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晋商)③…현대식 지분구조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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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晋商)③…현대식 지분구조 운영했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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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실적에 따라 공로주도 배당, 소유와 경영 분리, 경영자 스카웃도

 

중국 산서상인(晋商)들이 운용하는 금융기관 표호(標號)는 현대식 주식회사와 비슷한 측면이 많았다. 지분제도가 있었으며, 소유자와 경영자가 구분되어 있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주식을 성과급으로 주는 제도도 있었다. 경영권 싸움도 있었고, 유능한 경영인을 스카웃해오는 제도도 있었다. 지금 뉴욕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와 다름 없는 경영을 하고 있었다.

 

▲ 산서성의 일승창 간판 /위키피디아

 

진상이 운영하는 일승창(日昇昌)이라는 안료가게가 1823년 최초로 표호를 금융기관을 운영했다는 얘기는 지난 회에서 다뤘다. 그 표호의 주인(오너)는 이잠시였고, 표호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뇌이태(雷履泰, 1770~1849)라는 전문경영인이었다.

뇌이태의 영업력은 당시 산서상인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오너인 이잠시는 뇌이태를 믿고 장사를 맡겼다. 뇌이태의 직책은 대장궤(大掌櫃)라고 했다. 현대 주식회사로 치면 대장궤는 최고경영자(CEO)였다. 그 아래에 이장궤(二掌櫃)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부사장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뇌이태가 대주주로부터 대장궤 지위를 부여받았을 때, 이장궤는 모홍홰(毛鴻翽)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다.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는 법이다. 2인자 자리에 머물렀던 모홍홰는 호시탐탐 뇌이태를 몰아내고 대장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물감가게에서 금융업으로 업종을 바꾼 일승창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며 성장했다. 표호를 설립한지 10년째 되던 어느 시점, 뇌이태는 병이 났다. 통상적인 업무는 모홍홰에게 위임하고 종요한 결정에만 참여했다. 모홍홰는 그게 불만이었다. 일상적인 일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결정적인 대목에선 뇌이태의 제동에 걸리는 것이었다.

모홍홰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주인 이잠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뇌이태 대장궤는 사업을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습니다. 병이 깊어 거동이 어려운데도 쉬지 않고 표호일에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대장궤께서 이리 건강을 돌보지 않으니 걱정입니다.”

이잠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그는 표호를 찾아가 뇌이태에게 “사업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나 건강이 우선이지요. 본가에 돌아가 몸을 돌보며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라고 말했다.

뇌이태는 이잠시의 말이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 알았다. 그 뒤에 모홍홰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리 관심을 가져 주니 고맙습니다”며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리고 자택으로 돌아가 쉬었다.

며칠후 이잠시는 위문차 뇌이태의 자택을 찾았다. 그런데 뇌이태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이잠시는 그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국 각지의 분장(分莊)에게 업무를 중단하고 고향인 산서(山西)로 돌아오라는 지시였다. 분장은 은행의 지점장에 해당한다. 표호의 분장은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돌아오면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대주주는 당황했다.

“대장궤, 이게 무슨 일이오.”

“일승창은 이씨 집안의 사업이지만, 각지의 분호는 뇌씨가 세운 것이니 제가 철수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로 청산할 것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 임용하는 것이 옳는 일입니다. 저는 이제 그만 물러나려고 합니다.”

이잠시에게 뇌이태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는 대장궤 뇌이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뇌이태는 “내 손으로 일승창을 일으켜 이제 겨우 앞이 보이는데, 누군가 나를 밀어내려 하니, 그에게 잘해보라고 할 수밖에 없군요”라고 말했다.

이잠시는 “우리 집안이 당신을 의지하지 않으면 누구를 의지하겠소. 대장궤가 가버리면 일승창은 문을 닫고 휴업을 해야 하오.”라고 만류했다.

뇌이태도 이 정도에서 자본주의 말을 따랐다.

“이씨 집안이 저에게 잘 해준 것을 압니다. 나를 집에 가서 쉬게 하라고 한 것은 본 뜻이 아닌 것도 압니다. 누군가 이간질을 한 모양인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일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로부터 며칠후 이장궤 모홍홰는 물러났다. 물론 뇌이태는 대장궤 지위를 유지했고, 일승창은 중국에서 최고의 금융기관으로 자리잡았다.

