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명절에는 싫든 좋든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가족 모임은 물론 야외활동이나 문화 활동도 사람들과 부대껴야 해 하루 정도는 머리를 식히며 여유를 즐기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집에서 편한 자세로 TV를 시청하는 것은 어떨까. 마침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 거의 모든 방송국이 추석 특집을 내보낼 예정이다.
안방에 펼쳐지는 극장
예로부터 명절 연휴 동안 텔레비전에는 영화들이 흘러나왔다. 다만 개봉한 지 오래인 영화나 지난 명절에 내보낸 영화를 재탕, 삼탕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예상할 수도 있었다. 설날이면 <나 홀로 집에> 시리즈, 추석이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
그런 전통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영화 전문 케이블 방송이 아닌 지상파와 종편 방송에서도 명절이면 최근 개봉 작품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다.
연휴 첫날인 9일에는 강렬한 액션 영화들을 볼 수 있다. tvN이 오후 8시 50분에 <보이스>를, TV조선이 오후 10시에 <경관의 피>를, JTBC가 오후 10시 50분에 <유체이탈자>를 내보낸다. 그리고 KBS2에서는 오후 11시 50분에 <신의 한 수: 귀수편>을 방영한다.
추석인 10일에는 액션은 물론 코미디와 시대극 등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다. KBS2가 오전 10시 45분에 <도굴>을, MBN이 낮 12시 30분에 <국제수사>를, KBS1이 오후 3시 15분에 <광대들: 풍문 조작단>을 내보낸다. 그리고 오후 8시 20분 SBS는 <장르만 로맨스>를, 오후 9시 20분 KBS2가 <발신제한>을, 오후 11시 40분에 SBS가 <자산어보>를 편성했다.
일요일인 11일에도 강렬한 영화들이 포진했다. MBN이 낮 12시 30분에 <남산의 부장들>을, KBS1이 오후 1시 20분에 <말임씨를 부탁해>를, SBS가 오후 3시에 <미션 파서블>을 준비했다. 그리고 KBS2가 오후 10시 45분에 <뜨거운 피>를, SBS가 오후 11시 5분에 <강릉>을 내보낸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MBC가 오후 10시 40분에 <특송>을 방영한다.
EBS는 애니메이션과 클래식 영화 위주로 추석 연휴에 편성했다. 9일 오후 6시 10분에 애니메이션 <소나기>를, 밤 12시 45분에 <와호장룡>을 내보낸다. 10일 오후 9시 40분에 <취권2>를,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후 6시에는 애니메이션 <독도수비대 강치>를 방영할 계획이다.
추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프로그램
명절 하면 떠오르는 프로그램이 있다. 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 일명 ‘아육대’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0년 추석에 MBC에서 내보낸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명절마다 내보내는 고정 프로그램이 되었다.
방송 콘셉트는 단순했다. 아이돌들이 대거 나와 육상 대회를 펼쳤다. 여기에 양궁이나 풋살, 혹은 리듬체조 경기 등도 벌였다. 프로그램 성격상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이 나오게 되어 많은 기획사가 신인 홍보에 사활을 걸기도 했다. 실력이 뛰어나면 미디어에 주목을 받기 때문에 <아육대>를 고려해 멤버를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렇듯 <아육대>는 한때 추석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지난 2년은 코로나19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새롭게 돌아온 아육대는 이름을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로 바꿨다. 정체성과도 같은 ‘육상’이 이름에서 빠진 것. 콘셉트도 청백전으로 나눴다. 그리고 아이돌의 특성을 담은 댄스스포츠 종목을 신설했다.
MBC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는 1부가 9일 오후 5시 30분에, 2부가 11일 오후 2시 50분에, 마지막 3부가 12일 오후 5시 20분에 방영된다.
추석 특집은 말 그대로 추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프로그램이라는 의미가 크다. SBS가 9일 저녁 8시 10분에 방영하는 <김호중의 한가위 판타지아>가 그 범주에 든다. 지난 8월 30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진행된 공연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성악가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김호중은 그만큼 폭넓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다. 이번 공연도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 발라드에서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선보인다. 최백호와 송가인이 게스트로 출연하고, 김호중은 팬과 듀오를 결성한 이벤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명절 연휴에 방송국들은 파일럿 프로그램을 편성해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는 했다. 이슈가 되거나 가능성이 보이면 정규 편성하기도 했다.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이 대표적이다. 이번 추석에도 파일럿으로 보이는 프로그램들이 편성됐지만 많지는 않다.
KBS1은 10일과 11일 저녁에 <종로 사진관>을 내보낸다. MC 겸 사진작가로 차인표가 출연한다. <종로 사진관>은 아날로그 사진을 매개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는 ‘휴먼토크멘터리’를 표방한다.
KBS2는 11일과 12일 저녁에 <라운드 테이블>을 편성했다. 강호동이 6년 만에 KBS에 출연한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라운드 테이블>은 6명의 스타가 서로를 지목해 노래를 이어 부르며 승자를 가리는 ‘랜덤 릴레이 음악 게임 쇼’를 표방한다.
특별하게 보이도록 편집한 프로그램
‘추석 특집’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거의 모든 방송국, 즉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의 편성표는 추석 특집 방송으로 빽빽하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별로 안 보인다. 추석 특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기존 방송에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추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식이다. <추석 특집 돌싱글즈 스페셜>, <추석에도 안싸우면 다행이야>, <추석 기획 슈퍼맨이 돌아왔다>, <추석 특집 나 혼자 산다> 등 헤아릴 수 없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 중에는 이번 추석을 위해 특별히 촬영한 분량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패널들이 우르르 나와 추석 분위기로 몰아갈 게 분명하다. 아니면 제목에만 ‘추석 특집’을 붙였거나. 지난 몇 년간 많은 추석 특집들이 보여준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모습에서 명절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서로 얼굴을 맞대거나, 혹은 여행을 가거나 하는 여느 명절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TV 속 명절 설정이 오히려 명절을 즐기는 유일한 순간일지도.
그러고 보면 TV는 적적한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같다. 큰 비용 들지 않는. 물론 상대적 비용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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