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땡큐" 외치던 바이든의 '변심'…미국행 정의선회장 돌파구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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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땡큐" 외치던 바이든의 '변심'…미국행 정의선회장 돌파구 찾을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8.24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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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회장 IRA 해법 찾아 23일 미국행
美 전기차 주도권 中에 뺏길까 우려감 커져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방한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투자 발표에 화답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땡큐, 정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방한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향해 연신 "땡큐(Thank you)"를 연발했다. 정 회장은 5월2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 후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3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발표한 55억 달러를 더해 미국에 모두 105억 달러(약 13조4000억원)를 신규투자한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흘러 상황은 급변했다.

바이든의 '두 얼굴'

정 회장은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을 투자 분야로 꼽았다. 이어 이들 분야의 미국 현지 기업에 더욱 투자를 늘리거나 새롭게 투자해 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미국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모셔널'을 합작 설립해 자율주행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고, 세계 로봇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로봇 개 '스팟' 등을 선보이는 한편 워싱턴DC에 UAM 독립법인인 '슈퍼널'을 설립해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된 신규 투자 분야 및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과 관련해 "첨단 자동차 기술에 대한 50억 달러가 넘는 투자와 조지아주 사바나에 55억 달러를 들여 짓는 공장이 내년 1월까지 8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40년 가까이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미국의 자랑스러운 기업 시민이 돼 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각)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했다. 법안 효력은 서명 즉시 발효됐다. 그동안 70개가 넘던 친환경 자동차 보조금 지급 대상이 20여개로 줄었다. 하이브리드나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뺀 순수 전기차는 15개 수준이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현대차그룹으로선 그동안 받아오던 5종의 보조금을 하루아침에 '제로(0)'로 만든 바이든 대통령의 조치가 반갑지 않다.  

7500달러(한화 약 996만원)인 보조금은 전기차 판매에 있어 결정적이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9%를 차지하며 테슬라(70%)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순항했다. 보조금 없이는 불가능했던 행보다. 단적으로 현대차의 아이오닉5는 보조금 수령 때 3만 달러 초·중반대면 살수 있다. 이런 가격 경쟁력으로 상반기 1만5000대가 팔리며 시장 2위 등극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보조금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하는' 전기차만 받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에서 조립하는 전기차가 없다. 2025년에야 전기차 전용 라인이 생긴다. 당장 올해 예정된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 물량이 있기는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지배적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지난 16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서명 후 사인한 펜을 조 맨친 미국 상원의원(맨 왼쪽)에게 건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회장 미국행…美 상원의 '전하(highness)' 맨친 만날까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 회장이 미국을 긴급하게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전날 김포국제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미국행 출장길에 올랐다.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이나 워싱턴D.C.가 유력하다. 이번 출장에는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공영운 현대차 사장이 함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미국 정·재계 인사를 만나 IRA 관련 논의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영진의 일정은 공개되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한국 정부 편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건 '북미산 전기차' 조항에서 예외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 상원의 '전하(Highness)'로 불리는 조 매친 상원의원의 벽을 넘어야 한다. 

'초당파' '온건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맨친 의원은 바이든 노믹스에 반기를 들며 '이름만 민주당'이라는 별칭을 얻은 인물이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인프라 투자 계획을 제시하며 법인세율은 21%에서 28%로 인상하자는 안을 주장하자 "25%가 적정하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또 코로나19 부양 법안에서 최저임금을 시간당 7.5달러에서 2025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려고 하자 회의적인 입장을 냈고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경기 부양 법안에서 최저임금을 제외했다. 여기에 과거 '막말 트윗' 논란을 빚었던 니라 탠던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후보인준에도 반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 철회를 이끌었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의 모태가 된 'BBB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한 이도 맨친 의원이다. 맨친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 경제 정책의 핵심공약인 2조 달러 규모의 'BBB(Build Back Better) 법안'에 '노(No)'를 외쳤다. BBB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위해선 민주당 의원 50명 전원이 찬성해야 했는데 맨친이 반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배신자' 운운하며 격분했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BBB 법안을 훨씬 작은 규모로 되살린 법안이지만 맨친이 '예스(Yes)'한 후에야 겨우 통과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해 "민주당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이 복도에서 맨친 의원과 마주치자 '전하(your highness)'라고 했다"고 전했다. 맨친 의원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맨친 의원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인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이곳에서 2004년과 2008년 두 번 주지사로 당선됐고, 2010년과 2012년, 2018년 상원의원으로 3선에 성공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석탄 산업 중심지이며 맨친 의원은 정유 업계로부터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영국 '가디언'은 미국의 기후 위기 악당 12명 중 한 명으로 맨친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서명 후 사인한 펜을 건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GM 자동차 조립공장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동맹도 저버린 美, 자동차 산업에 '올인'하는 까닭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40%를 차지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경제 재건 그리고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의 등장으로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몫은 점차적으로 줄었다. 특히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상당한 제조업 생산기반이 미국을 떠나 개도국으로 이전했다. 미국의 다국적 제조기업은 오프쇼어링을 통해 비용절감을 이뤘고, 비용 경쟁력을 향유했다. 운송과 통신의 발단 및 무역장벽의 완화가 이를 뒷받침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대량 실업으로 중산층이 붕괴했고, 달러 가치 하락과 셰일가스로 인한 에너지 비용 하락, 단위 노동비용 변화 등으로 미국으로 제조시설을 이전하는 리쇼어링 현상이 2010년을 전후로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중무역 갈등과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런 기조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현재 미국에 남아있는 제조산업은 자동차가 거의 유일하다.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그만큼 중요하다. 단적으로 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병목에 따른 자동차 대란이 꼽힌다. 그런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으로선 반드시 시장을 지켜야 한다.

문제는 지금 전기차 부가가치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가 중국산이라는 점이다. 이대로 두다간 전기차 산업이 중국에 장악된다는 위기 의식이 미국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배터리 산업 점유율 1위는 '넘사벽' CATL이며 중국의 빅5가 세계 배터리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SNE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CATL의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32.6%로 압도적 1위며 그 뒤를 LG에너지솔루션(20.3%), 파나소닉(12.2%), BYD(8.8%), 삼성SDI(5.6%), SK온(4.5%) 순으로 따르고 있다. 

핵심 소재 부품 시장은 더 심각하다. SNE리서치 조사를 보면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 네 가지 소재 모두 중국의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2020년을 기준으로 양극재와 분리막은 50%, 음극재는 60%, 전해액은 70%가 넘을 정도다. 배터리 안에 들어가는 광물 점유율도 마찬가지다. 핵심 광물인 리튬의 경우 국내 배터리 회사는 대부분 중국산 수산화리튬에 의존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인 코발트, 니켈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자국 내 매장량도 많고, 아프리카와 남미 투자로 그동안 확보한 원자재도 많다. 가공과 유통도 다 중국이 장악했다. CNN은 미 에너지부를 인용해 중국이 리튬의 60%, 코발트의 80%를 정제한다고 했다.

현재로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제시한 규정을 만족할 전기차가 거의 없을 정도다. 정 회장을 향해 "땡큐"를 외치던 바이든 대통령의 '두 얼굴'은 곧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위기감이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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