 

▲ 모홍홰(毛鴻翽) /바이두백과

 

일승창에서 쫓겨난 모홍홰(毛鴻翽)는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집에 머물고 있었다. 산서 상인들 사이에선 모홍홰가 중인에게 밉보여 쫓겨 났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무도 그를 거덜떠보지 않았다.

그때 그의 능력을 본 상인이 후음창(侯蔭昌)이었다.

후(侯)씨 가문은 송(宋)나라 시절 1163년에 산서 지방으로 이사해 상업에 종사했으며, 후음창은 21대 경영자로 후씨 상단을 이끌었다. 후씨 상단은 울태후(蔚泰厚), 울풍후(蔚豊厚), 울성장(蔚盛長) 등의 상점을 거느리고 주단(비단) 장사를 하며 돈을 많이 벌었다. 울태후는 표호를 최초로 설립해 날로 성장하는 일승창의 이웃에 있었다.

후음창은 돈 냄새를 잘 맡았다. 그는 이웃 일승창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비단 가게를 표호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준비가 갖추어 졌다.

하지만 단 하나가 부족했다. 금융사업에 정통한 경영자가 없었다. 비단장사와 금융업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표호 전환에는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후음창은 모홍홰를 주목했다. 선두주자인 일승창에서 이장궤까지 일한 경력도 있고, 지금은 소속한 표호가 없는 사람이었다.

후음창은 가족회의를 열어 모홍홰의 영입에 관해 상의했다. 반대자가 많았다. 모홍홰가 일승창에서 쫓겨난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인품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상단을 이끌고 있는 후음창이 모홍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자, 일부에서는 임시로 써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출시키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후음창은 “의심 가는 사람은 임용하지 않고, 임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그가 승낙한다면 표호의 대장궤로 받아들이겠다고 고집했다. 후씨 가족회의는 장시간의 논의 끝에 모홍홰를 영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후음창은 모홍홰를 찾아가 자신의 표호를 경영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모홍홰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으로, 또다른 주인을 만나 버림받을 것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후음창은 모홍홰의 속마음을 꿰뚫고 “일승창의 뇌이태와 정식으로 겨뤄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아니냐”며 성심껏 그를 설득했다. 모홍홰는 오래 버티지 않고 승낙했다.

후음창이 모홍홰라는 경영인을 얻고 비단가게를 표호로 정식 출범시킨 해가 1934년이다. 일승창이 설립한지 11년 후다. 상호도 일승창처럼 울태후, 울풍후, 울성장을 그대로 이어갔다.

모홍홰는 후음창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입증시켰다. 그는 나아가 일승창의 뇌이태와 겨루겠다는 서약을 한 다음 울태후 표호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모홍홰는 자신을 알아준 주인 후음창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호 경영에 나서자, 후음창은 그 댓가로 이미 주기로 한 정신고(頂身股)를 더 얹어 주었다. 정신고는 요즘으로 치면 기업실적을 많이 낸 경영인에게 지급하는 공로주(bonus stock)이다.

 

▲ 산서성의 울태후 간판 /바이두 백과

 

<< 표호의 지분제도 >>

표호는 지분제도를 운영했다. 지분은 크게 은고(銀股)와 정신고(頂身股)로 나뉜다.

은고는 주주의 납입자본금에 해당한다. 무한 배상 책임을 가졌으며, 부자와 부부 사이에서 상속도 가능했다. 양도와 양수가 가능하고 새로운 출자자를 추가 영입할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배당을 받을수도 있다.

이에 비해 정신고는 실적이 뛰어난 경영인, 분장(지점장), 사원에게 준다. 사규(호규)를 위반하거나 과실을 범하면 삭감한다. 정신고 지급의 평가는 은고를 소유한 자, 즉 자본주가 한다. 지분에 대한 책임은 유한하다. 정신고를 받는 사원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파트너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진상들은 정신고 제도를 도입해 점원들 개인의 이익과 상점의 이익, 자본주의 이익을 긴밀하게 결합시켰다. 정신고는 직원들의 이익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공로에 따라 정신고를 지급하는 비율이 달랐다.

표호들은 결산기에 자본주와 영장, 그리고 증인(감사 격)을 불러 회의를 한다. 그때 지분 규약, 지분당 은자의 액수, 배당 주기, 은고와 정신고의 배당비율을 결정하고, 그 내용을 문서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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