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의 통신보국③…사업시기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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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의 통신보국③…사업시기 공방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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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대우 등 제조업체 배제, 사업시기 연기 놓고 상공부, 체신부 대립

 

1992년 4월의 어느날, 한봉수(韓鳳洙) 상공부장관과 송언종(宋彦鍾) 체신부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갔다. 노태우 대통령이 두 장관을 앞에 두고 “왜 소신껏 못하는냐”며 심한 꾸중을 했다. 제2이동통신사업 시행시기를 놓고 상공부와 체신부가 팽팽한 의견대립을 하는 바람에 당초 2월말에 사업자선정 공고를 내려 했던 계획이 4월로 늦춰졌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심히 불쾌하게 여겼다. 대통령은 평상시에도 이동통신 관계자들을 불러 “공정하게 하면 됐지, 무엇이 겁나서 못나서 못하겠다는 것이냐”며 질책해 온 터였다.

6공화국의 통치 과정중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2이동통신 사업이 정권의 임기만료가 가까와 진 92년에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은 바로 사업자 선정의 시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이동통신 사업자선정을 서두르는 것은 노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사돈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문제였다. 그러나 제2이동전화 민영화계획은 체신부가 90년초에 대통령에게 보고한 연두 업무보고에도 포함돼 있는 사안으로, 갑자기 서둘러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92년초 한 상공, 송 체신 장관을 불러 호통을 친 것은 이미 정부 출범 초기서부터 세워진 계획을 정부 부처 간 의견조율을 제때 못해 일정만 오히려 지연된데 대해 무소신을 나무란 것이었다.

2통 사업자 선정일정에 대한 논란은 시행초기부터 시비에 휘말렸다. 그것은 제조업체 참여제한 논란과 사업시기 연기공방이었다.

첫번째 논란은 이동전화 사업에 현대, 대우, 삼성, 럭키금성등 기존의 4대 통신장비제조업체의 참가여부였다. 주무부처인 체신부는 “제조업체가 제2이동통신을 차지할 경우 기종은 특정업체의 장비로 채워지기 때문에 탈락한 업체는 설 땅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상공부측은 “기존업체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기존의 통신장비업체들도 재계의 판도변화까지 영향을 미칠 2통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김종인(金鍾仁)수석은 체신부의 견해를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상공부는 체신부와 협의 끝에 「전자기기제조업체의 완전 배제」라는 당초의 방침을 변경하되, 「제조업체의 10%이내 지분참여」라는 타협선을 찾았다.야당도 입법심의 과정에서 체신부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뒤에 선경이 2통사업자로 선정되자 입장을 바꿔 “대기업을 배제시킨 것이 선경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어쨌든 이같은 논란을 거쳐 91년 7월 임시국회는 전기통신기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통 사업을 둘러싼 두번째 논란은 법률안이 통과되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시기 선택과정에서 빚어졌다. 92년 2월 한봉수 상공장관이 “현재 추진중인 이동통신사업은 국민들의 편의가 증진되등 편리한 점도 많지만, 막대한 시설재의 수입으로 무역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며 사업시기를 연기할 것을 주장했다. 한 장관의 주장인즉, 사업시기를 1-2년 연장하고 그동안 통신기기를 국산화하면 10억 달러의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체신부측은 “사업자선정이 늦어질 경우 멀지않아 주파수 부족현상을 겪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업자 연기에 따른 수입대체효과보다는 통신애로에서 오는 국력손실이 커진다”고 맞섰다. 체신부측은 “92년에 사업자를 선정해도 94년께 본격적으로 기기수요가 발생하므로 삼성과 럭키금성의 기기개발계획을 감안할때 국산화가 가능하다”며 상공부를 설득했다. 결국 경제부처 장관회의를 통해 체신부 논리가 판정승, 당초계획대로 추진하게 됐지만, 주무부처인 체신부와 상공부의 논쟁은 사업자선정시기가 2개월이나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체신부는 당초 92년 2월 2통사업자신청공고를 내고 6월까지 사업자선정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두달에 걸친 상공부와의 의견대립으로 그해 4월 공고를 낸뒤 8월에 사업자 선정을 하지않을 수 없게 됐다. 체신부측은 “그때 상공부가 관철시키지도 못할 주장을 폈기 때문에 사업자선정시기가 늦어져 결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에 휘말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사업자 선정시기 논란은 일단 마무리됐지만 이 문제는 후에 국회에서 “정부부처 안에서도 반대하는 것을 왜 억지로 밀고 나갔는가”라는 또다른 시비거리를 제공했다. 탈락업체들은 오히려 “선경이 미국의 벨사우스(Bell South)사와 결별한 후 새로운 제휴선을 찾을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추진일정을 2개월간 순연시켰다”며 일정연기에 따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92년 4월에 접어들면서 사업자 선정에 관한 입찰제한서(RFP)공고가 시작됐고, 참여희망 6개사는 총력전을 펴면서 2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6공 최대의 이권사업」이니 하며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정치권과 기업을 둘러싼 각종유언비어가 쏟아져 나왔다. 모든 논리가 차기정권을 탄생시키는 대선의 정치논리에 휘말려 들어가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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