다. 그런 대중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한국의 제작진들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제작진의 노하우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든 영화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예산이 책정되기 마련이고 제작 일정도 빠듯하기 마련이다. 한정된 예산과 빡빡한 일정은 스태프들에게 방법을 찾아보게 하고 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는 요소가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는 들어간 돈에 비해 완성도가 높다고, 즉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의 투자

만약 한국 영상물이 국내 방송과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였다면 지금처럼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부 수출되는 영상물이 있기도 했겠지만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성과 배급으로는 콘텐츠 유통의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OTT, 즉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도 한국 제작사가 기획과 제작을 하고 글로벌 영상 플랫폼이 투자와 유통을 맡는 협업 시스템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서로의 강점인 분야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로 <킹덤>과 같은 인기 시리즈가 나왔고 <오징어게임>과 같은 초대박 드라마가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들은 방송국 편성을 위해 불리한 조건의 계약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편성되지 않으면 기획 자체가 묻혀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모자라는 예산은 광고와 협찬으로 메우고 빡빡한 일정은 완성도의 기대치를 낮춰서 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은 달랐다. 제작비를 국내 방송사가 경쟁할 수 없을 정도의 고액으로 책정했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제작비는 기존 방송 드라마나 영화로 도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제작 기획서가 OTT로 몰리는 현실이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스틸컷

OTT로 연결된 세상

글로벌 영상 플랫폼이 성장한 배경에는 사업자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많이 확보한 면이 크다. 특히 후발주자 OTT는 선발주자인 TV나 영화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차별된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걸었고 결과적으로 콘텐츠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꾸기까지 했다.

역설적이지만 감염병 시국도 OTT의 성장을 도왔다. 코로나19로 격리된 세상이어서 사람들이 집에서 볼 수 있는 영상물을 많이 찾았으니까. 그래서 재미난 영상물이 가득한 OTT가 호황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오징어게임>도 전 세계에서 많은 시청자가 봤다. 공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 시간 16억 5000만 시간을 기록했는데 넷플릭스 사상 최다 시청 시간이라고.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190여 나라에서도 오픈됐다. 영어는 물론 주요 언어로 번역한 자막을 함께 제공했다고. 

얼마 전 화제가 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어 더빙 장면을 보면 넷플릭스가 얼마나 번역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늬앙스의 미묘한 차이가 시청자들의 몰입과 외면의 차이를 부른다. 이런 세심함 덕분에 한국 콘텐츠가 세상에 나가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 글로벌 시청자에게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이야기가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에게 얻은 영감

무엇보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큰 상까지 받게 된 것은 이야기의 힘에 있을 것이다. 한국 배우들과 한국 문화가 나오니까 처음에는 한국 이야기로 받아들였지만 어느 순간 자기의 이야기, 자기 주변의 이야기로도 치환되는 것을 느꼈다는 해외 팬들의 감상평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심리학자는 이런 현상을 다룬 책 <오징어게임 심리학>을 쓰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은 에미상 수상 후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을 집필할 때 여러 장르의 여러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특히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수록된 에세이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언급했다.

에코는 이 글에서 그의 조국인 이탈리아가 노인의 수가 젊은이를 점점 추월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노인들이 받는 “연금과 사회 보조금은 젊은이들이 지불”하는 현실에 처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윗자리는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고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은퇴한 부모나 조부모에게 손을 벌려야”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2011년에 에코가 써 내려간 이탈리아의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령 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한국의 모습이 보이고 이미 고령 사회가 된 일부 서방 세계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에코는 기울어진 인구 균형 축과 무너진 국가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죽이는 것을, 반대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죽이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런 끔찍한 상상은 나와 다른 이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작금의 여러 프레임을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황동혁 감독이 에코의 글 어떤 대목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이야기지만 상대방도 공감해서 자기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맥락 연결의 방법을 에코의 글에서 떠올린 듯하다. 그래서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오징어게임>이 지금 이 세상의 단면을 가르고 속살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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