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현장안전 무너뜨리고 있는 '중대재해법'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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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의 안전 코리아] 현장안전 무너뜨리고 있는 '중대재해법' 행정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승인 2022.09.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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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경영책임자 엄벌이 중대재해 문제 해결에 ‘신의 한수’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했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중대재해가 줄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법 적용 사업장의 사망재해는 발생일과 승인일 기준 모두 오히려 늘어났다. 1년 정도는 ‘반짝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 5년간 산업안전 행정인력과 예산이 선진국과 비교해 비대하게 늘어난 상황에서의 성적이어서,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간의 사고사망재해 중장기 추세로 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행정인력·예산 증가가 없었더라면 금년도 사망사고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이상은 어느 나라든 서비스산업화로 인한 위험작업의 감소, 자동화 및 IT기술의 발전, 탈근로자화 등으로 인해 근로자 사망사고는 점차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사망재해의 증가는 중대재해법행정이 산업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대재해법행정이 고장 났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류작성만 잘 하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장작동성 있는 안전이 아니라 서류작성에 ‘올인’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이 아니라 경영책임자를 지키기 위한 안전이 되어 버린 곳도 많다. 실질적인 안전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역량의 발전과 성장은 기업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묻지마’ 안전이 도를 더해가면서 현업부서의 안전에 대한 냉소적 반응이 심상치 않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법위반으로 단 1건만 기소된 걸 보고 기업에서는 초기의 긴장감마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당초 비어 있었던 것보다 채워져 있다가 비게 되는 것이 공허감이 심한 법이다. 이도저도 아닌채 시간이 지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부끄러운 민낯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중대재해법행정은 몇 군데 부분적으로 손을 대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태생적 한계가 많은 데다가 현장안전을 난마처럼 꼬이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을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행정부에 진정성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챙겨야 한다. 꼼수행정에는 단호하고 엄격해야 한다. 행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중대재해법(CG). 사진=연합뉴스

심각한 문제는 많은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정작 해야 할 예방활동은 하지 못하고 수검용 서류작업과 안전활동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실질적 안전과 괴리된 주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지쳐가고 있다. 겉으로는 안전인력이 늘어나고 안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멍들어가거나 곪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하느라 안전역량 강화보다는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접근에서 초래되는 문제다. 

정부는 규제를 준수할 여건을 정비하거나 규제의 품질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사고가 날 때마다 실효성 없는 규제를 늘리면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뒷북행정을 하고 있다. 행정편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법집행하는 행태는 정부가 바뀌었지만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안전보건공단은 공무원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법적 근거 없이 군림하려고 하고 있다.  

정치권은 안전을 들먹이며 환심을 사기 위한 행위를 공익인 것처럼 위장하고 여야 할 것 없이 엄벌만능주의와 무분별한 규제에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해서 노다지가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장 주위로 돈 냄새를 맡은 군상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전문성도 없으면서 돈벌이에만 혈안인 로펌, 컨설팅기관, 사이비 학자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들고 있다.

심지어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의 고용부 담당국장이 대형로펌으로 직행한 후 컨설팅 수주를 위해 공포마케팅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안전에 어떤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지 현장관계자는 다 알고 있는데, 공무원들의 눈에는 막강한 권한과 퇴직 후 자리만 보이는 모양이다. 산업안전의 원리도 시대적 흐름을 읽는 안목도 없고, 난맥상(亂脈相)에 대처할 실력과 진정성도 안 보인다. 실력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행태는 감사라도 해서 하루빨리 도려내야 한다. 

현장안전이 뒤틀려지고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입법 목적인 엄벌조차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고 있다 보니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초래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도 중대재해법행정의 본질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여전히 더 강한 처벌을 주장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 무지와 무책임이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국민이 이들과 정부를 향해 ‘이게 산업안전이냐’라고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한다.    

정진우 교수는 1995년 9월 행정고시에 합격해 고용노동부에서 19년 6개월간 근무했다. 주로 산업안전보건 부서에서 근무했다.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에서 안전관계법, 안전관리 등 안전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론, 산업안전관리론 등 11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중 3권은 세종도서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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